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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Nov 01. 2018

<미디어의 미디어 9>를 읽고 - 결국 브랜드

동아리를 할 것이냐 사업을 할 것이냐


조선비즈 신성헌 기자가 쓴 <미디어의 미디어 9>를 읽었다. 국내외 유망 미디어 스타트업들에 대한 가벼운 분석과 함께, 각 회사별 주요 인사들의 인터뷰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출판 스타트업 ‘스리체어스’의 ‘북저널리즘’ 시리즈로 발간됐다. 북저널리즘은 ‘책처럼 깊이있게, 뉴스처럼 빠르게’를 모토로 한 스리체어스의 출판 브랜드다. 북저널리즘이라는 브랜드는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대부분 독자들이 나와 마찬가지로 북저널리즘이기에 이 책을 집었을 터다. 요는 이 부분이다. 콘텐츠 질이 아무리 좋다고 해봐야 사람들이 읽거나 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 콘텐츠를 포장하고 있는 브랜드가 중요하다.


이 책에 소개된 매체들은 모두 같은 ‘미디어 스타트업’ 이름으로 소개되긴 했지만 세세히 따지면 각기 유형이 다르다. 예컨대 쿼츠나 악시오스, 업데이 같은 매체와 모노클, 퍼블리, 북저널리즘같은 매체는 전혀 다른 종류 회사다. 책에서 관심있게 읽은 매체들은 후자다. 전자 같은 경우는 매체 특성상 우리가 어찌저찌 해서 이렇게 성공했습니다! 하는 스토리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후자는 ‘얘네가 어떻게 성공했지?’ 혹은 ‘어떻게 살아남았지?’같은 의문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의문은 의문보다는 의심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내게 이 책은 조금 비판적으로 읽혔다. 관계자들이야 뭐 당연히 자기 회사 잘 나가고 있다고 말할 게 아닌가. 그래서 책을 덮은 후 몇몇 매체는 조금씩 구글링 해보기도 했다. 이 친구들은 하나같이 ‘텍스트의 시대가 도래했다!’ 같은 소리들을 하고 있지만, 정말 텍스트가 중심일까. 그렇지 않으면 잘 짜인 사업 전략의 승리일까.


글은 개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끈 '모노클'을 중심으로 이를 풀어보려 한다.




모노클은 특이한 매체다. 책에 따르면 모노클은 순수 아날로그 잡지만 발간하면서 SNS 계정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통한댄다. 구글링해보니 정말 여기저기 모노클 성장 속도 빠르다는 얘기밖에 없다. 실제로 당장 2017년에도 뉴스스탠드 판매가 14% 늘었고, 정기구독도 8% 늘었댄다. 이 인터넷 초연결 시대에, 종이 하나 가지고 대체 어떻게 이렇게 잘 나갈 수 있는걸까?


시작은 물론 우수한 퀄리티에 있었을 터다. 기본이다. 종이 잡지 매니아들을 유혹할 수 있을 정도로 콘텐츠 독창성, 혹은 잡지 콘셉트의 매력도가 높았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흔한 sns 계정 하나 갖추지 않은 무대뽀 아날로그 잡지가 여기까지 확장할 수 있었을 리도 없다. 이 부분에서 모노클의 오프라인 사업 전략이 눈에 들어온다.


모노클은 잡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빠르게 사업 다각화를 이뤄냈다. 브랜드 파워를 강화시키는 여러가지 오프라인 사업을 병행하며 영역을 확장했다. 그 결과, 지금은 모노클 잡지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모노클을 인지시키는 데 성공했다.

네이버에 모노클을 검색하면 대부분 런던 모노클 카페 이야기만 나온다

모노클의 브랜딩 전략은 정석적이다. 사업 초기 매력있고 독창적인 콘텐츠를 홍보해 매니아 층을 만든 다음, 그 묶음을 하나의 브랜드화 시킨다. 브랜딩을 위해 네이밍과 컬러, 디자인 등도 매우 신경썼다. 모노클이 발간 초기 가판대에서 곧잘 끄집어 올려진 이유에는 '외눈박이 안경(monocle)'이란 클래식하면서도 동시에 트렌디해 보이는 재기넘치는 타이틀도 크게 한 몫 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인터뷰가 실렸던 2018 3월호 모노클. 한국 특집이었다. 아마 이걸 계기로 모노클을 알게 된 사람이 많을 것

잡지로서 브랜드가 어느 정도 안정화 되니 그 때부터는 외도를 시작했다. 인맥 모임과 강연 등 오프라인 행사가 점차 잦아지더니 어느새 주된 수익원 중 하나가 됐다(모노클은 12개월 정기구독을 하면 단권씩 구매할 때보다 오히려 더 비싸다. 정기 모임 및 강연 참여권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실제 모노클 정기구독자 중 많은 이들이 자기와 마찬가지로 모노클을 읽는 ‘상류 계층’을 만나기 위해 모노클을 읽는다고 한다.


이름을 딴 카페, 문구류 등 자체 PB 상품도 내놓는다. 원래 모노클이란 잡지를 모르던 사람들이 모노클 카페를 방문한 뒤에야 '모노클'이란 브랜드를 알게 된다. 그 이후에서야 출판사에서 나온 잡지를, 비록 읽지는 않더라도 ‘소장’하게 되는 일종의 역수출 현상까지 벌어진다. 결과적으로 모노클을 읽는 사람들 중 다수가 브랜드 원전인 모노클 잡지의 텍스트를 탐하기 보다, 그 브랜드 자체를 소비하는 것에 더 목적을 두는 아름다운 비즈니스적 성과로 이어진다.


'텍스트 콘텐츠'가 아닌 '텍스트 브랜드'를 소비한다고 함은 우선 "아 글이 참 유익했고 좋았더라!"하는 심오한 사유의 결과로서 감상평을 내놓는 소비가 아니라, "내가 모노클을 읽는다"는 뿌듯함, 혹은 모노클 한 권 가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을 얻는 데 목적을 두는 감상적 소비를 말한다. 예컨대 위에서 말한 역수출의 경우나, 혹은 <미디어의 미디어 9> 책을 읽고 '모노클 한 권 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실제 구매하고 읽지 않는 경우다.


둘째는 모노클이란 브랜드를 향한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어떤 종류의 콘텐츠든 꾸준히 읽으면서, 동시에 그들이 진행하는 다른 사업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소비다. '상위 1%'를 타깃으로 하는 잡지치고 사실 모노클은 그리 수준 높은 텍스트 콘텐츠를 다루진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장 <미디어의 미디어 9> 저자 역시 모노클을 직접 읽어본 감상으로 "주제가 뭐였더라 싶을 정도로 깊이가 없었다"는 투의 평을 남기지 않았나. 그럼에도 소위 말하는 '상위 1%' 독자들은 모노클을 정기구독한다. 그 수도 해가 갈 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가 높아진 시점에서 그 콘셉트를 잘 지켜낼 수 있는 퀄리티만 유지한다면, 텍스트의 깊이는 큰 구별점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자아낸다.


모노클이 시작점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새 텍스트를 주력으로 삼는 스타트업들의 사업 전략 트렌드가 딱 이런 거 같다. 당장 최근 국내 소규모 미디어 업체들 중에 오프라인 강연 및 모임 개최 한 번 하지 않는 회사가 없다. 강연을 열고, 저자와의 만남 등 미팅을 주선한다. 북저널리즘이나 퍼블리 등도 마찬가지다. '그 브랜드를 깊이 신뢰해서 모인 사람들'이란 공통점을 지닌 인맥의 장을 만든다. 모노클의 1차 진화 시점과 같은 때다. 문제는 이 타이밍에서 아차 하는 순간 텍스트 콘텐츠가 주력에서 미끼로 역할이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끼로 전락한 콘텐츠(텍스트)는 자칫 방향을 잃고 표류할 수도 있다. 명확한 브랜드가 형성되기도 전에 이런 실수를 독자에게 '들키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은 동아리가 아닌 하나의 '회사'이기 때문에, 성장하기 위해서 탈텍스트적인 사업 확장은 피할 수 없다. 브랜드 콘셉트를 잘 지켜내면서 다각화도 성공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다. 앞으로 5년 뒤 한국의 모노클로서 정말 거대해져 있을 텍스트 브랜드는 어디일까? 이 책에서 다룬 업체들 중 하나일까, 혹은 아직 태동중에 있는 뉴페이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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