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깊이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엔 내 삶이 더 불안해
군대 다녀온 남자들은 종종 ‘누구든 내 군생활이 제일 힘들다‘는 말을 나눈다. 남이 어떻게 살든 내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인생이란 얘기다. 불안도 마찬가지다. 모든 삶은 다 나름나름으로 불안하다. 영화감독 지망생의 삶이라고 특별히 내 삶보다 불안하랴. 불안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어떤 지표나 물건, 타인이 눈대중으로 재단하는 환경이 그것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재벌가 자제들이 자살하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지 않은가. 대부분 우울증이 원인이었다고들 하는데, 우울의 근저에는 불안이 있기 마련이니 결국 원죄는 불안에 있는 셈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감독 지망생 인터뷰이들도 모두 다 불안해 한다. 몇몇은 “저는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평화로워요~” 라고 하는데, 인터뷰가 진행될 수록 깊이 숨겨둔 불안함을 고백하고 만다. 가만히 있으려니 어디서 끌어오르는지 모를 불안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책이라도 읽고, 초조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걱정을 품은 채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대답이 경제적 문제에 대해 “그건 불안이 아니라 불편함에 가깝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주머니 사정에 있어서 불편과 불안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안에 대한 감상은 여기까지. 이제 진짜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시큰둥 했다. 무슨 반전은 없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이 책 내용에 시큰둥하다. 북저널리즘의 모토는 ‘지금, 깊이‘인데 나는 왜 지금, 깊이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이 다소 아마추어틱해 보이는 인터뷰집의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말하고 있듯 대중들이 창의 노동을 이해해주길, 그리고 그 여건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해당 직군 종사자의 지극히 감정적인 의도로 쓰인 글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뭐하러 남의 단조로운 삶까지 신경을 쓰고 이해를 해야 하는지? 지금 나는 그런 정도의 여유가 있지 않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특수한 사람들(아니라고 해도 영화 감독 지망생이란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취준생군’이지)이 가지는 아주 보통의 불안을 제시한다. 너네가 특이한 일 한다고 생각하는 특수한 사람들, 쟤넨 뭐 먹고 살까 오지랖 넓게 걱정하는 애들, 혹은 용기 있게 자기 꿈을 추구해 나가는 멋있는 쟤네들, 얘네 모두 지금 이 책을 읽는 너희랑 똑같은 불안함을 가진 애들이야, 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일종의 ‘청춘 위로서‘로도 볼 수 있을까? 그렇게 보기에는 위로 대상이 불명확하다. 사람은 힘들 때 ‘남들도 너랑 같아’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위로를 크게 받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감독 지망생들이 이 책을 읽으면 아, 모두 나랑 같구나 하고 안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일반인들은? 아주 특수한 친구들이 가지는 불안을 듣고 공감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거 느끼기엔 너무 동떨어진, 어쩌면 불안정성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직업군 아닌가. 그러니까 만일 타깃 독자를 매우 매우 좁게 선정한 것이 아니라면, 이 책에 위로나 공감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겠다. ‘대중들의 창의 노동 이해‘라는 책의 목적을 받쳐 주는 양념 정도의 역할같다. 인터뷰이들의 타이틀(영화 감독 지망생)을 떼놓고 보면, 작가가 인터뷰로 뽑아낸 내용들은 아주 아주 평범하고 보편적이다. 지망생만의 별다른 특수성이 없다.
“항상 있죠. 능력에 대한 불안정. 능력이 쌓이고 있는지 안 보이잖아요. (…중략…) 연출할 때도 불안한 거고. 또 뭐라 그러지? 사람 모으고, 돈 같은 거 계약하고, 설득하고. 이런 사업 수완이 거의 없어서요.” “어느 언저리에 가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져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굳이 문화 예술 분야가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 불안정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다하다 지쳐 그냥 여기서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무척 보편적이다. 오죽하면 윤종신이 ‘지친하루‘라는 노래에서 가사로 가져다 썼을까. 이 부분에서 잠깐. 남이 한 인터뷰 답변에 트집을 잡기는 무척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토를 달고 싶은 부분도 있다. 아주 일방적인 트집일 수 밖에 없으니 얄밉게 읽힐지도 모른다. 그냥 ‘그쪽 세계’를 경험해보지 않은 일반인의 ‘질문’이라고 봐주면 고맙겠다. 내 능력이 쌓이고 있는지 안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 작업이든 연출이든 몇 번을 이어가다 보면 능력이 나아지고 있다는 게 보이기 마련이지 않나? 글도 쓰다 보면 좋아지는 게 느껴지고, 그림도, 음악도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만큼 능력이 늘기 마련인데. 물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넘어가는 건 재능의 영역이겠지만. 혹시 만일 그 막연함이 타인의 ‘인정‘, 혹은 상업적 성과를 측정하는 데서 비롯한 거라면, 글쎄… ‘내가 하고 싶어서 불안정을 감수하고 하는 일’과 모순이 되지 않을까. 책은 감독이란 예술성과 상품성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하는 직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영화를 한다면 할 수야 있되, 자기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척 적을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사나, 이렇게 사나 다 불안한데 왜 하고 싶은 걸 안 하고 살아요?”라고 말하지만 사실 정말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기 힘든 건 시간이 지나면 피차 매한가지가 될 거란 거지. 그 밖에 질문과 답변들도 그냥 평범하다. 뭐 대단한 게 있다기 보다는 ‘아, 영화 감독 지망생들은 이렇게 준비를 하고 있구나‘ ‘이렇게 살고 있구나’ 정도? 최소한 현실의 불안정성을 감수하면서 꿈을 추구하는 영화 감독 지망생들을 인터뷰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나 영화를 하고 싶으냐?”는 질문은 있었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이 질문이 없다. 질문이 없으니 답도 없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또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답들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 지망생이 잘 먹고 잘 살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알바하면서 하루하루 먹고 살겠지. 그냥 그거 보여주는거다 뻔하게.
더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을 충분히 못 끌어낸 느낌이다. 정말로 그냥 ‘영화 감독 지망생은 이렇게 하루하루 살고 있구나‘ 라는 걸 단순히 보여줄 뿐인데 이걸 내가 지금, 깊이 알아야 할 이유가 당최 뭐냐는 말이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단조롭다 보니 읽는 재미가 없다. 인터뷰로 책을 엮는다고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처럼, 저마다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듯 하면서도 결국 그것들이 거대한 하나의 인상으로 모여드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취재 능력의 차이인지 그런 느낌도 없었다. 개인적인 느낌에 책을 편집한 에디터 역시 약간은 불안했던 것 같다.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첫 문장 “천만 영화의 감독도 아니고, 이름 없는 지망생들의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할까. 누군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에서는 독자들이 이 책을 시큰둥하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이 느껴졌다. 일단 독자 1명은 여전히 시큰둥하다. 여튼 참 끝까지 불안함이 가득 느껴지는 텍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