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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Dec 09. 2018

<부탁 하나만 들어줘> - 긴장과 미소 사이 줄타기

정석적인 반전, 과한 맥거핀

*스포일러 있음


괜찮은 긴장감과 속도, 나쁘지 않은 반전을 보여주는 정석적인 플롯의 스릴러물이다. 킬링타임 용으로 무난하게 재미있지만 스릴러로서 전개 측면에서 별로 주목할 만한 구석은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평범한 영화를 미국에서 박스오피스 1위 포함 흥행을 이어갈 수 있게 했던 걸까?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하나는 유머다. 적절한 타이밍에 터지는 꾸준한 유머는 스릴러로서 부족한 치밀함을 보완해, 미소와 긴장 사이 팽팽한 줄타기를 이어가게 한다. 다른 하나는 캐릭터의 매력이다. 극과 극으로 다른 두 주인공 에밀리(블레이크 라이블리)와 스테파니(안나 켄드릭)의 매력 콘테스트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반드시 둘 중 한 명에게는 푹 빠지게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정말 세련되게 나온 다양한 이미지의 포스터

아쉬웠던 점들도 말해보자. 우선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던 결말이 아쉽다. 반전 영화로서는 조금 치명적인 부분일 수 있는데, 이건 내가 영화를 보통보다는 조금 많이 본 편이라 일찍 눈치챈 것일 수도 있다. 특히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프레스티지>를 재미있게 봤다면 쉽게 예상이 가능하다. ‘에밀리의 쌍둥이가 에밀리 대신 죽었다’는 반전은 영화 논리상 뻔하게 연결될 수 밖에 없다. 영화 초중반 에밀리의 죽음 이후 여러가지 복선들이 등장한다. 에밀리를 보았다는 아이들의 증언, 스테파니가 에밀리의 옷장을 다 비우고 자기 옷으로 채우려는 그 짧은 순간 전부 원상 복구되어 있는 초월적 사건.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관객들이 의심해야 할 사항은 다음 두 가지다. 하나, 판타지 장르인가. 그렇지 않다면 둘, 소위 말하는 ‘마술적 리얼리즘’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면? 분명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그렇다면 영화 속 ‘비현실적’ 사건 역시 ‘현실적’으로 해석하려 노력해야 한다. 경찰이 에밀리의 죽음을 확인한 시점에서 시체가 아예 다른 사람일 수는 없고 유전자도, 생김새도 비슷한 사람이라면, 결국 쌍둥이라는 반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 밖에 캐릭터 주변부 설정이 너무나 허술한 것도 아쉽다. 특히 아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10년을 함께 산 남편의 무신경함과 무능함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맥거핀도 너무 많았다. 히치콕 영화 보는 줄... 에밀리의 신비감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겠으나 그래도 과했단 느낌이다. 에밀리가 다니던 회사는 전체가 맥거핀 덩어리다. 그 규모와 화려함, 카운터 여자로 대표되는 불쾌한 신비로움을 공들여 설치한 이 맥거핀 회사는 영화상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다. 에밀리가 자기 아들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는 또 뭘까. 역시 맥거핀이다. 영화에서 잦은 맥거핀은 위험한 장치다. 좋게 봐주면 맥거핀이란 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만, 자칫 선을 넘으면 단순 ‘복선 회수 실패’에 불과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종반부 에밀리와 스테파니의 ‘묘지 씬’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대화로는 거짓을 주고 받으면서 동시에 영상으로는 진실을 보여주는 구조는 마지막을 앞두고 영화를 너무 가볍게 만든다. 물론 실제로도 가벼운 영화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스스로 비밀을 대놓고 풀어 헤쳐 버리며 관객들 머리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한 가지 영화 외적인 특이사항은 (개봉 전 시사회 기준)‘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는 점이다. 근데 별로 잔인하거나 야한 장면이 없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어떤 기준으로 이 영화에 청불 딱지를 매기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로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고 보시면 된다.


영화 자체의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거나 그렇지는 않다. 스릴러로서 치밀함이 부족해서 그렇지, 전체적으로 너무 긴장이 강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아서 간단히 시간 죽이기 적당한 영화였다.



3.5/5.0




* 브런치 무비패스로 관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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