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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Feb 03. 2017

영화 리뷰 <너의 이름은> -  잊지 않겠노라고

언제나처럼 조금은 늦은 리뷰




1.

 우리는 1년에 몇 번이나 재앙, 재난 사고를 듣는다. 재앙이나 재난이 있으면 당연히 희생자도 있다. 피해 권역 밖의 사람들에게 희생자들이란 아주 멀리 있는 사람들이다. 재난이란 TV 속에서나 있는 것이고, 나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딱히 벌어지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사실 피해자든 그 바깥의 사람이든 그 모든 이들이 우주 밖에서 보면 다 똑같다. 모두 먹고살려고 출근하고 퇴근하거나, 학교에 가거나, 키우거나 키워지는 이들이다. 그러니까 재앙이나 재난에 휘말린 사람들은 얼핏 TV 속 특별한 일을 겪은 특별한 사람들인 양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랑 같은 보통 사람들이란 거다. 그들에게도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었고, 꿈과 고민이 있었다. 카페에 가보고 싶다거나, 연애를 하고 싶다거나, 학교를 졸업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빠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등등 아주 일상적인 소망과 고민들을 가진 아주 보통의 사람들. 우주 밖에서 날아온 유성은 그런 그들을 가리지 않고 그저 무심히 떨어진다. 


2.

 우리 모두는 세계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시간과 공간상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단절되어 있기도 하다. 단절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공감의 결여를 낳는다. 영화는 이렇게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단절되어 소통이 막힌 것들을 계속해 제시한다. 유성을 바라보는 시각, 도시와 시골, 현실과 꿈, 엇갈린 시간, 이승과 저승, 산 자와 죽은 자. TV 속 아나운서는 유성을 두고 ‘1200년 만의 우주쇼’라며, ‘이렇게 거대하고 화려한 유성을 보게 된 이 시대의 우리는 모두 행운아’라는 말을 한다. 전 세계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 유성은 엄청난 볼거리이며 평생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토모리 마을 사람들에게 유성은 그 의미가 다르다. 마을 사람들에게 이 유성은 재앙이요, 죽음의 폭탄이다. 이해와 공감 없는 단절은 폭탄이 터진 후에는 망각을 낳는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렇게 자연스레 잊힌다. 남자 주인공 타키가 이토모리 마을의 파괴를 확인하고 미츠하의 죽음을 알게 되자, 미츠하가 남긴 휴대폰 메시지들은 모두 지워진다. 죽음은 영원한 단절이기에 망각도 빠르게 진행된다.  

세월호와 동일본 대지진


3.

 관계가 단절된 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망각이 진행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망각은 죄가 아니다. 혹자는 망각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도 하잖아?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로 잊을 것인가,라고. 시간이 기억을 흐리는 것을 일방적으로 거부할 수는 없다. '잊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기억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망각을 대하는 태도에의 호소다. 지나쳐간 모든 것들을 그저 한 순간의 꿈 정도로 치부하고 시간에 순응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미츠하의)선조들이 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말자는 것이다. 최소한 망각에, 시간에 저항하고 외치기라도 해야 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노라고. 잊지 않겠노라고.

세상은 요지경이 아니라 무스비란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끝없이 상대의 이름을 되뇌고 기억하겠다고 외친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의 기억은 흐려졌지만, 누군가를 기억하려 애썼다는 흔적은 각인처럼 새겨져 마음 한편에 남았다. 간절했던 기억의 몸부림은 기적을 낳는다. 


4.

 사실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주인공 둘을 제외한 캐릭터들은 딱히 존재 의의가 없다. 특히 남자 측 주변 인물들은 모두 지워버려도 이야기 전개에 전혀 지장이 없다.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강제로 배치된 캐릭터들의 전형이다. 선배 캐릭터 역시 처음에는 뭔가 역할이 있는 듯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별다른 차별성이 없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고리 중 하나인 주인공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개연성이 많이 부족하다. 연출은 상투적이었고 일본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같은 오프닝 무비를 집어넣은 것도 개인적으로 꽤나 오글거렸다.

 이렇게 영화적 단점이 꽤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300만의 관객을 모으고, 개봉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여전히 극장에서 몇 개의 관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순위 2위에 올랐다. 아마도 그 주제의식이 한국과 일본의 실정과 잘 맞닿았기 때문일 터다. 두 나라는 각각 세월호와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충격적인 인적재해와 자연재해를 겪었다. 이후 두 나라의 정신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다. 이제 우리는 재앙, 재난의 대상이 언제나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안다. 그렇기에 더욱 그들이 꿈처럼 흐려지는 것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미안하다. 우리 모두는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







*본문에 넣지 못한 영화에 대한 것들

1)영화의 모티브에 대해 감독 신카이 마코토는 '동일본 대지진이 직접적인 모티브가 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 재해 이후 감독 자신도 변했고 일본 사회 자체가 변했다는 대답.


2)이토모리 마을의 호수는 과거 운석 충돌로 만들어졌다. 또 마을은 운석 충돌로 사라진다. 미야미즈 가의 사당은 화산 활동이 있었던 산의 분화구에 위치하고 있다. 즉, 마을은 자연재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3)타키와 미츠하는 시간과 죽음을 건너 한 곳에서 만난다. 만나는 시간대는 황혼이며, 장소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다. 황혼은 낮도 밤도 아닌 경계의 시간대다. 황혼이 끝나자 둘의 만남 역시 끝나고 망각이 시작된다.






p.s) 원래 글의 서론으로 직전 글인 '태엽 감는 새'를 가져오려 했으나 쓰다 보니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 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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