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군 Apr 12. 2018

5분도 안 되어 끝난 인터뷰

로테이션 2, 여덟 번째 날

이번 로테이션은 격일로 학교에 가서 교수님과 1:1 면담을 한다. 그 외의 시간에는 교수님이 주신 과제를 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 주제를 찾는 리서치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제(화요일)도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날이었다. 다른 도시에 사는 동생이 요즘 수학 공부를 하는데 나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우리 집으로 온다고 했다.

아기도 볼 겸 어디 밖에 안 나가고 집에서 공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이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어쩜 우리 둘 다 진작 알고 있었던 것 일지도 ... 어쩌면 공부보다도 그냥 둘이 붙어 앉아서 아기 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자기도 종이랑 펜 잡고 싶어서 팔을 휘젓는 아기 때문에 도통 진도를 나갈 수 없었던 것. ㅋㅋㅋ

그 와중에 그래도 꾸역꾸역 문제를 풀어나가는 동생이 기특하고 대견했다.


아기 보랴, 동생 문제 푸는 거 봐주랴, 모르는 거 있으면 설명해주랴, 정신이 없던 와중에 내 폰에 부재중 전화가 한통 찍혔다. 그러고서 음성 메시지도 곧바로 들어왔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걸려온 전화, 대담하게 남겨진 음성 메시지? 전형적인 광고 전화의 패턴이라고 생각하고선 음성 메시지를 지워버릴까 하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보았다. 재생시키면서 동생한테 "아이고 이거 또 광고일 텐데. 어디 뭐라고 하나 한번 들어나보자" 했었는데.

재생시켜놓고 보니 메시지를 안지운 건 신의 한 수였다!


첫 번째 로테이션에서 프리셉터가 날 참 좋게 봐주셨었고, 로테이션이 끝나자마자 그다음 날 (토요일이었는데) 나에게 메일을 보내오셨었다. 나를 고용하실 의향이 있으시다고, 그래서 프리셉터의 보스와 이야기해보시겠다고.

완전 들떠서 딱 보기에도 "시끄러웠을" 답장을 보낸 나에게 (정말요!!! 감사합니다!!!), 프리셉터는 너무 일찍부터 좋아하지는 말라하시며 얘기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고용을 못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비치셨었다.

그러고서 나는 첫 번째 로테이션의 프리셉터 말대로 너무 일찍부터는 좋아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 두 번째 로테이션의 과제를 매일매일 열심히 하며 지냈다.

(두 번째 로테이션의 프리셉터인 학교 교수님께서도, 내가 로테이션하는 학생의 기준을 높이고 있다며 매일매일 칭찬해주시고 계신다. 내 자랑을 내 입으로 계속하면 입 아픈가? ㅋㅋ)


그러고서 어제(화요일)의 전화와 음성메시지는, 바로 이 고용 건에 관한 것이었던 것이다!

음성 메시지를 듣고 "데이지"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니, 고용 절차가 활발히 진행 중이라며, 내 이메일로 고용 패킷을 보낼 테니 다 작성해서 오늘 밤 안으로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그랬다. 저녁에 아기 재우고 작성하면 되겠구나 생각하고서, 그러겠노라고 흔쾌히 대답하고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낮동안에는 동생 수학 문제를 계속 봐줬고 동생이 집에 가고 난 뒤에는 못다 한 내 로테이션 과제를 조금 했다 (가족들이 아기를 봐주시고).


어느덧 밤이 되어 아기가 잠들고, 로테이션 과제를 조금 더 하고서 고용 패킷을 딱 열었는데, 나에 대해 잘 말해줄 수 있는 참고인reference 세명(세! 명!)을 적어 내라고 하는 것이었다.

으아니, 여기에 누구 이름 쓰기 전에 보통 미리 물어보고, 승낙을 받은 후에 써야 하는 것인데 ... 

1학년 때부터 꾸준히 나의 멘토로 계시며 언제든지 참고인으로 당신의 이름을 써도 좋다고 말씀하신 교수님 한 분의 성함과 전화번호를 먼저 적었다. 두 자리가 비어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2시였고, 오늘 밤 안으로 보내 달라고 했으니 일단 이 패킷을 다 작성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학교 교수님 두 분의 성함과 전화번호를 마저 적었다.


오늘 (수요일) 어차피 로테이션 프리셉터 교수님을 만나러 학교를 가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서 교수님들께 직접 말씀 드릴 생각이었다. 교수님과의 미팅은 오전 12시였고, 아침 9-10시쯤부터 학교에 가있으면 시간상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9시 30분쯤 학교 근처 빵집에 들러서 빵이랑 커피를 좀 사려하는데 (교수님들께 참고인 부탁하러 가는 길에 빈손으로 가기가 왠지 양심에 찔려서 ...), 어젯밤 보낸 고용 패킷에 대한 답변 이메일이 벌써 와있는 것이었다!

뭐야 이 사람들 무슨 일처리가 이렇게 빨라!


눈이 휘둥그레 해져서 이메일을 읽어보니, 인터뷰를 오늘 오전 중에, 페이스타임(화상통화)으로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5분도 안 걸릴 것이라면서. 속으로 나 혼자 덜덜 떨면서 인터뷰는 11시 30분에 하자고 답장을 보냈고, 빵을 사들고 빵집에서 나왔다.

차에 시동 걸기 직전에 전날 밤 참고인 칸에 쓴 세 교수님께 문자를 드리고 (직접 얼굴 뵙고 말씀드려야 하는 것인 줄 아는데, 워낙 급하게 고용 서류를 작성하느라 교수님 성함을 먼저 써서 보내고 난 뒤에야 이렇게 문자 드립니다. 인터뷰도 오늘 오전으로 막 잡혀서, 혹시 제가 교수님 만나기 전에 이 사람들이 먼저 전화하면 당황하실까 봐 이렇게 문자로 알려드리는 거 정말 죄송해요! 곧 학교 가서 직접 설명해드릴게요!) 학교로 향했다.

(그런데 교수님들이 곧바로 "Sure thing! Good luck!," "Happy to be a reference!," "No worries! Great!"이라고 답장해주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혼자 감동해서 감정이 살짝 북받쳤던 건 안비밀.)


닥터 H의 오피스로 먼저 갔다.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서로의 안부 인사를 묻고, 곧장 나오려 했으나! 내일 있을 수업 준비를 하시는 데, 내가 혹시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이 내용은 아마 내일쯤 블로그에 올리게 될 것 같으니, 지금은 자세히 쓰지 않을 생각이다.)

여차 저차 도와드리며 닥터 H의 오피스에서 생각보다 오래 있다가 나왔다.


그다음에 닥터 S의 오피스로 갔다. 이 분이 바로 1학년 때부터 멘토 해 주시던 교수님이신데, 30분 안에 인터뷰가 있다는 말에 이것저것 막판 팁을 막 주시기 시작했다.


닥터 S: 인터뷰는 보통 1. 회사의 인적자원 부서에서 하는 첫 번째 인터뷰와 2. 너랑 일하게 될 보스랑 직접 만나서 하는 인터뷰, 이렇게 두 단계에 걸쳐서 하게 되는데, 이번 인터뷰는 어떤 단계야?

: 인적자원 부서에서 하는 인터뷰예요!

닥터 S: 그 두 인터뷰 단계의 차이점이 뭔지 알아?

: 아무래도 보스랑 하는 인터뷰에서 더 친근함/호의감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닥터 S: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일단 각 인터뷰에서 무엇을 보는지 정확히 이해를 하는 게 중요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거였어. 인적 자원 부서에서는 이 사람이 회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요구사항에 준수하는지를 보고, 예를 들어 20명이 한 자리에 지원했다 그러면 3명 정도로 추리는 역할을 하지. 그런데 그 3명 중에 누가 고용이 되느냐? 그건 보스랑 하는 인터뷰에 달린 거야.

(... 이하 생략)


나는 시계를 흘끔흘끔 보기 시작했다. 11시 16분이었다.


닥터 S: 그래서 페이는 얼마나 될지 알아?

: 어제 전화로 잠깐 얘기해줬는데 아마 한 시간에 $25불일 거 같아요.

닥터 S: 그 돈 얘기가 다시 나오면 한 번에 오케이 하지 말고 한번 높게 불러봐! 조정이 가능 한지. 남자와 여자가 같은 일 하면서도 다른 페이를 받는다고들 하잖아. 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남자들은 페이를 처음부터 높게 부르고 또 자주 올려달라고 요청하는데에 비해 여자들은 자기 페이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하지. 그러니까 페이를 한 번에 오케이 하지 말고, 한번 올려 볼 수 있는지 시도해봐!

: 제가 그렇게 할 위치가 벌써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닥터 S: 인터뷰에서 하라는 게 아니고, 나중에 고용 오퍼 정식으로 들어오면 거기서 얘기해보라는 거야. 길게 생각하면 또 임금을 올려줄 때마다, 처음 시작한 페이의 3%, 5% 이런 식으로 올려 주는 건데, 처음 시작이 낮으면 임금도 그만큼 더디게 올라가는 것이지.

(... 이하 생략)


일찍이 11시 30분에 인터뷰하자고 이메일 보내 놓고서 맞춰놓은, 11시 20분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 닥터 S, 조언들 정말 감사해요! 그런데 저 지금 슬슬 나가서 빈 자습 방이라도 찾고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때, 닥터 S의 도우미 스태프가 들어와 닥터 S의 손님이 오셨다고 알려주었다.

닥터 S: 나도 저 손님 맞으러 나가봐야겠네. 인터뷰 어떻게 되었는지 결과 알려줘! 잘 하고!


닥터 S의 오피스를 나와 학교 건물을 돌아다니며 빈 자습 방을 찾으려는데,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라 하는 언니가 혼자 있는 방을 발견했다. 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히 사정을 설명한 뒤 언니가 앉아있는 옆 의자에 앉아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11시 34분, 11시 37분, ...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이었다!


메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11시 50분까지 시간이 있으며 (로테이션 프리셉터 교수님과 12시에 미팅이 있으므로), 만약 그전에 인터뷰를 하지 못한다면 1시 30분 이후에 다시 시간이 괜찮다고.


11시 43분, 어제 메일을 보내준 데이지와 같이 일하는, 재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키: 어젯밤 그렇게 빨리 서류를 보내줘서 고마워요. 보낸 서류 중에 배경 조사 background check 동의한다고 했었죠? 이 배경 조사만 끝나고 나면 다시 정식적으로 일 시작하는 날이 언제가 될지 연락 해 줄게요. 질문 있나요? (background check는 범죄 경력, 범법 행위 이력 등을 조사하는 것. 취직할 때나 학교에서 로테이션을 할 때에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 네??? 이게 다예요?

재키: 네, 이게 다예요. 만나서 반가웠어요, 그럼 이만! 좋은 날 보내요!

: 좋은 날 되세요.


후다닥 끝나버린 "인터뷰"에 차마 당황감을 감출 수 없었다. ㅋㅋㅋ

인터뷰이긴 인터뷰인데 나한테 질문은 하나도 안 하고 "고용될 터이니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라고 친절히 알려준 재키.

인터뷰(?) 할 수 있게 공간을 빌려준 언니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로테이션 프리셉터 교수님을 만나러 갔다.


로테이션 프리셉터 교수님인 닥터 A께서는 나의 세 번째 참고인 이셨다.

교수님 성함을 급하게 참고인 칸에 써야 했던 이유와 방금 있었던 인터뷰 이야기 등을 모두 해드리고, 열심히 준비해간 과제들도 보여드리며 여느 날처럼 로테이션 프로젝트에 관한 미팅을 이어갔다.


이번 로테이션이 끝나기 전, 닥터 A를 주제로 한 포스트를 하나 써 보고 싶다. 교수님은 한국분이신데, 그래서 약대 첫 주에 처음 뵈었을 때부터 다른 교수님들보다 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또 나에게도 잘 해주신 교수님 이시다. (모든 학생들에게 다 착하고 잘 해주시기로 소문난, 사람 좋으신 교수님이시다.)


+ 제목 부분 배경 이미지의 출처는 여기

매거진의 이전글 성과 연구 (Outcomes Research) 로테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