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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Feb 15. 2017

영화 리뷰 <비포 선라이즈> - 비포 3부작의 시작

명작 돌아보기


1.

 사회학적으로 관계는 크게 ‘공적관계’와 ‘사적관계’로 분류된다. 공적관계는 사회에 대한 관계이며 보통 직업적인 것이다. ‘공적’인 관계에는 감정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적관계는 보다 친밀한 관계다. 가족, 친구, 연인 등의 관계가 이에 속한다. 이 중에서도 ‘연인’의 관계는 다른 사적관계들과 비교해 상당한 차별성을 지닌다. 첫째로는 독점적이며 배타적인 관계라는 점에서 그렇고, 둘째로는 연인은 가족, 친구 관계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섹슈얼리티’, 즉 섹스를 갖는 관계라는 점에서 또한 그렇다. 이러한 차별적인 독특함 때문에 연인과 로맨스라는 소재는 시대를 막론하고 꾸준히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왔고,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소설이나 시, 연극, 영화 등 문화 창작물의 주요 소재로 쓰여 왔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3부작>은 이러한 연인관계와 로맨스를 같은 배우, 같은 배경을 활용해 8년마다 촬영해 낸 연작이다. 때문에 관객은 영화를 보며 늙어가는 배우와 그들의 시기별로 다르게 그려지는 사랑을 보다 리얼하게 느낄 수 있다. 3부작 중 시작인 1편에 해당하는 <비포 선라이즈>는 20대 초년의 첫 만남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다룬다.


2.

 <비포 선라이즈>는 파리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탄 프랑스 여성 셀린(줄리 델피)과, 다음 날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엔나에 내려야 하는 미국인 남성 제시(에단 호크), 두 처음 만난 남녀의 무박 2일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극의 90%를 대사로 이끄는 영화이지만 그 와중에도 숨겨진 미장센들의 활용이 매우 뛰어나다. 링클레이터 감독은 구체적인 설명 없이 초반부 간단한 씬 하나로 제시와 셀린의 성격을 제시하고 들어간다. 바로 이들이 서로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하는 씬이다. 제시의 성격은 그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 하나로 설명된다. <내게 필요한 건 사랑뿐>. 처음 만난 여자에게 말을 걸고 깊이 대화하며, 모르는 도시에서 같이 하루를 보내자는 제안까지 하는 제시는 제목만큼이나 열정적이고 저돌적이다. 셀린은 ‘조르주 바타유’의 <마담 에드와다>를 읽는다. 조르주 바타유는 일생을 무신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절대성을 탐구했던 사상가이자 소설가로, 광범위한 분야의 저서를 남겼다. 지적이며 매사를 탐구적으로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셀린의 야무진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바타유는 ‘에로티시즘’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는 에로티시즘을 ‘생식이나 자식에 대한 배려와 같은 모든 실용적이고 일반적인 사회적 목적과 대립하는 행위로, 단지 자신의 열락과 열광, 광기 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똑 부러지는 셀린이 왜 처음 만난 남자와의 ‘무모한’ 동행을 수락했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장치다. 

모든 솔로 여행가들의 은근한 로망


3.

 이들이 내리는 도시 ‘비엔나’는 프로이트가 나고 자라 정신분석학을 정립한 도시이기도 하다. 프로이트는 섹슈얼리티가 이성을 지배한다고 주장했다. 프로이트의 도시 비엔나에서 그들은 이성보다는 성적 감정을 따른다. 연인이 느낄 수 있는 사랑 이전에 필연적으로 상대에 대한 성적인 감정이 있다. 그러나 둘의 경계는 꽤나 모호하다. 제시가 “성적인 감정은 말해줄 수 있지만, 사랑은... (중략) 사랑은 나도 잘 모르겠어”라고 말했듯, 연인에 대한 ‘사랑’과 성적인 감정을 분리해서 설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초년의 사랑이라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중년과 노년에 비해 주체가 불안정하고 감정의 기복이 큰 탓에 이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으면서 수다스레 진행되는 영화는 상대를 잘 모르기에, 그리고 극단적으로 제한된 시간이 있기에 오히려 더욱 불타오를 수 있는 초년의 이 역설적인 사랑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천천히 따라가며 보여준다.

개인적인 <비포 선라이즈> 베스트 씬


4.

 성적인 감정에 끌려 만난 남녀는 다음 단계인 ‘성적 긴장감’에 돌입한다. 영화 속 음악 감상실이 바로 그 역할이다. 케스 블룸의 ‘Come here’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서로 눈을 못 마주치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며 어색함과 긴장감을 공유하는 그 순간. 이후 키스를 하고 밤새 나눈 대화를 통해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둘은, 마침내 섹스로서 상대에 대한 섹슈얼리티를 완성시킨다. 서로에 대한 섹슈얼리티를 완성한 둘은 이제 ‘사랑’을 완성하게 된 것일까? 영화의 말미에서 제시는 ‘시간’에 대한 시를 읊는다. ‘시간이 그대를 기만하지 못하게 하시오. 그대는 시간을 정복할 수 없소.’ 이에 셀린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상대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될 때 난 그를 사랑하게 될 거 같아’ 결국 초년의 불안정한 사랑은 짧은 순간에도 불같이 타오를 수 있지만, 진정한 사랑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타는 사랑의 초기를 지나, 중기에 접어들면 영화 초반부 소리 지르며 싸우던 독일 부부처럼 시간이 둘을 기만할지도 모른다. 허나 그런 과정을 하나하나 거치면서 시간이 흐르면, 말없이 다른 것을 보면서도 서로의 행동 하나하나를 이해할 수 있는 노부부와 같은 원숙한 사랑이 완성되는 것이다.




★★★☆






p.s)총 16년에 걸쳐 같은 배우, 같은 소재로 비포 3부작을 찍어내며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은 전설로 남을 영화 <보이후드>의 감독이기도 하다. 네이버 전문가 평점 9.5를 자랑하는(베를린 국제영화제 감독상 및 각종 해외 비평가 협회 작품상 수상 등은 덤이다) 이 전설의 영화는 같은 배우들을 매년 만나 15분씩, 무려 12년 동안 촬영해 냈다. 참고로 이 영화에도 에단 호크가 12년간 천천히 늙어가며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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