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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Dec 12. 2023

<작은 선의가 하루에 미치는 영향>

    

이른 겨울 추위가 찾아왔던 날, 약속이 있어 아침 일찍 외출을 서둘렀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은 어깨를 움츠릴 정도로 추웠고 난 번개보다 빠르게 차 안으로 들어갔다. 차 안은 얼음장처럼 차가워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동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시동이 켜지며 갑자기 알림 메시지가 떴다.   

  

타이어 공기압이 낮으므로 점검이 필요합니다일정 속도 운행은 가능합니다.”     


처음 보는 알림에 순간 머리가 복잡해졌다. 오늘은 친구와 약속이 있고, 내일은 친정도 가야 하니 차에 휘발유도 넣어야 한다. 더구나 연일 치솟는 기름값으로 집에서 조금 떨어진 주유소도 갈 계획이었다. 당장 차를 운행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했던 일의 순서를 바꿔야 했다. 나는 아주 약간 계획형 인간인데 예상했던 하루 일정이 틀어지면 역시 아주 약간 예민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계획이 틀어지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머리를 굴려 일의 순서를 따지기 시작했다. 우선 운행 중 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가장 먼저 할 일은 타이어 공기압을 점검하는 것, 이것만 해결하면 뒷일은 너무나 쉽게 해결될 일이었다. 문제는 운전한 지 15년이 넘었는데 타이어에 공기를 넣어본 적이 없다는 거였다. 남편에게 전화하기에는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차이니 내가 해결해 보자고 생각했다.     



 

차 안에서 폭풍 검색을 했다. 포털 사이트의 내가 사는 지역 <맘카페>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맘카페>라는 곳이 엄마들의 생활아이디어가 샘솟는 곳이라 역시나 다양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1. 자동차 서비스 센터 찾아가기 : 

        이 방법은 서비스받기 위한 절차와 시간이 오래 걸려서 패스.

     2. 출동 서비스 부르기 :

        타이어 공기를 넣기 위한 무료 서비스 기회를 쓰는 건 낭비라서 패스.

     3. 동네 셀프 세차장 무료 공기압 기계 이용 :

        내가 이용하는 세차장에 기계가 있는지 확실치 않다는 것과 거리가 좀 있어서 패스.

     4. 동네 사설 공업사 찾아가기 : <맘카페>에서는 두 가지 방법이 검색되었다.

          A 방법 : 약간의 비용을 지급하고 공기를 넣어주는 공업사

          B 방법 : 비용 지급 없이 공기를 넣어주는 공업사     


나는 4. A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고민하는 것보다 비용을 내고 서비스받는 것이 당당할 것 같았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공통된 내용이 있었는데 비용 지급 유무와 상관없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는 거였다. 일하는 분들이 너무 바빠서인지 아니면 너무 사소한 문제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친절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는 거였다. 친절하지 않다는 내용에 망설여졌다.     

운전을 시작하고 차 관리는 남편이 담당했다. 내 소유의 차가 생겼어도 난 운행만 했을 뿐, 보험이나 정비는 남편이 했다. 그러니 이런 사소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으로도 조금은 걱정이 됐는데 공업사가 친절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보니 주저하게 됐다. 하지만 시간도 없고 다른 방법은 더욱 없으니 빨리 집에서 가까운 공업사로 가야 했다. 찾아간 공업사는 오래전 남편 차 수리 비용을 문의했던 곳인데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았다. 친절하지 않았다는 엄마들의 경험담이 떠올랐다. 공업사 사장님이나 직원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경험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스트레오 타입을 가지게 됐고, 경험해 보지 않은 상황에 편견이 생긴 것이다.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공업사에 도착했고 차 문을 내렸다. 다가오는 사장님은 60대의 푸근한 인상을 띄었다. 첫인상은 그런대로 괜찮은 듯 하나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사장님, 타이어에 공기 넣어주시나요?” 


난 의식적으로 큰 목소리로 물었다. 사장님은 대답도 없이 고개만 까딱하는 게 아닌가? 역시 <맘카페> 엄마들이 맞았고, 나의 예상도 딱 맞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타이어에 공기를 넣는 게 아닌가. 처음엔 잘 못 본 게 아닌가 생각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장님, 얼마 드리면 될까요?”

    “그냥 가세요.”     


사장님의 입가엔 미소가 보였고 말에는 친절함과 부드러움이 묻어났다. 순간, 걱정은 사라지고 나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음에 꼭 정비하러 올게요.”     


사장님은 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동을 켜자, 점검 메시지는 사라졌고 마음속엔 “감사합니다.”라는 알림 메시지가 떴다. 차는 친절이라는 공기로 채워져 도로 위를 통통 튀면서 달렸고, 난 가슴속에 사장님의 미소와 친절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주유소로 가는 길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는 것 같았고, 친구와의 시간은 향기로 가득한 것 같았다.     




남편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별일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행복한지 물었다. 내가 행복했던 이유는 사장님의 미소에서 진심을 봤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점점 개인의 이익만 추구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사라지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이 만연해져 여성으로 사는 것은 항상 불안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나 역시 사회에 대한 걱정과 불안은 더해졌고 고정관념과 편견도 생겼다. 


공업사에 대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확인되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사장님의 미소에 묻어난 진심에 걱정도 고정관념도 사라졌고 작은 것의 큰 의미를 깨달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변화된 나를 발견했고, 그걸로 하루가 행복했다. 작은 친절과 미소에 담긴 진심, 나를 돌아보고 변화시킨 진심이 행복한 하루를 만들었다. 누군가의 작은 친절과 미소는 개인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장님의 작은 선의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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