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맘이 되려 하지 마

굳이 "되려고" 안 해도 모든 엄마들이 이미 슈퍼맘 아닐랑가?

by 장군

10개월이 조금 지나니 아기가 정말 하루하루 크는 게 눈에 보인다.


요즘은 엄마에게 안겨서 계단 오르락내리락할 때 엄마의 목 주변을 자기 손으로 토닥토닥하기도 하고, 힘껏 되 안아주는 것 마냥 엄마 목 주변에 팔을 감아서 꽉 힘을 주기도 한다.

또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엄마랑 한입씩 나눠 먹겠다고 손을 뻗어 엄마 입 쪽으로 과자를 가져다주면서 엄마에게 감동의 쓰나미를 준 게 불과 3일 전인데,

오늘 아침에는 거버 한통 비우고 후식으로 준 과자를 엄마랑 또 나눠먹다가, 지나가던 큰아빠가 "어? 나도 주라" 하고서 아기한테 얼굴 들이대니 고개를 확 돌리며 손에 있던 과자를 입속으로 쏙 넣어서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또 한 가지 요 며칠 사이에 새로 배운 건 붕어입을 만들면서 볼을 쏙 빨아들여 뽀뽀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엄마가 "뽀뽀~" 하고 말 걸 때마다 스패니쉬 사용하시는 시부모님이 의아해하시는 건 덤이다. 왜냐하면 스페인어로 "popo [뽀뽀]"는 "응가"이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그렇게 가르쳐주려고 해도 안 하더니 요즘 들어 왜 이렇게 귀여운 애교가 많이 늘었는고 하니, 사실 양 볼을 쪽 빨아들이고 쪽쪽 소리를 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요즘 다섯, 여섯 번째 이가 새로 나느라 잇몸이 근질근질해서 그랬던 것이다.


지난 주말, 토요일과 일요일 모두 평소보다 조금 오버해서 힘차게 보내고 (계획해놓았던 일정이 많았다 -- 걷기 대회 참가, 약사님들과의 저녁식사, 또 결혼기념일 맞이 데이트) 뭔가 쉰 것 같지도 않은 주말이 그렇게 훅 지나가 조금 아쉬웠었다. 그래도 일요일 밤 잠을 푹 자고 나면 다시 한주를 가뿐하게 시작할 수 있겠거니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평소에 저녁 8-9시면 착하게 곯아떨어져 자던 아기가 일요일 밤엔 10시 30분이 다 되어가도록 잠을 못 자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9시 50분쯤 잠이 들긴 했었다. 그런데 20분도 채 되지 않아 빼액 울면서 잠에서 깼다.

아기가 계속 울고 잠을 제대로 못 자자 당신 방에 주무시러 들어가셨던 시어머니가 다시 나오셔서 아기를 안고 거실을 몇 바퀴 돌기 시작하셨다. 원래 남편이나 나나 아기를 안고 재우는 것에 조금 거부감이 있는데 (습관 든다는 얘기를 여기저기에서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아기가 졸려할 때까지 우리 침대에서 같이 놀아준 다음, 아기가 잠에 깊게 들면 아기 침대로 옮기곤 한다.) 이 날 만큼은 우리 방식대로 아기를 재우는 데에 실패했던 것이다.

평소라면 5분 만에 잠들어버릴 시어머니의 "안고 돌기" 스킬 시전에도 아기는 눈을 말똥말똥 깜빡 깜빡이며 마치 일부러 안 자는 것 마냥 그렇게 시어머니 품에 안겨 돌고, 돌고, 또 돌고 있었다. 10시 30분이 조금 넘은 그때, 드디어 아기가 잠에 들었고, 난 "아기가 잠에 늦게 들었으니 내일 아침까지 푹 자고 늦게 일어나겠군!" 이라는 깜찍한 생각을 했다.


아기도 어차피 아침 늦게에나 일어날 것 같고, 바쁜 주말 일정으로 밀린 빨래나 하자하고서 10시 50분쯤 빨래를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 건조기가 고장 나서 빨래 한번 말리려면 두 시간이 걸린다.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 돌리고, 마른빨래들 걸고 개고 정리 다 하고 나니 딱 새벽 3시였다. 괜찮아, 한 8시까지 자면 될 거 같아.


새벽 5시 반. 아기가 울면서 일어났다. 보통 이 시간에 일어나서 울면 갓 타 온 분유 한 병이 해결사일진대. 이른 월요일 아침 아기는 분유 먹기도 거부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울어서 그런지, 따뜻한 이불에서 막 나와서 그런지 아기의 목 주변이 따뜻했다. 미열. 헉. 애기 이가 또 나고 있구나.

며칠 전부터 왠지 곧 아기 이가 새로 나올 것 같아서 얼려먹는 Pedialyte을 사다가 좀 얼려 놓았는데, 부랴부랴 얼어있는 Pedialyte 하나를 가져와 우는 아기에게 만지게 하고 맛보게 하니 울음을 그치고 곧잘 받아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얼린 Pedialyte 반의 반도 채 먹지 않고서 아기는 다시 울기 시작한다.

b8cf8482-82fb-41a1-87dd-26768299a0be_1.d6f795d82c35f695bcadc331d848402d.jpeg 이런식으로 생긴 제품이다. 어릴때 한국에서 먹던 짜먹는 요구르트 정도의 크기.

자고 있는 남편은 일어나질 않지 (월요일에 일도 없다고 했으면서 ㅠㅠ), 난 세 시간도 채 못 잔 터라 졸린데 아기는 큰 소리로 울고 있지, 정말 내가 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장소라도 좀 바꿔보자 생각하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방에서 나오니, 아기가 울음을 그쳤다. 그 전날 밤 시어머니 품에 안겨서 말똥말똥했던 그 눈빛 그대로, 아기의 긴 속눈썹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 아기는 더 이상 울진 않았다.

일찌감치 일어나 하루를 일찍 시작하신 시부모님께서 상황 파악을 하시고 아기를 데려가 안고 집안을 돌아다니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거실 소파에 걸터앉은 내 눈에서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나 졸려 ... 졸리단말야 ㅠㅠ)

(근데 이 모습을 아무도 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날 나중에 시어머니가 언급하시며 나를 놀리셨다. ㅋㅋ)

어쨌든 내가 로테이션 출근할 때까지 나도, 아기도 다시 잠들지 못하고 그렇게 세 시간도 못 잔 채로 나의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평소 안 해도 되는 일까지 알아서 척척 해버리려는 성격의 나인데,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맞은 월요일에 가차 없이 무너졌다. 꼭 해야 되는 일 조차도 제대로 못하고, 결국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집에 간다고 말문을 턴 나는 약사 프리셉터께 지난밤의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약사님은 아기들 이 날 때의 기억이 없다고 하셨다. 그냥 뭔가 엄청 힘들었던 것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정도라고. 두 아이를 키운 경험이 있는 약사님도 엄마로서의 고충을 다 이해해주셨다. 또 일 년 후 졸업하고 나서 약사로서 일을 하게 될 내게 조언도 해 주셨다.


"다음에 또 이런 일 있으면 그래도 옆에 있는 남편도 깨워서 아기 보라고 해."

"하지만 남편도 새벽에 일이 있는 경우가 많은걸요"라며 나는 남편 쉴드를 쳐보려 했으나 ... 약사님의 말이 가차없이 이어졌다.

"그래도 넌 이제 약사가 될 거잖아. 졸리고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약사가 일을 하면 결국 다치는 건 누구야? 환자들이지. (사실 "죽는 건 누구야?" 라고 하셨으나 ... 어감을 조금 순화시켜 봤다.) 나도 예전에 내 애들이 애기일 때, 내 남편은 암 병동 약사로 일을 했고 나는 당뇨 환자 상담해주는 일을 했었거든. 그래서 밤에 애기들이 울고 잠 못 자고 그러면 남편은 일부러 계속 자라고 하고선 내가 애들 다 돌보고 그랬어. 암 환자들 상대하는 약사가 실수하면, 그거 진짜 큰 일 이잖아?"

고개를 끄덕끄덕 이고 있는 나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시며 약사님이 말을 계속하셨다.

"슈퍼맘이 되려고 하지 마. 될 필요도 없고. 일, 육아, 가족 그거 제대로 다 챙기기 어려워. 모든 일에 다 잘 하려고 할 필요는 없어.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고, 또 가족들 도움도 적당히 받아가면서 하면 돼. 집에 갈 때 운전 조심히 하고."

내게 감동을 주시려고 하신 말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약사님 의도가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마지막 말은 내게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앞으로 로테이션하면서, 또 졸업 후 약사로 일하면서 계속 이 말이 생각 날 것 같다.


슈퍼맘이 되려고 하지 말라는 말. 집에 와서 몇 번을 다시 생각해 봤다.

어쩌면 육아의 과정을 하나하나 겪고 있는 모든 엄마들이 이미 슈퍼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이 "되려고" 할 필요 없이 어차피 우리는 모두 이미 슈퍼맘이 아닐는지?



+ 제목 부분 배경 사진은 구글 검색에서 나온 여기 ("슈퍼맘 관련 일러스트" by ieung)

+ Pedialyte 사진의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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