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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Apr 02. 2018

시작이 반이라면, 끝은 그 나머지 반

로테이션 1, 서른 번째 날

약대 3학년 들어 처음 하게 된 로테이션이 어느새 끝났다.

첫 주에는 약사 프리셉터께서 하와이로 출장을 갔다 오시는 바람에 그냥 온라인/오프라인 미팅들만 참여하고 마는 정도였지만, 둘째 주부터 마지막 여섯째 주 까지 총 5주간 정말 열심히 달려왔던 것 같다.

출근 시간은 아침 9시 정각, 집에 가는 시간은 오후 4-5시 정도였다.

점심은 안 먹는 날도 가끔 있었지만 보통 1시간 정도로 충분하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로테이션 장소 근처에 있는 여러 음식점 들을 코-인턴과 같이 돌며 이것저것 많이 먹어봤었다. (스시, 하와이안 음식, 타이 음식, 베트남 음식, 멕시칸 음식, 맥도날드, 월마드표 군것질들 등등)


프리셉터는 메인으로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시는 약사 프리셉터 한분과, 우리의 약사 프리셉터님과 같은 사무실을 쓰시는 의사 프리셉터 한분, 이렇게 두 분이셨다.

같이 일 한 다른 직업군들professionals은 우선 매일같이 비싼 약 리뷰를 같이 한 2명의 간호사들 (남 1 여 1), CAP deduct project를 하며 같이 일하고 또 우리 약사님께 나에 대한 좋은 피드백을 주셨던 의사 한분, 이런저런 자료를 제공하고 또 자료 분석을 도와주신 자료 분석가들 여러분, 또 매니지드캐어 분야라 매일 매 순간 컴퓨터를 잡고 살다시피 해야 하는데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 사무실로 달려와주신 IT 테크니션분들 등이 있었다.


미팅 스케쥴만 적어놓았는데도 이정도. 근데 이렇게 6주의 일정 적는 게 좋은 생각인것 같아 다음 로테이션에도 자체적으로 이렇게 일정을 한눈에 볼수 있게끔 일정표를 만들 생각이다.


6주 동안 로테이션하면서 (사실장 둘째 주부터 여섯째 주 까지 5주간) 해온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은 다음과 같다.


1. CAP deduct 프로젝트

- 우선, 매니지드케어 기관들의 상하 관계는 이렇다.

연방 정부나 주 정부의 건강 보험 프로그램 (Medicare와 Medicaid 혹은 MediCal)

그 정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보험회사들 (큰 이름들은 HealthNet, Humana, IEHP, Molina, 등이 있다)

그 보험회사들에게 아예 저 위험군 환자들이나 혹은 아예 복잡한 케이스들의 환자들을 외주 받아 이 환자들의 진료에 필요한 약과 의료 서비스 등을 승인/거절하는 역할을 하는 회사들 (내가 로테이션 한 회사가 바로 이런 회사들 중 하나이다)

- CAP deduct의 CAP은 "capitation" 의 약자이다. 위에서 말한 "보험회사"들이 "내가 로테이션 한 회사"같은 기관에다가 자신들의 환자를 외주 하면서 지불하기로 정한 돈을 capitation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capitation에서 보험회사가 다시 돈을 떼어가는 경우(capitation deduction -- "CAP deduct")가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할당된 환자들과 그의 의사들은 예를 들어 약에 대한 사전 승인 신청을 우리 회사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이 승인 신청이 우리 회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보험 회사로 보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 보험회사는 각각의 케이스를 제대로 리뷰 하지 않고 곧장 승인 해 버리곤 한다. (이때 보험회사들은 우리 회사에 이걸 알려줄 의무가 없고, 이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승인된 약들이 보험회사가 "선호하는 약품 (preferred agent)"군으로 정한 약들이 아니라면, 이 약들은 나중에 보험회사에서 돈을 떼어가기 좋은 구실이 된다.

환자들이 승인된 약들을 보험회사가 정한 "선호하는 약국 (preferred pharmacy)"에서 찾아가지 않는다면, 이 과정에서 또 보험회사가 우리 회사에 주기로 한 돈의 일부를 떼어간다.

- 그래서, 내가 이 프로젝트에서 한 일은 바로: 보험회사가 우리에게 준 환자들의 의사들에게, 사전 승인 신청을 우리 회사에 직접 하도록 부탁하는 편지의 초안을 작성하는 일 이었다.

- 우리 회사는 미국 안의 여러 주, 또 캘리포니아 안에서만 해도 여러 메디컬 그룹을 아우르는 은근 여기저기 발 뻗은 곳 많은 그런 작지만 큰 회사였다. 이 CAP deduct가 제일 많이 되는 곳을 보니 북쪽 캘리포니아에 있는 메디컬 그룹에서 "biological immunomodulator"라는 약 군이었고, 그래서 북쪽 캘리포니아의 의사들을 타겟으로 편지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 이 과정에서 그 북쪽 캘리포니아의 메디컬 그룹을 총괄하는 메디컬 디렉터 의사와 여러 이메일을 주고받았었는데, 이 의사가 나를 꽤나 좋게 보더라고 나의 약사 프리셉터께서 귀띔해주셔서 더 신나게 일을 했었다.

- 초안과 각 의사들에게 보내질 맞춤형 첨부 파일들을 모두 만들었는데, 막상 편지가 발송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새로운 자료와 분석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서). 그래서 내가 로테이션을 끝내기 전에 편지를 발송할 수 없게 되었고, 이 프로젝트는 이제 다음 학생의 손으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2. Medication grid

- 주어진 약 군의 약품들과 가격들, 또 어디에 그 약들이 쓰이는지 조사해서 한 엑셀 파일에 모으는 것.

로테이션 초기에 항우울증 약 들을 조사해서 차트를 하나 만들었다

로테이션 중기 즈음에 가서는 biological immunomodulator 차트를 만들었다


3. 사전 승인 가이드라인 업데이트 하기 / 만들기

- 보험회사에서 외주 받아 약을 승인/거절하는 회사이니만큼, 각각의 케이스들을 일관성 있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각 약품들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 내가 이 곳에 와 로테이션하기 전에 10명 정도의 학생들이 7번의 로테이션 기간을 거쳐 이 회사에 있었는데, 이들이 만든 가이드라인을 리뷰하는 일이 나와 코 인턴의 첫 임무였다.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 만든 가이드라인이라, 문서의 제목부터 시작해서 문서 내부의 형식 등이 일관성이 없었다.

내 성격상 "안 예쁜 문서" 예쁘게 만들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터라, 문서들 제목 형식과 내용 구성을 일관성 있게 다 바꿔버렸다.

- 마지막 주에는 직접 가이드라인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일하는 방식이 약사님 마음에 무척 들었던 모양이다. 가이드라인 만드는 것 돕는 역할로 내가 회사에서 정식으로 일할 수 있게끔 힘써 보시겠다고 로테이션 마지막 날의 다음 날 (토요일에) 이메일을 해주셨다.

4월 중순에 이 회사에서 P&T미팅이 있는데, 여기에서 내가 만든 가이드라인을 직접 발표할 수 있게 해 주시기도 했다.


4. 비싼 약 케이스 리뷰하기

- 간호사들, 다른 약사님과 의사 프리셉터들과 함께 비싼 약이 관련된 케이스를 같이 리뷰하며 이 케이스를 승인해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결론을 내린다.

- 승인하기로 한 케이스에는 인턴들이 신청된 약의 용량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 이 미팅은 2-3일에 한 번씩 있었고 (스케줄 상으로는 매일 있긴 하지만, 어려운 케이스가 없는 날엔 간호사들이 미팅 취소 이메일을 보내 우리에게 알려주곤 했다) 한 미팅에는 두 개 정도의 케이스가 논의되었다.


5. FDA 승인 새로 난 약들 정보 정리하기

- 한 달에 5-6개 정도의 약들이 새로이 승인된다. 이 약들이 사전 승인 신청될 경우에 대비해 미리 정보를 찾아놓는 것이 중요하다.


6. 뉴스레터

- 우리 회사에 속한 메디컬 그룹들에서 일을 하는 의사들에게 보내질 뉴스레터를 만드는 일이다. 주로 약사님이 하시는 일이긴 하지만, 내가 만든 항우울제 약품 차트가 뉴스레터에 보내질 거라고 얘기하셨었다.


7. 발표 자료 만들고, 발표 하기

- 우울증에 대한 자료를 모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만들었었다. 하와이에서 일하는 간호사들과 스카이프를 통해 슬라이드를 쉐어 하며 발표를 했었는데, 발표 내내 싸 하게 느껴진 분위기와 질문이 단 하나도 없었던 점에 내심 서운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2일 뒤, 약사님께서 그 간호사들이 나의 발표에 대한 평가를 준 피드백을 몰아서 몽땅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었다. (다들 너무 집중하느라 아무 말이 없었던 거였구나.. 흑흑)

- 1번에서 말한 CAP deduct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 자료를 만들었지만, 발표를 할 기회는 없었다. 약사님 말씀에 의하면 같이 일한 북쪽 캘리포니아의 의사가 이 발표 자료를 이용해 뭔가 발표할 수도 있다고 그러시긴 했지만 ...


8. 보험회사의 약 formulary에 대한 티어tier 정리 차트

- 우리 회사에게 외주를 주는 보험회사는 많고 많다. 그중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formulary 3개와 하와이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formulary 3개를 엑셀 차트로 정리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 약들이 너무 많고 또 한 약도 어떤 용량인지, 어떤 route of administration 인지 등에 따라 티어가 다른 경우가 많아서 이 차트를 다 못 끝냈다.

- 그런데 또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보험회사들이 자기들 formulary를 매 사분기마다 업데이트한다는 것. 나와 코 인턴이 열심히 작성해서 3월 말에 완성시켜 놓았은들, 4월 초가 되면 새로운 formulary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9. 기타 등등

- 약사님이 열심히 활동하시는 약사 단체에서 갖는 월별 모임에 참석하기

- 약사님이 초대된 다른 보험회사의 P&T 같이 따라갔다 오기

- 여러 온라인 미팅 (Webinar, WebEx 등) 참석해서 강의 노트 필기하기


1학년 때부터 막연하게 매니지드 케어 약사가 되고 싶다 생각해왔었는데 (환자의 치료 옵션을 생각할 때 약의 안전성, 효능은 물론 가격까지 생각한다니, 보험료가 비싸기로 소문난 미국에서 이 매니지드케어 만큼 대담하게 문제 제기와 문제의 해결방안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제도가 어디 있을까?), 이번 로테이션을 통해 정말 많이 직접 보고 듣고 배웠다. 매니지드 케어 약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약사님 조언대로 이 "매니지드 케어" 뿐만 아니라 임상적인 지식도 함께 겸비한 "클리니컬 매니지드 케어 clinical managed-care " 약사가 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또, 그냥 단순하게 "약사" 하나로 그치는 게 아니라, 조직의 안에서 약사의 위치(상하관계)는 아주 낮을 수도, 또 아주 높을 수도 있다는 것도 새삼 배웠다. 지금 약사 프리셉터의 경우 이 회사의 vice president이다. 그냥 staff pharmacist로 있는 것과는 또 차원이 다른 그런 레벨!



+ 제목 부분의 배경 사진의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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