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트롱 May 01. 2019

'성공한 인생'이란 어떤 삶일까?

김우중을 돌아보며...

"리디아의 왕 크리서스는 여행 중이던 아테네 현인 솔론에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중략)... 솔론은 "끝까지 지켜보라"고 말했다. 불행은 워낙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을 끝까지 살고 나서야 그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뉴필로소퍼 Vol.6 p.15


몇 년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분이 오랜 해외 유랑 생활을 포기하고 이제 막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돌아온 그는 가장 먼저 과거 자신과 관계가 있던 몇몇 대학교를 방문해 강연을 했는데, 내가 다니던 학교도 그 중 하나였다.


강연 내용은 별달리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강연 당일 그를 마주했던 인상은 고스란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가 처음 소개 되던 순간, 연단으로 향하는 느릿한 걸음, 그리고 드디어 연단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던 모습 등은 지금까지도 또렷하다. 새하얀 백발에 하얀 눈썹, 구부정한 허리, 50kg 중반대는 될 지도 의심스러워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 떨리는 목소리. 한때 대한민국 재계 2위 그룹사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80세 노인은 그 날 새파랗게 어린 20대 풋내기들 앞에서 정말 펑펑 울었다. 티슈를 받아 팽! 코까지 풀어 몇몇 학생들은 조용히 웃기도 했을 정도다. 그는 "미안하다. 잘 하고 싶었다"를 몇 번이나 되뇌며 울먹였다. 그가 한국 경제에 끼친 과오와 그에 따른 법적 혐의가 어떠한 것이든, 그 날 김우중의 "미안하다"는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을 것이라, 지금도 믿고 있다.

요는 김우중에 대한 연민이 아니다. 위에서 묘사한 김우중의 모습을 천천히 머릿속에 한 번 그려 보라는 것이다. 김우중이라는 존재는 "불행은 워낙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인생을 끝까지 살고 나서야 그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는 솔론의 철학을 정확히 관통한다. 김우중이 누구인가? 혈혈단신 자본금 500만원으로 시작해 재계 서열 2위 글로벌 그룹사를 일궈 낸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의 삶을 시간 흐름에 따라 머리 속에 그래프를 그려보며 따라가 보자.


유년기는 불행했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며 홀어머니 아래 자랐다. 6남매가 먹고 살기 위해 어린 김우중도 생계를 도와야 했다고 한다. 하향 곡선. 하지만 다행히 그는 공부를 아주 잘했다. 당대 최고 엘리트 코스인 '경기중-경기고'를 진학했다. 비록 서울대는 가지 못했지만 꿩 대신 닭으로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자, 상향 곡선. 25세가 되던 해인 1960년 학교를 졸업하고 한성실업에 무난히 취업, 1966년까지 6년간 일한다. 그리고 1967년, 드디어 32세 나이로 대우실업을 창업한다. 이후는 모두가 다 아는 대로. 고작 39세의 나이에 '재벌' 칭호를 얻은 그는 창창대로를 내달렸고, 그 인생 그래프 역시 끝도 모르고 가파르게 치솟았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통틀어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높이를 자랑하던 그 그래프는 1999년, 대우 부도와 동시에 땅을 뚫고 내핵까지 추락하고 만다. 김우중은 범죄자 신분으로 국외를 떠돌게 되고, 이후 20여년간 두 번 다시 재기하지 못한 채 80대에 이른다.


다시 돌아와서, 눈앞에 서 있는 저 백발 노인을 보자. 초라하게 눈물을 흘리며 코를 풀고 있는 저 노인은 한 때 재계 2위 기업 총수였다. 이 나라의 정점에 올랐던 역사적 '거인'이 더없이 초라한 모습으로 눈앞에 있다. 그 인생의 앞선 64년을 성공만 반복한 그는 자기 삶이 65년째 되던 해, 평생동안 일궈온 모든 것들을 한 순간에 잃었다. 그에게 남은 건 엄청난 액수의 과징금과 '실패자', '죄인'이라는 불명예, 그리고 과거 지위와 명성 덕분에 그나마 지금까지 남아 있는 귀빈 '대우(待遇)' 뿐이다. 그런 인물이 눈물로 풍기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를, 이 조잡한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느끼실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이 만남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적인 고민을 시작하게 됐던 것 같다. "행복한 삶이란, 성공한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고민 말이다. 어쩌면 이 때문에 내가 여지껏 미적거리며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원. 여러모로 내게 있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순간이지 않았나 싶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승부수는 20세, 바로 대학이 정해지는 순간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한 편으로는 본격적으로 삶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는 40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삶에서 지출이 가장 많이 늘어나며 동시에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시기인 50대를 가장 잘 살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 김우중은 그 순간 순간들을 누구보다 잘 살아낸 인물이지 않은가? 그 인생의 추락은 64세에 왔고, 회복하지 못한 채 이후 20년을 보냈다. 64년간 고공행진을 하다가 이후 20년은 바닥을 일직선으로 달리는 모양을 한 기이한 그래프. 그의 삶은 '잘 산' 삶일까? 그는 성공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 인생은 실패라고 불러도 괜찮은 걸까.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 그 답을 구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심리테스트가 하나 기억이 난다. 아주 간단한 테스트다. 지금 여기에서 살짝 질문을 던져 볼 테니, 여러분도 한 번 대답해 보시라.


지금 당장 생각나는 사자성어를 하나 말하시오. 바로 시작! 5, 4, 3, 2, 1....



어떻게, 답을 하셨는지?


지금 떠올린 사자성어는 바로


본인의 '인생관'을 뜻한다고 한다. 


개막장 사자성어를 떠올리셨다면, 그거 참 죄송하게 됐다. 참고로 내가 떠올린 사자성어는 '새옹지마'였더랜다...


-뉴필로소퍼 리뷰클럽 일환으로 씀. 뉴필로소퍼vol.6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中 어떤 글을 읽고

매거진의 이전글 가짜 과학에 대처하는 자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