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마지막 “방학” 중 우리의 근황

19.5개월 아기. 한국 나이로는 벌써 세살이네?

by 장군

2015년 8월부터 약대에 다니기 시작했었다. 다른 대부분의 약대들처럼 대학원과정 4년을 거치고 졸업 하면 doctor of pharmacy (Pharm.D.) 학위를 받고 미국 약사 시험을 치를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이 board exam은 학교 졸업 후에 학생들이 각자 자기 일상 스케쥴에 맞춰 시험을 보게 된다. 보통 졸업은 5월 중에 하고, 시험은 7-9월 사이에 보는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나는 2019년 5월에 졸업이 예정된, class of 2019이다.

영영 안올것 같이 멀게만 느껴진 2019년이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이제 5개월 후면 유치원 3년,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학부 4년에 동네 community college 1년, 그리고 약대 4년까지 장장 24년에 걸친 나의 교육이 끝이 나는 것인가 싶다! (하지만 배움엔 끝이 없다고 하지 않는가? ㅋㅋ 짬짬히 community college 같은데 가서 프로그래밍 개론(?) 등 자잘한 수업들 들어보고 싶은 건 안비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말인 즉슨 지금의 이 겨울방학이 내 평생 살면서 저절로 주어지는 방학의 마지막 이라는 것이다! 일 하면서 vacation 낼수도 있겠지만 당장 일자리가 급한 나로선 상사에게 벌써부터 휴가 달라고 하는거 상상을 할 수도 없다. (아직 상사가 없기도 하고.. ㅋㅋㅋ)




새해 아침은 친정에 내려가 떡국을 맛있게 먹었다. 엄마 음식은 언제 내려가 무엇을 먹어도 참 맛있다. 남편도 떡국 맛있었다고 몇번을 그랬다. 오랫만에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도 뵈었는데 아기가 부쩍 큰 모습을 보시고 신기하고 기특해하셨다. 당신들께서 벌써 증조 할아버지, 증조 할머니 라는 걸 문득 깨달으시고선 매우 놀라워 하셨다.


남편은 아직도 “미국 나이”랑 “한국 나이”가 왜 다른지 이해가 안된다고 그랬다. 한국 나이로 치면 2017년에 태어난 아기는 이제 2019년이 되며 세살이 된다. 만 나이로 세는 미국에선 아기들 나이를 얘기 할때 개월수로 얘기 한다. 지금 아기는 19.5개월이다.


새해 점심은 다시 시댁으로 돌아와 시댁 식구들과 집 근처 유명한 초밥집에 가서 먹었다. 사실 새해 전야를 더 크게 세는 문화 덕에 맛있는 가족 저녁을 12/31에 벌써 먹은 뒤이긴 했다. 아기가 자꾸 돌아다니려고 해서 아기 뒤를 좇아 잡아와서 자리에 앉히곤 했는데, 아기가 돌아다니면서 “아빠 아빠” 말 하는걸 한국인인 초밥집 주인 아저씨가 듣고 신기해 하셨다.


“아빠 라고 말 하네요? 애기 한국말 해요?”

“네, 저는 한국말로 말 하고 있어요. 아기야 이리와!!”


다시 아기 뒤를 쫓아 가야 해서 긴 대화가 이어지지는 못했다.




아침 7시 반 쯤 일어날까 말까 침대에 누워서 뒤척이고 있었다. 남편은 일찌감치 일을 나간 뒤였다. 8시 되기 조금 전 아기도 슬슬 일어나려 하는 것이 보였다. 어느샌가 눈을 딱 뜬 아기는 어젯밤에 내가 입혀준 우주복 (onesie) 스타일 옷을 입고 있었는데, 턱 밑쪽에 있는 지퍼를 자기가 막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요즘 날씨가 추워진 탓에 집안에 히터를 자주 켜는데, 그래서 좀 덥다고 느낀걸까?


“아기야 그러면 안돼~ 너 추워 그러면! 추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기가 침대 밑으로 후다닥 내려갔다. 아침에 내가 자기보다 늦게 일어나려는 낌새가 보이면 침대 발치 근처에 있는 책장에서 자기 책을 두어권 가져와서 읽어달라고 그러는 아기였다. 그래서 난 아기가 또 책을 가지러 가는 줄 알았다.


엄마 일어나라고 그러는 줄 알고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켜 앉은 상태로 아기가 뭐 하는지 쳐다 봤다. 그런데 아기가 내가 어제 벗어 놓은 후드 자켓을 집어 들어 나에게 가져오고 있는것이었다. 나에게 뭐라뭐라 하면서 후드 자켓을 주는데 꼭 “엄마, 추우면 이거 입어요!”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까 아기한테 “너 옷 안입으면 추워!” 라고 말 한걸 듣고는 내가 춥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리 아기가 벌써 이렇게 많이 커서 엄마 말도 다 알아듣고 참 기특하고 대견하다.

저번 18개월 검진때 뭐랬나, 단어를 10개정도 구사 해야한다고 하던데 아직 말 발달 속도는 평균의 아이들보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배우는 아기이다. 의사 선생님도 집에서 여러나라 말 쓰는 경우에 말을 조금 더 천천히 배우는 경향이 있다고 그랬다. 우리집의 경우 아기한테 나는 한국어, 시부모님은 스페인어, 남편은 영어 쓰는 통에 아기가 헷갈리기도 할 것이다.


아기가 꽤 그럴싸하게 말하는 단어들
- Agua (스페인어로 물)
- 엄마, 아빠 (한국 가서 두 단어는 확실히 배워왔다)
- Lech(e) (스페인어로 우유/분유)
- (Chi chu) cha! (아기가 보는 유투브 비디오에서 나오는 마법의 주문)
- abre, abre (아기가 보는 유투브 스페인어 유투브에서 댤걀을 열때 하는 말. "열어요, 열어요" 정도 되려나?)
- 뻐스/Bus
- Oh, no!
- Fish
- ~ 어딨지? (오늘 처음으로 딱 한번 말하긴 했으나 ... 넘 정확한 발음이었다! 내가 잘못들었나? ㅋㅋ)

아기의 의도는 알겠으나 아직 귀여운 “소리”들
- 탸 (“차”를 말하려 하지만 혀가 짧은 것...)
- 나나 (바나나)
- 나나 (스페인어로 오렌지-naranja-를 말할때나 개구리-rana-를 말할때 이렇게 소리가 난다)
- 기이이이이 (“귤” 발음을 못한다...)

할줄 알았다가 까먹은 (?) 말들
- 냠냠 (5-6개월때 퓨레 먹을 때 마다 더 달라는 뜻으로 이 소리를 내곤 했는데! 이제 까먹은 것 같다)
- 미키 (처음 알려준 날엔 곧잘 미키 라고 따라 하더니 며칠이 지난 지금은 이제 "마" 라고 부른다 ... 미키마우스 에서 마 가 제일 인상깊었던 모양)


가끔 Wheels on the Bus 노래 틀어달라고 멜로디를 비슷하게 흥얼거리기도 한다. 이런 모습 보면서 이 아이는 천재적인 음악성을 타고 난게 틀림 없다 생각하면서 15년뒤에 피아노 바이올린 등 여러 악기 연주하는 아들내미를 상상한다. 나는 아무래도 아들 바보인거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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