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도 스페인어도 아닌것이 자기만의 언어를 개발시키고있다
한국 다녀온 뒤로 아기가 부쩍 많이 쓰는 단어가 있는데, 바로 “엄마”와 “아빠”이다. 전처럼 뜻 모르고 옹알이 수준으로 말 하는게 아니라, 확실히 내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엄마”라고 말하고 (“마마” 아니구 진짜 “엄마”!), 또 남편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아빠”라고 말 한다.
심지어 남편 팔뚝만 나온 사진만 보고도 그 팔뚝을 가리키며 “아빠”라고 하면서 해맑게 웃는다.
가끔가다 아빠에 대한 사랑을 강조하고 싶을 땐 “압.....(하면서 아빠쪽으로 달려가 아빠랑 눈 마주친 다음에) 빠!!!!!”하기도 한다.
시가족들도 아기가 “papa (빠빠—스페인어로 아빠)”라 하지 않고 확실히 한국말로 “아빠” 하는걸 신기해 하면서 쬐끔은 아쉬워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아빠 어딨냐고 아기에게 물어보시며 “¿Donde esta tu 아빠? (너네 아빠 어딨어?)”라고 한국어 & 스페인어 섞어서 물어보시기도 하는데 그걸 또 아기가 잘 알아 듣는다.
다른 가족들을 부르는 말은 스페인어로 확실히 가르쳐주시기도 한다. (삼촌은 tio (띠오), 할아버지는 abuelo (아부엘로), “귀여운” 할머니는 abuelita (아부엘리따) 등...)
또 먹는것에 대한 말도 부쩍 늘었다.
아기가 한국어로 엄마/아빠를 확실히 말 하기도 전에 제일 먼저 제대로 말하기 시작한 단어는 사실 “아우아 (agua—스페인어로 “물”)” 이었다.
마시는 물 보고도 “아우아,”
산책 나가서 보는 이웃집의 스프링쿨러 보고도 “아우아,”
비오는 날 마당 창문 밖으로 보이는 웅덩이 보고도 “아우아,”
쇼핑몰 나가면 보이는 분수대 보고도 “아우아.”
공항에서 커다란 광고판에 나오는 파도와 바다를 가리키며 “아우아!!!” 하면서 들떠하는 아기였다.
집에서도 말 잘 안듣고 버티는 아기에게 “뭐 먹으러 가자!” 하면 고집 그만 피우고 주방쪽으로 스스로 잘 걸어가기도 하고 (이건 한국말, 스페인어 다 통하는 부분. “¡Vamos a comer!” 해도 잘 따라온다),
주방 한켠에 걸려있는 바나나 송이를 가리키면서 누가 바나나를 줄때까지 “나나” 하기도 한다. 바나나도 윗부분 껍질을 살짝 열어주기만 하면 혼자 잡고 잘 먹는다.
또 분유가 먹고싶을 때는 분유통이 있는 쪽으로 어른을 데려가 “lech, lech”하고 반복하는데, 우리는 처음에 이게 그냥 옹알이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스페인어로 우유, “레체 (leche)”를 자기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 다녀온 뒤로 시차 적응에 힘들어하고 있다.
(이 문장에 주어가 없는 이유는 사실 시차 적응에 제일 힘들어하고있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ㅋㅋ)
남편은 제법 첫날부터 낮잠도 안자고 정신력으로 잘 버티어냈고, 둘째날 아침 나랑 아기와 다같이 아침 11시까지 쭉 잔것 이외엔 그럭저럭 자는 시간도 일어나는 시간도 규칙적으로 잘 생활 하고 있다.
아기도 둘째날엔 아침 11시, 셋째날엔 아침 9시, 넷째날엔 아침 7:30분에 일어나는 등 점차 자기의 원래 수면 패턴을 찾아가고 있다.
나는 일어나는 시간, 잠 자러 가는 시간이 아주 제멋대로인데다가 하루 중간에 3-4시간짜리 “낮잠”도 잔다 ... 아기 깰때 같이 깨고서, 남편이 일어나면 그 뒤는 남편에게 싹 맡기고 난 다시 잠을 자러 간다.
한국에서 처음 미국으로 이민 왔을때 시차 극복 하는 데에 꼬박 2주가 걸렸었는데, 이번에도 최소 1주가 걸릴 것 같은 느낌.
(애기 봐야하는거 알지만 그래도 다른 가족들이 집에 다 계시고 남편도 이번주 내내 일 안나가고 같이 있으니 내 맘에 넘 편해서 이렇게 되어버린다. 나쁜 엄마 나쁜 아내 나쁜 며느리.)
그래도 한국에서 한낮인, 미국 밤 시간이면 아기도 어김없이 일어나 잠 못들곤 한다. 특히 요 몇일 간 밤 12시에서 2시 사이에 내리 잠을 못 자고 울기도 하고, 선잠 자는 채로 마구 움직여서 엄마아빠를 발로 차고 때리기도 하고 그랬다.
(원래 한국 가기 전에 애기용 침대에서 따로 재웠는데, 한국에서 있는 2-3주동안 우리랑 한 침대에서 자는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미국에 돌아온 이후로 자기 침대에 따로 눕히려고 하면 어떻게 그걸 알아채고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그래서 밤에 우리 침대에서 같이 재우고 있다.)
오늘은 아기가 통잠을 자나 싶었는데, 한밤중 아기가 내 가슴팍과 어깨를 그 작은 손으로 퍽퍽 (?) 때리는 느낌에 눈이 떠져버렸다.
그냥 무시하고 안아주며 다시 재우려고 했는데, 아기가 이번엔 말을 하기 시작했다.
“lech, lech”
오잉? 얘 분유 달라고 나 깨우는거네?
보통같으면 아기 안고 1층으로 같이 내려가서 분유 타는동안 아기를 주방 식탁 의자에 앉혀놓거나 했을 터인데,
내가 잠 자러 가기 불과 몇시간 전에 감기 예방 주사를 맞고 온 터라 팔이 너무 아파서 아기를 안고 내려가는 게 조금 무리일 것 같았다.
요즘들어 밤에 아기가 날 깨우면 같이 내려가는게 일반적이었는데, 오늘밤만은 같이 안고 내려갈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아기한테 “엄마가 레체 가지고 올게! 기다리고 있어!”하고 후다닥 1층으로 혼자 내려갔다.
아기가 울지 않았다!
원래 밤에 아기를 침대에 두고 나혼자 내려가면 “엄마!! 엄마!!”하면서 막 울었었는데, 내가 한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것 처럼 아기는 내가 분유 타올 때까지 얌전히 누워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유병을 손에 쥐어주자마자 꿀꺽꿀꺽 잘 먹는 아기. (요즘 자기 방식대로 우유병 잡는 법도 있다. 우유병을 물기 전에 꼭 우유병 상표 부분이 자기를 향하도록 병을 돌린 뒤에 우유병 꼭지를 문다. 왜 그럴까? 나두 몰라.)
어두운 방 안에서도 자기 방식대로 우유병을 잡고 물고선 금새 우유를 다 마신 뒤 아기는 다시 잠이 들었다.
집에서 한가지 언어만 쓰는게 아니라서 아기가 말을 배우는 데에 시간이 훨씬 더 걸릴거라고 다들 그런다 (인터넷도, 친구들도, 어른들도, 소아과 의사 선생님도).
그 와중에 매일매일 진전을 보이며 열심히 말 배우고 떠드는 아기가 정말 대견하고 사랑스러운 것 ㅠㅠ
아기가 나보다 스페인어 더 잘 하게 되기 전에 나도 열심히 배워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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