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 딸이 착한 건 엄마가 착한 엄마라서에요
엄마!
3년 전 결혼하면서 나와 살기 시작한 이후로 그래도 학교 갈 때나 어디 운전해서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엄마한테 매일 전화하다시피 하긴 하지만. 엄마의 아침인사 카톡으로 시작해 엄마의 밤 인사로 끝이 나는 가족 카톡으로도 하루 종일 서로 시간 날 때 한두 마디씩 써놓고 나중에 편할 때 확인하고 대답하는 게 일상이지만.
그래도 2-3주에 한 번씩 주말에 일부러 시간 내서 엄마 아빠 보러 내려갔다오면 그건 또 전화나 카톡으로 얘기할 때랑은 다른 느낌이 들어.
특히 아기가 태어난 이후로는 나, 아기, 남편 우리 세 식구가 이번 주말에 오려나 다음 주말에 오려나 엄마가 속으로 더 많이 기다리고 기대한다는 거 잘 알아. 아기가 3주에 한번 꼴로 보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보다 같이 살며 매일 얼굴 보는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를 더 좋아하면 어떡하나 속으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겠지?
이번 주말은 멀리서 학교 다니는 막내가 봄방학 맞아서 집에 와 있던 터라, 간만에 우리 원조(?) 가족 다섯 명(아빠, 엄마, 그리고 우리 세 자매)이 한 지붕 아래 모인, 조금은 특별한 주말이었지. 아기도 태어났겠다 이제 우리 "가족"은 다섯 명보다 더 많아졌지만 그래도 난 아직도 다섯이라는 숫자가 괜히 익숙하고 좋아.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숫자는 3과 5야. 또 35, 아니면 53일 때도 있는데, 3은 나랑 동생들이랑 우리가 세명이기 때문이고, 5는 우리 가족이 다섯 명이기 때문이지. 엄마처럼 나도 아기를 3명 낳고 싶어. 세 자매, 형제 혹은 남매. 세 명이 딱 좋은 숫자인 것 같아!)
또 이번 주말은 오랜만에 우리 세 자매가 모여서 같이 떡볶이도 먹으러 가고, 또 막내 배웅하러 공항에도 같이 갔다 오고 하면서 짧지만 즐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온 주말이었어. 막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그 날에도 엄마는 일 때문에 우리와 같이 놀지 못했지. 같이 놀았으면 참 좋았을 텐데, 일에 매여서 엄마가 날씨 화창한 날에도 아무 데도 못 가고 세탁소에만 있어야 할 때는 괜히 내가 다 미안하고 마음이 좀 그래.
십 년 전, 한국에서 아빠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우리 다섯 가족 배부르고 따뜻하게 먹고살기에 충분한 월급을 받고 직장 다니시는 장 부장님 이셨고, 엄마는 우리가 학교 갔다 오면 늘 집에 있는 (그러면서도 동네 아주머니들과 동네가 들썩들썩할 정도로 신나게 웃고 수다 떨던, "아줌마 합창단"의 일원이었지), 내가 남자친구 얘기부터 학교 성적 얘기나 친구들 간의 사소한 고민까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친구 같은 엄마였지.
그러던 와중에,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7년 겨울, 십 년도 더 전에 신청해놓은 미국 비자가 드디어 (혹은 결국?) 나와서 우리 가족은 이민을 가네 마네 그 당시 꽤나 심각하게 얘기를 주고받았던 기억이 나. 그때 당시 어렸던 나는 미국에 가면 무조건 좋은 건 줄 알고, 미국에 가고 말고 고민을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 철없던 생각을 하기도 했어.
2008년 5월, 우리들은 학교에 자퇴서를 냈지. 미국 가면 필요하다고 한국 학교에서의 성적표들을 각 학교의 영서 선생님들 도움받아 번역해서 떼고. 또 엄마 아빠는 한국 돈을 미국 달러로 환전할 때, 딱 우리가 환전하는 순간 달러값이 마구 싸졌다가 우리가 거래를 끝내자마자 다시 환율이 올랐다고 엄마가 말해줬던 게 기억 나.
5월 엄마 생일날. 드디어 출국을 하러 가족 한 사람당 아주 크고 무거운 검정 짐 가방 두 개씩 양손으로 하나씩 끌고 인천 국제공항에 갔을 때, 입던 옷들도 버리고 가기 아깝다고 최대한 많이 껴입고 피난민처럼 다섯 가족이 우르르 같이 이동했던 모습은 아마 누가 봐도 코미디였을 것 같아.
솔직히 말해서 난 미국에 오기만 하면 그 자체로 뭔가 괜히 삶의 질이 한 단계 나아지고, 그냥 아무것도 안 해도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그러는 줄 알았어. 그런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지. 이민을 와서 목돈이 있기는 했지만, 엄마랑 아빠 둘 다 일자리 없이 처음 한두 달 미국에서 지낼 때 아빠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잖아. 한국에서는 직장 다니느라 바빴던 아빠이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때 야자 끝날 시간쯤 되면 학교 방향으로 엄마랑 같이 걸어오면서 나 마중 나오기도 하고 그랬던 아빠였는데. 미국 와서는 가장으로서의 스트레스가 커서 괜히 우리에게 소리 지르고 또 엄마랑 우리를 자주 울리기도 했던 아빠였지.
미국에 온 이후로 돈에 대한 아빠의 스트레스는 엄마 아빠가 세탁소 사업을 시작하고 난 뒤에도, 또 어느 정도 사업이 나름 안정기에 들어선 지금에도 계속 아빠의 머릿속 한자리를 크게 잡고 앉아 어떻게 보면 아빠는 모든 것 앞에 돈을 가장 먼저 중요시하는 조금은 지나치게 현실적인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어.
어떻게 보면 이민 와서 우리 가족이 "망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없었던 건 아빠의 그런 현실적인 마음가짐의 덕 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엄마랑 아빠는 사업을 하며 하루에 14시간 이상씩 바쁘고 힘들게 일을 하시고 (그나마도 아빠의 말에 따르면 "적자 보지 않을 정도"일 뿐이지만).
엄마 아빠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미국에서 정착하려고 노력해온 지난 십 년간의 삶이 너무 각박했기 때문인지 이제 엄마도 아빠도 성인병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고, 특히 아빠의 건강은 남들이 딱 들으면 "아이구" 할 정도가 되었어.
나의 남편에게 언젠가 한국에서 그렇게 안정적으로 잘 살던 중산층 우리 가족이, 단지 애들 교육을 목적으로 여기까지 이민 왔다고 처음 말했을 때, 남편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그랬었어. 특히 엄마랑 아빠 입장에서 솔직히 희생하면서 애들만을 위해 온 거나 다름이 없으니까. 남편 말도 틀린 거 아니지? 사실이 그러하니까.
근데 이 당연한 사실을 난 남편이 그렇게 콕 찝어 말해주기 전까진 조금 간과하고 있었어. 한국에서 해외로 애들 유학 보내는 이야기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잖아.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닌데 말이지. 한국에서 40년 넘게 안정적으로 다져온 기반을 모두 뒤로 하고 아이들과 같이 이민을 결심한 엄마 아빠의 희생을 미처 몰랐던 것 같아.
생각을 깊게 해 볼수록, 계산기를 두드려 볼수록 온 가족의 이민은 엄마랑 아빠가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손해 보는 일이었던 것 같아.
지난 토요일에 막내가 학교로 돌아가고 토요일 밤에 엄마랑 나랑 아기랑 한 방에서 잘 때. 엄마는 엄마 대신 동생들 챙기며 큰언니 노릇 하는 내가 고맙고 대견하다며, 이렇게 착한 세 딸들이 있어서 엄마는 참 행복하다고 그랬어. 공항이 있는 엘에이까지 왕복 운전한 날이어서 몸은 피곤했는데, 엄마의 그 말을 들으니 톡 쏘는 사탕 한 봉지를 한입에 다 털어 넣은 것 마냥 정신이 말짱해지더라.
근데 엄마 그거 알아? 우리 셋이 착한 이유는 엄마랑 아빠가 본디 착한 사람들이고, 또 우리를 키울 때 엄마랑 아빠의 좋은 예시로 보여주며 그렇게 착하게 키우셨기 때문이란 걸.
엄마도 매일 내게 말하잖아? 나도 착하고 남편도 착해서 아기도 착하게 잘 클 거라고. 엄마 말처럼 엄마랑 아빠가 착해서 우리 세 자매가 (그렇게) 크게 속 썩이지 않고 착하게 잘 큰 것 같아.
어렸을 때 나랑 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피아노 연습해야지" "빨간펜 풀어야지" 그날 그 순간의 미션을 쉴틈도 없이 자꾸 준다고, 우리가 엄마를 "쉴틈이 엄마"라고 불렀었잖아. 근데 나도 똑같이 쉴틈이 엄마가 될 것 같아. ㅋㅋ 돌아보면 이만큼 아이들에게 꾸준히 관심 가지는 것도 참 대단한 일이야. 너무 극성인 엄마는 되지 않을래. 딱 엄마가 우리에게 한 만큼만, 그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
엄마랑 아빠가 이민이라는 큰 결심 하고, 또 희생을 각오하고 우리 세 자매를 미국에 데려와 열심히 일하고 키워주신 덕에 우리 셋 모두 여기 정착하는 데에 큰 어려움 없이 그렇게 십 년째 잘 살고 있음에 감사해요. 근데 엄마랑 아빠도 이제 슬슬 엄마랑 아빠 인생을 조금 더 즐기며 살면 더 좋을 것 같아. 아빠 말로는 아직 때가 아니라고 그러지.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다가 진짜로 때를 놓칠까 봐 난 그게 괜히 무서워.
아직도 내가 친정에 내려갈 때마다 "밥이랑 반찬이 마땅한 게 없지. 제대로 밥도 못해줘서 미안"이라 말하는 착한 엄마. 난 벌써 아기 엄마인데, 그래도 엄마 눈에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의 큰 아기이겠지?
이제 나도 엄마가 되었고,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래도 엄마 대 엄마로 얘기하는 건데 엄마는 이 세상 누구보다 내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롤 모델이야. 내가 엄마처럼만 우리 아기 키울 수 있어도 난 참 행복할 것 같아.
다가오는 5월, 우리 가족에겐 의미 있는 큰 달인데 이것저것 크고 작은 행사들 다 합쳐서 우리 축하 한번 제대로 해보자.
(동생 학교 졸업, 아기 돌, 둘째 생일, 엄마 생일, 어버이 날/어머니의 날, 미국 온 지 딱 10주년 되는 달)
엄마, 사랑해요.
아빠한테도 사랑한다고 전해 주세요. (아빠는 내 브런치 글 안읽으니까 ㅋㅋ)
울지 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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