사실 이건 리뷰라기 보단 감상
1.
현대 사회에서 노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들은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여겨지는 존재다. 65세를 넘으면 그들에겐 경쟁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노인은 누구나 자신이 아직 쓸모가 있음을,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어 한다. 모든 노인의 꿈이다. 영화 <인턴>의 주인공 벤 휘태커(로버트 드 니로)는 그런 노인의 꿈을 대리 실현 시켜 주는 존재다. 사회 공헌 차원에서 진행되는 노인 인턴에 합격한 그는 젊은이들의 멘토로서, 그리고 유능한 직원으로서 그 능력을 뽐낸다. 얼핏 보면 <인턴>은 노인을 위한 신데렐라 스토리 같다.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라기엔 가장 중요한 게 부족하다. ‘공감’이다. 과연 현실의 노인들이 휘태커를 보고 공감대를 갖고, 그와 자신을 일치시켜 영화에서 대리만족을 얻을 수 있을까? 오히려 박탈감을 느낄 가능성이 더 높다. 현실의 노인들과 휘태커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너무나 이상적인 존재다.
2.
무릇 약자들이 보다 강자들의 집단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자기 증명이 필수적이다. ‘내가 이 정도 한다, 너희와 다르지 않다’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영화에서 휘태커는 자신이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음을 증명해낸다. 다른 것은 나이와 머리색, 그리고 주름살뿐이다. 그는 여전히 업무에 유능하고, 주위 젊은이들과 웃음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개그 코드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패션 감각도 있다. Jay-Z에게 배달을 가게 되었다고 잔뜩 긴장해 있는 직원에게 상황에 맞는 옷차림을 충고해주지 않았던가? 새로운 문화에도 거부감이 없다. 페이스북 같은 새로운 영역을 두려워 않고 오히려 배우려 뛰어든다. 보통의 노인 같으면 혀를 쯧쯧 찼을 일들을 그는 눈썹을 한 번 찡긋 올릴 뿐 곧바로 받아들인다. 과거도 화려하다. 전화번호부 회사에서 부사장을 역임한 그는, 부인과 사별한 후 고독감을 떨치기 위해 혼자 해외여행을 다닐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있다. 과거도 탄탄하고 현재에 뒤쳐지지 않으니 젊은 직원들과 심지어 사장까지 그를 믿고 따른다. 이 모든 능력을 갖춘 휘태커이기에 그에게 나이란 숫자에 불과한 것이 된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눈을 떼고 현실의 노인들을 보자. 과연 그들이 휘태커처럼 할 수 있을까?
3.
그들에게 휘태커같은 기회가 없음은 차치하고 일단 대다수의 노인들은 그만큼의 경제적 안정이 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하면 2016년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무려 49.6%다. 65세 이상의 절반이 빈곤층이란 것이다. 노인 자살율은 10만 명당 55.5명이다. 두 영역 모두 압도적인 OECD 1위다. 그마저도 65세 이상을 기준으로 하니 망정이지 70세, 80세로 넘어갈수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과학 기술은 진보하고 인간의 수명은 100세를 넘어가는데 나이가 들수록 삶은 더 힘들어진다. 그러니 그들은 휘태커 같은 여유와 포용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들이 보기에 휘태커란 인물은 너무나 완전무결한, 신적인 존재인 것이다.
4.
그렇다면 노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대접은 어떠한가? 우리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같은 여유와 포용력을 가지고 있는가? 영화와 달리 현재 한국의 젊은층에게 노인은 거의 배척의 대상이다. 여성혐오부터 국가혐오까지, 온갖 혐오가 나라를 휘젓는 가운데서도 세대갈등은 특히 부각된다. 유례가 없는 정도다. 정치적 이유와 직결되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층들은 노인들을 두고 ‘살 만큼 살고 사회에서 떠난 사람들이 묻지마 투표로 우리 삶을 방해한다’며 그들을 ‘틀딱충’이라 부른다. ‘틀니를 딱딱 거린다’는 뜻으로, 김치녀, 한남충 등과 같은 혐오 용어다. ‘나라를 팔아먹어도 1번을 뽑겠다(이제는 2번.. 아니 5번이려나?)’는 그들의 투표 방식이 잘못 되었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살 만큼 산 사람들이 앞길 창창한 젊은이들을 방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통계적으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든 삶을 사는 세대가 바로 그들이며, 우리보다 더 살았을 뿐이지 본인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2~30년의 삶이 더 남았기 때문이다.
5.
<인턴>이라는 영화가 나왔다는 건 노인 소외문제가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는 뜻일 터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노인들에게 이 영화는 환상적인 신데렐라 스토리 정도로 남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누구보다 빈곤한 노인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사회에서 배척하는 분위기 속에 이 <인턴>이라는 영화는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노인은, 특히 대한민국에서 노인은 명실상부 사회적 약자다. 묻지마 투표를 하는 그들에게 정치권은 관심이 없고 청년들은 분노의 화살을 노인에게 돌린다. 그러나 이런 현실에 단순히 그들을 질타하고 조롱해서만은 안 된다. 현재의 노인들은 모두 과거 어떻게든 사회에 헌신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란 어떤 의미인가? 노인의 현실은 곧 우리의 미래다. 지금의 노인들이 대접받지 못하는데, 우리가 늙어서 대접받을 이유는 없다. 언젠가 우리가 49.7%안에 들지 못한다는 법도 없다. 우리도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바로 이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
p.s)한국을 기준으로 쓴 글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도 썼듯, 이런 영화의 등장은 노인문제가 비단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겠죠.
p.s2)제목 '황혼의 반란'은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단편집 <나무> 중 하나의 단편 제목을 차용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