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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Apr 18. 2018

미션: 친할머니 & 친할아버지를 학교로 모셔라

로테이션 2, 아홉 번째 날

(일어난 지 일주일이 거의 다 되어가는 "로테이션 2 아홉 번째 날"의 이야기를 오늘에서야 쓰고 있다.)


닥터 H 교수님과 나는 어찌 보면 조금은 특별한 관계이다. 다른 학생들처럼 교수님 사무실에도 좀 더 자주 드나들고 그랬다면 아마 대놓고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왠지 내 성격상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다른 연결고리가 꽤 있었다.


2014년 11월, 내 생일날 본 약대 인터뷰에서 닥터 H를 처음 만났다. 며칠 뒤 닥터 H는 친히 내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해 합격을 축하한다고 직접 알려주셨었다. 아침에 잠결에 전화받았던 터라 내가 인터뷰 본 교수님께서 직접 전화한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었다. 일단 대충 번호를 저장해 두고, 나중에 (정확히는 2년 뒤) 가서야 그때 전화했던 사람이 닥터 H였단 걸 깨달았었다.

미국 와서 고등학교 때, 또 학부 때 공부만 한답시고 아무 대외 활동 안 한 게 아쉬워서, 어찌 보면 마지막 학교생활인 약대 다니는 동안 리더십 활동 / 동아리 활동의 뽕을 뽑아보자(?)고 하고서 이것저것 꽤나 열심히 했었는데 그중 두 동아리의 어드바이저(지도 교수)가 닥터 H였었다. 이를 계기로 교수님의 핸드폰 번호도 알게 되고, 그제야 2년 전 나에게 합격 축하 전화를 했던 게 닥터 H였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내가 P2(약대 2학년)이었던 작년 이맘때쯤, 우리는 닥터 H께서 가르치시는 신경질환 수업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임신 8개월 차--출산 예정일을 1달 정도 앞둔 상태였다. 좌골 신경통sciatic pain으로 책가방은 못 메고 다닌 지 오래였으며, 매일매일 오후가 채 되기도 전에 내 발목은 부종으로 부풀어 오르곤 했던 시기였다. 수업 시간마다 닥터 H는 항상 내게 먼저 안부를 물어주시곤 했고, 퀴즈나 시험이 있는 날에는 내 앞에 의자를 하나 더 갖다 놓아주시며 다리를 올려놓고 편하게 앉을 수 있게 배려해주셨었다.

닥터 H의 수업시간에는 간질epilepsy, 치매dementia,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등 뇌와 신경의 비정상적인 작용으로 생기는 병들과 그에 대한 약들을 배우는데, 단연 단골 소재는 할머니 할아버지 등 나이 많은 환자들이었다.

이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들 중 가장 인상적인 날은 노인 환자분들께서 학교를 방문하시는 날이었다. 각 학년에는 7-8명씩 18개의 팀이 있는데, 18분의 노인 분들께서 학교에 오셔서 한 팀과 3-4시간씩 시간을 보내시는 날이었다.


이제 나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은 모두 끝 낸, P3이다. 졸업할 때까지 이 약국 저 약국 돌면서 로테이션을 하면 되지만, 이번 로테이션은 학교에서 하는 거라 이틀에 한번 꼴로 학교에 가서 지금 프리셉터를 만나곤 한다.

지난 화요일, 갑자기 찾아온 일자리 기회에, 내 이력서에 참고인으로 닥터 H의 이름을 급하게 써서 그날 바로 내고, 수요일에 교수님의 오피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이 나에게 SOS를 요청하셨다.

"혹시 할머니나 할아버지 근처에 사시니?"

매 년마다 오시는 18분의 노인분들 중 세 분이 지난해 동안 돌아가셨다고 그러셨다. 이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되셨으며, 중요한 건 바로 다음날(목요일)이 노인분들이 오시는 날이라는 것(!).

한번 할아버지께 전화해보겠다고 하고서 오피스 밖으로 나와 할아버지께 전화를 걸어봤다.


정말 오래간만에 드리는 전화였다.

할아버지도 그걸 아시고선 반가운 마음 반, 서운하신 마음 반에 내가 학교 얘기를 채 하기도 전 그동안 속으로 혼자 묵혀둔 이야기를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할아버지가 집 앞 공원에서 매일 산책하신다는 이야기부터, 할아버지가 한 달 전 아빠 차 고치는 데에 어떻게 도움이 되셨는지, 또 손녀들이 전화를 안 해서 섭섭하시다는 얘기 등을 거쳐 한 시간여 만에 나의 이야기를 할 차례를 주셨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랑 할머니께서 학교로 초대받으셨어요. 저희 약대 수업과정 중에 노인 분들 모시고 드시는 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학생들이 할머니 할아버지 인터뷰하는 날이 있거든요! 그게 내일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시면 학생 대여섯 명 정도가 할아버지께 붙어서 세 시간 정도 질문을 할 거예요!"

"내가 나이가 많아서 운전을 못 하는데 ... 일단 지금 집 앞 공원인데, 이따가 집에 가서 다시 전화 하마."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음, 이거 성공인가 실패인가?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고 나서도 교수님께 확답을 드리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교수님 오피스 문 앞에 서있었다.

그래도 교수님께서는 다 이해해주시는 눈치였다. 닥터 H 교수님께서는 "노인 환자 전문 약사" 자격증이 있으실 만큼 노인 분들에 대한 경험도 많으시고 이해도 많으시다.


할아버지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할아버지 댁에서 학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구글 맵으로 찾아봤다. 대략 45분쯤 걸리고, 고속도로도 세 번 갈아타야 하는 길이었다. 여든 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 새로 운전하시기엔 조금 멀고 어려운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십분 있다가 전화하신다고 했지만, 전화하시기 전에 내가 못 기다리고 먼저 다시 전화를 드렸다.

길 찾은 결과를 말씀드리니, 못내 아쉬워하시면서 운전 때문에 못 갈 것 같다고 얘기하셨다.

내가 직접 모시러 가자니 우리 집과 학교, 할아버지 댁 사이가 너무 멀고, 또 아침 시간에 우리 집에서 할아버지 댁으로 가는 길은 백 퍼센트 막히는 길목이었다.


아 이렇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못 오시나 ... 생각이 들다가!

대뜸 동생에게 전화해보기로 했다.


동생은 자다가 일어나서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여기에 내가 "얘, 너 내일 할아버지랑 할머니 모시고 나 다니는 학교 안 올래?"라고 부채질을 하니 전화기 너머로 동생 입이 툭 튀어나온 게 보이는 듯했다.

그래도 착한 동생은 안 한다고는 안 하고, 모시고 오겠다고 그랬다.

동생도 할아버지/할머니가 사시는 도시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살긴 하지만, 최소한 학교로 오는 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도시를 살짝 거치는 정도는 되는지라 미안함을 무릅쓰고 한번 부탁해 본 것이다. (또 동생이 약대 학생들의 수업 과정 일부를 보며 약대 올 생각 조금 하기를 바라는 나의 "빅 픽쳐"도 있었고 ... 움하하!)

그렇게 미션이 쉽게 해결 되는 것 같았다. (두둥)


기쁜 마음에 할아버지께 다시 전화를 드렸다.

"할아버지! 동생이 할아버지랑 할머니 모시고 오겠데요 내일 아침에!"

그런데 할아버지 반응이 심상치 않다.

"나 내일 안 가기로 했어. 내가 가서 왜 내 약에 대해 학생들하고 얘기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건 내 개인 정보이고 가장 중요한 일급비밀인데."

옆에서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 이거 혹시 할머니가 할아버지께 가지 말라고 (가지 말자고) 그러시는 건가?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오고 싶어 하셨고, 또 운전 때문에 못 오시는 것에 아쉬워 하셨는데 ...

할아버지를 말로 설득하는 건 또 내가 잘 할 자신이 있지. 다시 전화를 붙잡고 대화를 (설득을) 시도했다.

할아버지는 분명 오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오시는 걸로 기정 사실화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냉큼 전화를 넘겨받으셨다.

"내일 할아버지 가셔도 난 안가. 난 내일 성경책도 읽어야 하고, 다른 할 일이 많아. 할아버지 안 계실 때 집안 청소도 좀 하고 그래야겠다."

아 왜요 할머니 ㅠㅠㅠ


오전 일찍부터 닥터 H에 오피스에 왔었건만 벌써 한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아직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확답을 주지 않고 있으셨다.

일단 동생 덕에 교통 문제는 해결. 할아버지는 오고 싶어 하시는 게 확실. 그래서 교수님께 할아버지 성함은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노인 환자분 한 사람이 아쉬우신 교수님께선 할머니 성함도 일단 넣어보자고 하셨다. 안 오실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그래도 오시면 좋지 않겠는가 하고선 어떤 팀에 할머니 / 할아버지가 가셔야 가장 편히 계실 수 있을지 같이 고민하며 교수님과 함께 팀을 골랐다.

할아버지께서는 영어를 매우 잘 하시지만 할머니께서는 한국말을 편해하실 게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국인 언니가 한 명 있는 팀으로 배정해드렸고, 할머니는 한국 학생들 네 명이 있는 팀으로 배정해 드렸다.

두 팀에 각각에 있는 한국인 언니/친구들 중 작년에 나와 한국 학생회 임원으로 같이 섬겼던 사람들이 있던지라 마음이 편했다. (다른 팀에도 내가 좋아라 하는 작년 임원들이 있었지만, 이 팀에는 다른 언어(아랍어)를 편해하시는 다른 노인 환자분들이 벌써 배정되어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끼리 배정을 이렇게 하면 뭐 하나.

그날 오후 할아버지랑 할머니께 확인차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 할아버지는 분명 오신다고 말씀하셨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돌리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닌 것 같았다.

할머니는 신앙심이 깊으시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싫어 교회에 안 나가실 정도로, 여러 사람 앞에 서는 걸 정말 싫어하시는 분이시다.

아마 인터뷰 당일 할아버지만 오시고, 두 팀이 할아버지께 질문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2학년 학생들 수업은 8시부터 시작이지만, 노인분들 인터뷰 시간은 9시에 시작이었다.

나는 일찌감치 학교에 가 있었다.

동생이랑 할아버지랑 조금 헤매다가 8시 30분쯤 만났다고 연락이 왔다.

조금 늦겠구나 생각하고 기다리는데, 조금 많이 늦었다!

9시 30분쯤 부랴부랴 동생이 학교로 왔고, 주차 안내를 도와주러 동생을 만나러 갔는데.

조수석에 할아버지가, 또 뒷좌석엔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할아버지는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고 오셨고, 할머니는 예쁘게 귀걸이까지 하고 오셨다.


다른 팀들은 배정되신 환자분들 모시고 각자 자기들만의 방으로 가서 인터뷰를 했지만, 교수님께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특별히 배려하여 같은 교실에 함께 남아있게 해 주셨다.

덕분에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 동안 다들 지루해하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 또 두 팀의 학생들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실 할머니께서 한국말로 말을 하셔서, 할머니가 계신 팀에서 한국인이 아닌 친구들은 한국인인 팀원들에게 번역을 따로 들어야 했었다. 그래서 조금 집중도가 떨어질 법도 했으나 ... 대부분 그래도 약대 2학년생들 답게 프로페셔널한 모습 유지하면서도 할머니께 친근히 대해주고, 잘 했다.)


나는 3학년 학생이지만 또 동시에 두 환자분을 모시고 온 보호자로서, 이도 저도 아닌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 한 것 같다. ㅋㅋ


할! 머! 니! 도 학교에 오셨다.


제일 놀라웠던 건, 사람들 앞에 서기 싫어하시는 줄로만 알았던 할머니가 2학년 친구들 앞에서 말을 참 잘 하셨단 것이다.

할아버지야 원래 말하시는 거 좋아하시고 사람들 만나는 거 즐기시는지라 처음부터 걱정할 것도 없었고.

나중에 동생도 후기를 얘기해 줬는데, "약대 학생들 성격이 다 언니랑 너무 비슷해서 신기했어"라고 했다. 이거 좋은 건가 나쁜 건가? ㅋㅋ


조금 갑작스럽게 할머니 할아버지를 학교로 모시게 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너무 즐거워하시며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그러셨다.

이 날 집에 모셔다 드린 후에도 나에게 전화를 두세 번은 더 하시며 "근데 친구들이 이렇게 물어본 거에 내가 저렇게 답을 했는데, 그게 너한테 마이너스되는 건 아니냐? 지금 생각해보니 쉬운 문제인데, 내가 너무 경솔했어!" 혼자서 이불 킥 하시는 후기도 마구마구 들려주셨다.

내년에도 또 오고 싶으신데 그땐 교통 문제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시며 ...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학교 다녀온 이후,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삼일에 한번 꼴로는 전화를 드리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봤다.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동안 우리 전화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이번 인터뷰 날을 계기로 두 분의 존재감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 난 정말 감사하다.

증손주도 막 태어났을 때 즈음 한번 보신 이후로 한참 못 보셨는데. 5월에 있는 다가올 아기 생일에 할머니 할아버지랑 아기랑 꼭 사진 한 장이라도 다 같이 찍어보도록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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