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았지

"Did you fall for it? (hehe)"

by 장군

지난 두 주 정도 아기가 아팠었다. 가벼운 감기 증상이었지만 행여 심해지지나 않을까 시댁 식구들과 친정 가족 모두가 전전긍긍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주말 즈음 아기가 다 나았는데, 문제는 딱 그때부터 남편이 아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기가 옮겼나? 아니면 아기가 아픈 동안 남편이 걱정을 많이 하다가 아기가 나으면서 긴장이 풀린 걸까?) 시아버님 사업을 거들면서 일하는 남편인데, 요즘 밤낮으로 일이 좀 많다 싶더니 결국 몸살감기가 나버렸다.


금요일 밤, 별로 춥지 않은 날씨였는데 남편은 스웨터를 입고 자겠다고 했다. 평소 우리 둘 중에서 추위 타는 건 내 몫, 더위 타는 건 남편 담당인데, 이날만큼은 둘의 역할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스웨터를 주섬주섬 입고 침대 위에 누운 남편의 이마를 만져보니 열이 올라있었다. 다이소에서 예전에 사다 놓은 얼음주머니에 물과 얼음을 채워서 갖다 주고, 물도 마시라고 코스트코에서 사다 놓은 물병도 가져다줬다.

토요일 아침부터 남편은 거의 하루 종일을 내리 자다시피 했고, 그러고 나서도 열은 일요일 오전까지도 잘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일요일 오후부터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한 남편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 반, 다행이라는 생각 반이었다.


오늘 (화요일) 로테이션 일이 끝나고 집에 오는 길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은 오늘 일이 일찍 끝나서 진작부터 집에 일찍 와있다고 그랬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 하느라 다리가 저려서 그러는데 헬스장 가서 좀 걷다 와도 되겠냐고 남편에게 물으니 선뜻 그러라고 한다. 내가 밖으로 도는 동안 아기 봐주는 게 고마워서 "집 갈 때 뭐 사갈까?"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funnyuns?"이라고 대답한다.


Screen Shot 2018-03-20 at 9.42.29 PM.png 남편은 제일 오른쪽에 있는 매운맛을 좋아한다


사진에 있는 건 24.8g 짜리 귀여운(?) 크기이지만, 난 남편에 대한 사랑을 (ㅋㅋ) 표현하기 위해 160g 짜리 대용량 funnyuns를 사들고 집에 갔다. 아직도 몸살감기 기운이 있는 건지 남편은 담요를 몸에 두르고 있었다. 보행기 타고 걸어 다니던 아기가 나한테 손을 벌려 안아달라는 신호를 보내온 터라, 아기를 안고 집안을 한 바퀴 돌고 있는데 소파에 앉아있던 남편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담요를 온몸에 두르고 눈에 눈물이 한가득 고여서 기침하는 남편이 걱정되어서 "괜찮아?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나았나 보네" 하니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남편. "물 좀 갖다 줄게!!"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그 옆에 계시던 시어머니가 남편이랑 날 보고 씨익 웃으셨다. 참던 웃음을 터뜨리며 남편이 하는 말, "나 이제 안아퍼. Funnyuns 한 번에 많이 먹었더니 매워서 기침 난 거야."

"뭐야, 진짜야? 근데 담요는 왜 두르고 있어?"하고 물으니 "그냥"이라고 대답하는 남편. 애기 놀이터(플레이팬) 안에 있는 담요 두르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어제처럼 아기랑 같이 들어가서 놀다가 두르고 나온 모양이었다. "나 아직도 아픈 줄 알았어? 속았어? ㅋㅋ"하고 씨익 웃어버리는 남편. 잘생겼으니까 봐준다!


IMG_6471.JPG 아들과 큰 아들


2011년 12월, 지금의 남편과 내가 막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같은 반에서 수업 들으면서 공부는 쭉 같이 해왔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해서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단계였을 때.

어쩌다가 운동 얘기가 나와서, 난 한국에 있는 동안은 그냥 학교 체육시간에 수행평가 준비하느라 공 몇 번 튀겨본 게 전부라고 그랬었다. 그래도 고2 때 여기 와 미국 고등학교 2년 다니는 동안 체육시간에 테니스 수업 한 학기 동안 들었다고, 그나마 그게 내가 제일 잘하는 (?) 운동이라는 말도 해줬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나 고등학교 때 우리 학년 전체에서 나 테니스 랭킹 2위였어"라고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눈 똥-그래 지면서 "우와, 진짜??"하고 되물으니,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아니. 물론 뻥이지"라고 하던 남편. -_-; (그때부터였나요 ... 남편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왠지 뭔가 뻥인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던 게.)


평소에는 한없이 진솔하고 성실한 남편이라 가끔씩 이렇게 장난을 치면 난 또 100% 속아버린다. 위에서 말한 이야기들 외에도 분명 더 많이 속았던 것 같은데 ... 이 글을 쓰기 직전, 남편에게 내가 속았던 적 또 있지 않느냐고 물어봐보니 없는 것 같다고 한다. 이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 있을 때마다 까먹지 않게 블로그에 잘 기록을 해둬야겠다.


+ 제목 배경 사진 출처는 여기

+ 글 중간에 있는 funnyuns 사진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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