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최진영)을 읽고.

죽음으로도, 살아서도 너에게 갈 수 없는 사랑.

by 플랫화이트



사랑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같이 보낸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고, 사랑의 말을 하고, 사랑의 행동을 하고 그것을 추억하고 나누며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조차도 할 수 없다면 무엇으로 사랑을 증명할 수 있을까?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 주인공 구와 담은 어릴적부터 유일한 친구다.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였고,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변해가는 세상은 그들의 사랑을 순순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결국 둘은 멀어지고 구는 부모의 빚을 갚기 위해 거친 세상에 던져진다. 담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이모의 죽음으로 혼자가 되어 구를 기다린다. 구와 담은 다시 재회하지만, 부모의 행방불명으로 모든 빚을 떠안은 구는 무차별한 폭력으로 죽게 된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구와 담은 죽음으로 서로 사라질까 두렵다. 구는 담이 먼저 죽으면 먹겠다는 농담 같은 말에 담도 구가 먼저 죽는다면 먹겠다고 말한다. 담은 둘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괴물들이 죽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오랫동안 살아남겠다고 한다. 살아서 구를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다짐한다.



“교통사고와 병과 돈. 그런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성숙한 사람은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나는 평생 성숙하고 싶지 않다.

나의 죽음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죽어보지 않아서, 죽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홀로 남겨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잘 안다.

차라리 내가 죽지 내가 떠나지.”


구의 죽음은 돈 때문이었다. 구의 부모는 감당할 수없는 빚을 지고 행방불명됐다. 부모의 빚을 갚아야 하는 구는 밤낮으로 일을 해도 해결할 수 없었다. 그저 도망가는 것밖에, 산속으로 들어가 청설모가 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리 숨어도 그들은 구를 찾아냈고 결국 무차별한 폭력으로 생을 마감한다. 담은 돈의 폭력으로 죽게 된 구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다. 사랑하는 구의 몸에 칼을 댈 수도, 불에 태울 수도 없으니 구를 먹어야 했다. 구를 기억하기 위해 구를 먹고 오래도록 살아남아야 했다.



책을 다 읽고 울 수 없었다. 돈과 폭력에 빼앗긴 둘의 사랑이 아프고 슬펐다. 구를 먹는 담의 모습이 결코 혐오스럽지도 괴기스럽지도 않았다. 구를 기억하기 위한 절규로 느껴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였다면 신파적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구와 담의 사랑은 현재를 살고 있는 내 자녀와 내 주변인의 이야기 같았다. 아무리 애써도 혼자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사랑을 포기하고, 결혼을 포기하고, 외로움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사랑하는 구의 시신을 먹는 담의 절규가, 죽어서도 떠나지 못하는 구의 고통이 우리들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살아남은 담의 절규와 죽은 구의 고통 앞에 눈물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또 많은 날 나는 사랑하면서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글을 쓰고 싶다’ 생각하고, 분명 살아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버린다.”

작가의 이 말처럼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살아간다. 지금의 사랑이 끝났어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담이 구를 먹어 살아남음으로, 구는 영혼으로 담의 곁에 남아있으므로 사랑을 증명한 것처럼, 우리는 계속 사랑하면서 사랑을 증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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