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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Mar 30. 2018

학생 약사로서 간호사나 의사랑 일하는 것

로테이션 1, 스물아홉 번째 날

내가 다니는 학교엔 사실 약사 학위를 따는 약대 프로그램 말고도 다른 전문직들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의사, 치과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수의사, 안과 의사 학위를 따는 프로그램들이다.

이를 장점으로 활용하여 학교에서 자랑스러워하는 교육과정 중 하나는 Inter-professional Education (IPE; 의료분야 간 상호 협력 교육--슬지 언니, 번역 넘 자연스럽게 도와줘서 고마워요!)이다.

각각의 프로그램들에서 학생들을 한두 명씩 모아 모두 7-9명이 한 팀을 이루어 한 달에 한 번씩, 1년 동안 만나며 주어진 환자 케이스를 같이 풀어나가면서 1-2시간 동안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는 교육 방식이다.


학교의 한 교수님 말에 의하면, 약대 인터뷰할 때 만 해도 학교 웹사이트 등에서 이 IPE에 대해 주워듣고 가서 "이 학교 다니면서 IPE에 참여하게 되기를 고대합니다!, " "흉내만 내는 다른 학교와 달리 정말 여러 프로그램의 학생들이 다 같이 모인다는 이 학교의 IPE를 꼭 이 학교의 학생이 되어 직접 겪어보고 싶어요" 등 입에 발린 (?) 말을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뚜껑 열고 보면 실망하는 학생들이 적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도 반 친구들과 이야기해 본 결과, 각 팀마다의 분위기에 따라 IPE를 무지 좋아하는 친구들과, 무지 싫어라 하는 학생들 두 그룹으로 나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진 속에서 찾아보자!: 1 교수님, 1 의사보조인력 학과 학생, 1 수의대생, 1 간호대생, 1 물리치료학과생, 1 안과대학생, 2 의대생, 2 약대생 (+ 1 지나가는 행인)

운이 좋았던 건지, 내가 1학년 때 만난 IPE 팀은 서로를 참 많이 좋아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조금 더 오래 남아있기도 하며 서로의 프로그램들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했고, 4년제 프로그램인 학생들(나 같은 약대생 ㅠㅠ)은 3년제 프로그램인 다른 학생들에게 대한 부러움을 마구마구 표현하기도 하며, 그렇게 IPE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곤 했다.


이번 로테이션이 다 끝나가는 이 시점에 (전체 30일 중 오늘이 29번째 날이었다!) 문득 돌이켜보니 매일 해야 했던 일들 중 하나가 바로 IPE처럼 여러 의료분야 관계자들과 상호작용 해야 했던 Medication Review 였다는 것.

나의 매니지드 케어 (Managed Care) 로테이션인 이 회사는, 보험회사를 대행해 비싼 약들이 관련된 환자 케이스들에 보험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심사하는 역할을 하는 회사이다. 그래서 약사, 약대 인턴 (나), 간호사, 의사 등이 모여 과연 이 비싼 약들이 이 환자에게 지금 꼭 필요한지, 또 각 케이스를 통과시켜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열띤 의견 교환을 하는 미팅이 거의 매일 있다시피 했다.


간호사들이 비싼 약들이 관련된 각 케이스들을 모아서 정리해주면, 약사님과 의사 프리셉터가 관련 가이드라인과 자기들 경험에서 나온 지식을 바탕으로 적절한 약들이 적절한 시기에 처방되는 것인지 판단하고, 인턴인 내가 약의 용량은 알맞게 처방되었는지, 또 이 케이스를 통과시킴으로써 보험사가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얼마인지 등을 계산해서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오늘 있던 케이스에 관해 내가 작성해 보낸 이메일의 일부

학교에서부터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의견 교환 해오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고, 또 서로의 관할 업무에 지장 주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내 의견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대화 기술을 야금야금 배워와서 그런지 이렇게 실제로 로테이션을 하는 중에 간호사, 의사 등과 케이스를 같이 해결하는 게 참 재밌었다. (다른 로테이션에서는 이런 상호 작용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많이 주어지길 기대해 본다!)


로테이션의 끝에서 두 번째 날이었던 오늘. 큰 이벤트가 하나 더 있었다.

미국의 보험 회사들은 어떤 약을 어느 정도 레벨로 커버해주는지 각 약마다 자기들이 정한 티어tier를 적어놓은 "formulary" 리스트를 매 사분기마다 업데이트하곤 하는데 (3달에 한 번씩), 업데이트 직전에 보험회사 내부에서 갖는 큰 미팅을 P&T (Pharmacy and Therapeutics)라고 한다.

이번에 어떤 보험 회사가 새로 론칭하면서 자기들 P&T에 나의 약사 프리셉터를 초대했는데, 약사님께서 나도 친히 데려가 주신 것이다.


약대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한 보험회사 P&T 미팅에 갈 기회가 생겨서 갔었다가 논의 주제를 그때그때 따라가지 못하고 이해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P&T 미팅에 갈 기회가 생기고도 과연 내가 이 미팅에서 졸지 않고 (?) 많은 걸 배워올 수 있을까 내심 걱정 반 기대 반 되던 참이었다.

이번 P&T의 결과는? 대 성공. 조금 먼 거리 운전이긴 했지만 (왕복 3시간) 그래도 갔다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데려가 주신 약사 프리셉터와, 또 학생일 뿐인 나를 자기들의 첫 P&T에 오게끔 배려해주신 보험회사 측이 참 많이 고마웠다.


그런데 1학년 때 뭣도 모르고 참관했던 P&T에서도 그렇고, 오늘의 P&T 미팅에서도 그렇고 약 formulary 관련된 미팅이라고 해서 약사들만 참여하는 게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눈으로 직접 보고 배웠다.

P&T 미팅은 의료분야 간 상호작용을 필수불가결로 하는 많은 활동들 중의 한 예시였던 것이다.

보험회사 내부에서 크고 작은 사무직 일을 맡은 의사나 의사보조인력 physician assistant들은 물론, 보험회사 밖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직접 처방전을 쓰는 의사나 간호사, 또 P&T 미팅에서 논의될 자료들을 정리하고 검토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함께 준비하고, 또 미팅의 결과가 다시 이들에게 골고루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진정 참 의미의 의료분야 간 상호작용이었다.


그래도 약에 관한 미팅이었던 만큼, 역시 메인 발표는 한 약사님이 했는데, 왠지 나도 곧 저런 발표 하고 싶다는 (또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혼자 가슴 벅찼다.


사실 곧 하기는 한다.

이번 로테이션에서 도왔던 프로젝트들 중 하나가 새로운 약들에 대한 승인/거절 가이드라인 만들기였는데, 내가 만든 가이드라인 중 하나를 4월 중순에 있을, 지금 내가 로테이션하는 곳의 P&T 미팅에서 발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 발표 혹시 내가 할 수 있겠느냐고 지금 프리셉터께 오늘 여쭤 봄. 2. 내가 만든 가이드라인 다른 사람이 발표하게 생겼다고 아쉬워하시던 차, "정말 네가 해볼래?" 하시면서 다음 프리셉터께 P&T 날짜와 시간 말씀드리고 허락받아오라고 그러심--P&T 미팅이 주중에, 또 한낮에 있기 때문. 3. 다음 프리셉터인 학교 교수님께 이메일로 여쭤 봄. 4. 흔쾌히 그러라고 하심.

결론은 내가 만든 가이드라인 내가 발표하게 되어서, 나도, 또 지금 프리셉터도 모두 모두 행복했다고 한다)


내일이 벌써 로테이션 마지막 날이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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