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안 궁금해하고 안 물어본 이야기
내가 미국에 처음 이민 왔을 때 여기서 먼저 터를 잡고 살고 계시던 고모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다.
"내가 오랜만에 한국에 딱 들어갔는데 거리에서 문득 사람들을 보니 꼭 컬러 티비 보다가 흑백 티비 보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 있지.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짙은 머리 색에 짙은 눈동자들 가지고 있잖아. 그에 비해 여기 사는 사람들은 머리 색도, 눈동자 색도 다들 제각각이라 더 재밌는 거 같아."
2008년에 처음 미국에 온 이후로 지금껏 10년 가까이 한국에 나가본 적이 없어서 아직 고모의 그 말씀을 직접 체험해 보지는 못했다. 고등학교 졸업, 대학교 입학, 편입과 졸업. 결혼. 대학원 입학 그리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공부.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한국에 한번 돌아갈 기회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여기서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이 나 스스로 대견하다. (물론 이 뒤에는 40년 넘도록 살아온 한국 땅을 뒤로하고 자식들 교육을 위해 낯선 땅에 와서 맨몸으로 고생하신 우리 엄마와 아빠의 피땀 섞인 노력이 있다. 늘 감사 드림과 동시에 앞으로도 크게 갚아 드리고 싶은 부분이다.)
남편은 나보다 짙은 피부색에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와 커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중동 사람처럼 생겼다는 말을 자주 듣는 멕시코계 미국인이다. 주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남편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나에게 묻곤 한다. 남편이 한국인이 아닌데 혹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느냐고. (이 질문들을 여러 사람들--한국인 친구들, 비한국인(?) 동양인 친구들, 또 그리고 비동양인 친구들까지--에게 두루 받아온 걸 보면 뭔가 공통적으로 의아해하고 궁금해하는 부분인 것 같다.) 미국에 온 첫날부터 엄마가 농담으로 나와 동생들에게 "너희들 이제 미국에 왔으니까 백인, 흑인, 또 다른 인종 사람들하고 결혼하고 그래라!"하고 말씀해오신 걸 알면 까무러치려나?
어쨌든, 남편과 나는 2011년에 처음 만났다. 현재 2018년 기준, 미국에 살아온 10년 중 7-8년을 함께 해오고 있으니 이 사람, 나의 미국 생활 여정에 있어 정말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다. 고2 때 미국으로 온 뒤 여기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입학한 대학교(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만났다. 우리가 처음 같이 들은 수업은 2011년 가을학기 유기화학 1 실험 반이었다. 인기가 많은 수업이라 금세 자리가 차서 나는 수강 대기 목록에 이름이 올라간 상태였다. 자리가 나기만을 바라며 무작정 실험실로 찾아간 지 삼일 만에 나에게 운 좋게 자리가 주어졌고, 그 주어진 자리가 지금 남편의 옆 자리였다. 나는 반에서 실험을 항상 제일 늦게 끝내는 느림보 거북이 같은 학생이었는데, 언제부턴가 남편이 자기 실험이 다 끝나고도 내가 끝날 때까지 옆에서 말 붙여주고 실험실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같이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도 같이 하고, 인앤아웃 햄버거 집에 가서 같이 끼니를 때우기도 하며 더욱더 친하게 지내게 되었고, 그 해 12월 우리는 남자친구 / 여자친구가 되었다.
지금 남편이 당시 남자친구로서 나에게, 또 우리 부모님께 점수를 크게 따게 된 것은 이듬해 3월이었다. 유기화학 2 중간고사 전 날 여느 때처럼 우리는 학교 근처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밤 11시 40분쯤, 졸려서 무거운 눈을 억지로 떠가며 운전 중이었다. 한밤 중이라 그런지 다른 차들은 거의 없었다. 잠이 들랑 말랑, 난 분명 3차선에 있었는데 문득 2차선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너무 졸린가 보다. 그래도 십분 뒤면 집에 도착한다'는 생각을 하며 운전을 계속하다가 ...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하얀 에어백이 터져 있었다. 내 차가 중앙 화단에 있던 가로등을 받아 가로등이 쓰러져 있었고 차의 엔진 부분은 두 갈래로 움푹 파여 들어가 있었다. 왼쪽 눈에 피가 차서 사고 이후 한 달간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고, 차는 폐차시켜야 했다. 중간고사는 여차저차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문제는 당장 학교에 타고 다닐 차가 없다는 것.
이때 흔쾌히 나의 운전수를 자청한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학교로부터 우리 집 또 남편의 집은 크게 삼각형을 이루었는데, 삼각형의 각 변의 거리가 차로 (교통체증 없을 때) 30-40분은 족히 되는 거리였다. 나 때문에 하루에 한두 시간 이상을 더 운전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난 지금 남편에게 이 사람이면 내가 평생을 같이 살 수 있겠다 하는 확신이 생겼다.
2014년 5월, 남자친구의 차 운전석에 앉아 차를 빼려는 순간 프러포즈를 받았다. 각자 새로운 학교로 편입하고 나서 장거리 연애를 2년 정도 하고 난 시점이었다. 어느 근사한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는데, 평소 술을 잘 마시지도 않는 남자친구가 와인까지 시킨 뭔가 특별하고 이상한 (?) 날이었다. 레스토랑 안에서 나 혼자 속으로 '혹시 오늘 무언가 큰 일(프러포즈)이 일어나려나?' 내심 기대하다가 막상 테이블 계산이 다 끝날 때까지 아무 일 없길래 '아 나 혼자 김칫국 마셨나 보다' 하고 있던 참이었다. 남자친구 혼자서 와인을 마신 터라 돌아가는 길 운전은 내가 자청했는데, 이렇게 운전석에 앉아 프러포즈를 받을 줄이야. 뭔가 허무했지만 반지가 너무 예뻤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한국에서 여고딩 시절 새끼손가락에 리본 모양 반지를 끼고 다녔었다고, 그 비슷한 모양의 반지가 미국에선 찾기 힘들어 속상하다고 남자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모티브로 삼아 찾은듯한, 보석이 올림픽 메달 단상 형대로 박힌 (나름 리본 모양의) 반지였다.
결혼식은 그다음 해 3월 말, 봄 방학중에 했다. 우리 둘 다 작은 결혼식을 원했고, 또 부모님께 너무 큰 도움받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서 해결해보자는 생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둘이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 학교에서 받은 장학금 등을 합쳐 작은 레스토랑 하나를 빌렸고 양가 가족과 몇 명의 친구들만 초대해 40-50명 남짓한 하객들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비용은 이것저것 다 합쳐서 5-6천 불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중 식비 포함된 레스토랑 빌리는 값이 4,500불 정도로 제일 큰 지출이었다.) 우리가 모아둔 돈이랑 아슬아슬하게 금액이 맞았는데, 생각도 안 했었던 축의금이 결혼식날 의외로 여유 있게 들어와 그 돈으로 신혼여행 준비를 할 수가 있었다. (하객분들께 축의금 받지 않는다고 말씀드렸었지만, 또 사람들 정이 그게 아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올해 3월이면 벌써 결혼 3주년이고, 벌써 우리 둘 사이에는 귀여운 아기도 태어났다. 아기는 자기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고, 남편은 신나게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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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개 정도는 무시했다. ("남자 친구" 보다 "남자친구"로 쓰고 싶어서 등)
- "오랜만에"가 맞고 "오랫만에"는 틀리다. (이거 또 틀렸다.)
- "금세"가 맞고 "금새"는 틀리다.
- "프러포즈"가 맞고 "프로포즈"는 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