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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Apr 24. 2018

리더들끼리 모여도 블랙홀 멤버는 존재한다

리더쉽 무엇? 팀워크 무엇?

캘리포니아에 약대가 참 많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네다섯 군데 약대가 문을 열어 지금 현재 13개의 약대 프로그램들이 있다. (올해 안으로 약대 한 개가 더 열린다는 소문이...?!)

약대 학생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클럽들도 참 많고, 교내 안팎으로 여러 대외 활동의 기회가 있지만 모든 약대가 다 같은 클럽들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A 학교에 있는 클럽 x, y, z가 B 학교엔 없을 수도 있고, C 학교에서 별로 취급도 못 받는 클럽 j, k 가 D 학교에선 꽤 큰 규모로 유지가 되고 있기도 한다.

이 와중에 캘리포니아 안에 있는 모든 약대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대외 활동 기회가 하나 있으니, 그 이름도 찬란한 CAPSLEAD이다.


CAPSLEAD는 California Pharmacy Student Leadership 의 약자로, 각 학교에서 8명이 뽑혀 1년 동안 한 가지 리서치 주제로 같이 연구하고 포스터를 만들어 발표하는 활동이다.

내가 다니는 학교의 경우 1학년에서 4명, 2학년에서 4명이 뽑힌다.

해마다 경쟁률은 낮을 때도, 높을 때도 있지만 내가 뽑힌 CAPSLEAD 2017 팀의 경쟁률은 다른 해보다 센 편이었다고 한다.

(2016년 팀에는 10명 정도가 지원했던 반면, 2017 팀에는 30명 가까이 지원했다고 한다.)


그렇게 조금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뽑힌 사람들이니 만큼 여덟 명 중 그래도 여섯일곱 명은 진짜 열심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구나 기대가 컸었는데, 막상 뚜껑 열고 시작해보니 프로젝트 내내 기대했던 만큼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1. 1학년 네 명 중 두 명은 굉장히 소극적인 멤버였다. 한 명은 대놓고 소극적이었고, 다른 한 명은 말은 (혹은 말만?) 열심히 하지만 막상 일을 분배하는 시점이 되면 소극적으로 변하는 선택적 내향성 멤버 ...

2. 남은 1학년 멤버 두 명 중 한 명은 블랙홀이었다. 일을 진짜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데, 이 멤버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모두의 기가 빠지고 프로젝트는 점점 산으로 가는 ... (이 멤버가 사실 내가 이 포스트를 쓰는 가장 큰 이유이다... 너 나뻐)

3. 남은 1학년 멤버 한 명은 진짜 최고의 멤버였다. 팀 이름대로 모두가 리더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팀의 실질적인 리더는 가히 이 친구가 아니었을까 싶다.

4. 2학년 네 명 중 한 명은 프로 불 참러. 근데 지도 교수님과의 미팅에는 제일 먼저 나오고, 나머지 (일 하는) 멤버들 쓴 발표문 초안을 달달 외워와서 칭찬을 받기도 한...!

5. 다른 2학년 멤버들은 열심히 했다. 내 친구 1, 내 친구 2, 그리고 나. 칭찬해!


이렇게 3번, 5번에서 언급된 "일 하는" 네 명과, 1번, 4번에서 언급된 "일 안 하는" 세 명, 그리고 2번에서 언급된 "블랙홀" 멤버 하나까지 여덟 명이서 어찌저찌 나름대로 그럴싸한 포스터 하나를 만들긴 했다.


짠!


이 포스터를 이용해 2개의 학회에서 발표를 해야 하는데, 작년에 있던 1개 학회에 두 명이 참가해서 발표했었고, 지난주에 있던 다른 1개 학회에서는 저번 학회에 안 갔던 여섯 명 중 네 명이 참가해 발표를 했었다. (아무 학회에도 참가 안 한 두 멤버는 아까 1번에서 말한 그 두 명 ... 이번 학회에 참가한 네 명중 한 명은 블랙홀, 한 명은 3번에서 말한 "실질적 리더," 한 명은 "내 친구1," 또 나머지 한 명은 나였다.)


근데 다른 멤버들이 약대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모두 참가한 어느 시점, 한 멤버가 오롯이 이 포스터 앞에 남아 있었다. 이 멤버는 학생용 패스를 사지 않아 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없었다 (포스터 발표장에서 발표만 하겠다고, 학생용 패스보다 조금 더 싼 발표자용 패스만 샀기 때문).

한참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재미 보고 있는데, 아까 3번에서 말한 "실직적 리더"였던 1학년 친구, 웬만하여서 팀 멤버에게 섭섭한 감정도 티 안 내고 자기감정 표현도 자제할 줄 아는, 진짜, "부처" 같은 친구였는데, 이 친구가 나에게 재밌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자기 폰을 나에게 내밀었다.

지역 약사님들 단체 중 한 곳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 한 장엔 혼자 오롯이 남아있던 그 멤버가 혼자 서있었다.


엉? "her poster"??? (모자이크 부분은 그녀의 이름. 사진도 내가 직접 가려줬당 ...)


그리고 캡션에는 너무도 당당히 "그녀의 포스터"라고 쓰여있었던 것!

("her poster" 하고 "her team's poster"는 엄연히 다르다!!!)

단체 포스터인 거 뻔히 알면서 캡션을 저렇게 올린 인스타 관리자 문제이기도 했지만, 이 친구가 해왔던 뻘짓(?)을 뼛속까지 기억하고 있던 나머지 팀원들은 이 포스트를 보고 황당함과 억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벌써 CAPSLEAD 2018 팀이 뽑힌 시점이었고, 우리 2017 팀의 프로젝트는 이번 학회를 끝으로 다 마무리된 시점이라 굳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억울했다.

이번 학회에 참여 안 했지만 그동안 열심히 해온 네 명 중 하나였던 내 친구 2에게 연락해서 이 사실을 알려주니 이 친구도 참 어이없어했다.


우리가 마음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본, CAPSLEAD는 아니었지만 다른 대외 활동을 열심히 해 온 친구가 인스타 계정 관리자분께 연락 해 결국 캡션이 수정되긴 했지만, 사진은 여전히 그대로 그녀 혼자이다.

컨퍼런스 내내 포스터 앞에서 네 명이 다 같이 찍은 사진이 많은데. 제목에 있는 사진처럼 교수님들이랑 같이 찍은 더 좋은 사진들도 많은데.

역시 인생은 타이밍인가 싶으면서, 컨퍼런스 끝난 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억울한 감정이 다 없어지지는 않는, 그런 에피소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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