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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Jan 02. 2024

몸이 명품? 당신이 나의 명품!


이번 겨울, 큰 마음먹고 고가의 외투를 샀다. 원래 추위를 많이 타는데 몇 달 전 위경련을 하고 몸무게가 더 빠지면서 추위를 더욱 많이 느끼게 됐다. 안 그래도 왜소한 몸이 더 볼품없어 보이니 옷 입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갑자기 추워진다고 하니 사고 싶다는 욕구는 바로 구매로 이어지는 완벽한 이유가 되었다. 류머티즘 정기 검진이 있던 날, 고민하던 그 옷을 샀다.




병원 가는 날, 아침부터 손이 아팠다. 검사를 위해 아침 약도 먹지 못하는데 통증까지 있으니 병원 가는 내내 걱정이 됐다. 걱정과는 다르게 다행히도 염증수치 외에 다른 부분도 큰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예상밖의 결과에 기분이 좋아진 난 한껏 들떠 있었다. 남편은 이런 나의 기분을 알았을까? 병원 온 김에 외투를 사러 가자는 거였다. 필요하다고 얘기는 했지만 고가라서 몇 달을 망설이던 나였다. 남편은 언제 사도 살 건데 뭘 고민하냐며 재촉했다. 남편의 재촉에 너무 비싸니 사는 건 더 고민할 거라고, 그냥 입어만 보고 오자고 말은 했지만 마음은 벌써 옷을 입고 있는 나를 상상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몸이 왜소해지면서 옷에 신경이 쓰인다. 흔히 젊음이 무기라고 하는데 나도 젊었을 때는 몸무게도 어느 정도 나가고 피부도 좋아서 꾸미지 않아도 나름대로 만족했다. 보통 중년이 되면 살이 붙어 힘들다는데 난 반대로 살과 근육이 빠지고 처지면서 탄력을 잃었다. 어깨가 좁고 살집이 없으니 외투를 살 때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고민의 시간과 금액에 대한 부담은 한정된 브랜드에 집착도 가지게 한다. 이래저래 옷을 사는 것은 기대와 실패를 체험하는 시간이다. 친구들은 살찔 걱정 없으니 얼마나 좋냐고 하지만 난 평균의 여성 몸무게를 갖고 옷을 살 때 고민을 덜 하고 싶다.

이번 외투를 사고 싶은 이유도 왜소한 몸을 가릴 수 있을 것 같았고, 견고하게 만들어져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이라고 하니 꼭 사고 싶었다. 그러나 가격이 문제였다. 나는 명품에 관심도 없고 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옷은 내 몸에 딱 맞으면 명품이고, 가방은 옷에 맞는 스타일이며 맨다. 그러다 보니 외투는 두 개 정도의 브랜드만 입게 되고 합리적 소비를 위해 할인점에서 구입한다. 이 외투도 조금 저렴하게 사기 위해 이곳저곳 문의했지만 판매완료가 돼서 살 수가 없었다. 백화점에서만 신상품으로 사야 하니 손해인 것 같아서 구입을 더욱 고민했다.


그런데 남편이 가자고 하니 고민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구매 욕구가 상승했다. 옷 매장은 7층에 있었고, 매장에 도착하자 이미 몸이 옷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직원은 바로 내가 찾던 모델을 꺼내보여 줬다. 화면에서 보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직원의 설명을 듣고 바로 착장을 하고 거울을 봤다. 역시 생각했던 느낌 그대로, 맞춘 듯 내 몸에 딱 붙었다. 작은 내 몸에 옷이 붙는 느낌! 내가 옷을 구입하는 포인트다. 

몸이 커 보였고, 정말 따뜻했다. 당장 밖으로 뛰어나가 눈밭을 뒹굴러도 될 것처럼, 마치 나를 보호해 줄 보호망처럼 느껴졌다. 그래 이건 고민의 여지가 없다, 사야 한다. 거울을 보며 마음을 굳힌 순간, 남편도 옆에서 연신 이쁘다며 사라고 재촉했다. 고민 끝! 계산을 끝내고 백화점을 나섰다. 그런데 마음에서 다른 감정이 솟았다. 남편에게 미안했다.



남편은 자신에게 돈을 쓰지 않는다. 요즘은 책과 식품 구입 외에는 지출이 없다. 옷이나 신발 등 온전히 자신을 위한 걸 사는 데는 더 인색하다. 특히 옷은 진짜 필요하지 않은 이상 사지 않는다. 겨울 외투도 스포츠 의류 브랜드로 저렴하게 구입해서 입고 있다. 좋은 브랜드의 외투를 사자고 해도 고민으로 끝내는 사람이다. 고가의 옷을 사고 나오니 문득 남편도 사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남편에게 혹시 사고 싶지 않냐고, 경제적으로 무리지만 당신 것도 하나 사자고 얘기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은 


“내 몸이 명품이잖아. 난 몸매가 좋아서 아무거나 입어도 괜찮아.”


물론 남편은 큰 키에 팔다리도 길고, 배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는 못 속인다고 중년이 되니 신경 쓰지 않으면 초라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외출할 때 어느 정도 스타일에 대한 조언을 한다. 스타일에 대한 이런저런 조언과 간섭은 하면서도 정작 옷을 사라고 하진 않았다. 진짜로 외투가 필요한 사람은 남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남편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난 살만 찌지 않으면 평생 입을 수 있다고, 내년에는 당신 것도 꼭 사자고, 남편을 위로하는 건지 나의 미안한 마음을 들어달라고 재촉하는 건지 알쏭달쏭한 의미가 담긴 말을 했다.


남편의 성격을 아는 친구는 새 외투를 입은 나를 보며 물었다.

"정말 잘 샀네. 잘 어울려. 근데 네 남편도 샀니? 안 샀지? 아이고, 이젠 남편 좀 신경 써."


며칠 후, 또 다른 친구에게서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 집의 모든 것은 나를 위주로 돌고 남편과 딸은 보조자의 역할을 한다는 얘기를 했다. 과거에는 이런 얘기들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아프니 당연한 건 아닌가? 엄마이자 아내인 내가 아프지 않아야 집안을 돌볼 수 있고, 남편은 아내말을 잘 들어야 집안이 편안하다는 걸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그리고 우리 집은 그래서 괜찮다고, 모든 것은 내가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를 치켜세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남편은 나와 결혼하고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결혼하고 검사가 있는 날은 항상 동행한다. 육아나 집안일 대부분도 도맡아 해 줬다. 손이 안 좋은 나를 위해 요리도 담당한다. 딸은 어렸을 때도 투정한 번 없이 잘 자라줬다. 이 모든 것은 분명 희생이란 걸 안다.




친구들의 말에 미안해서 남편에게 꼭 좋은 외투를 사자고 했다. 고가의 옷을 사주는 남편의 마음이 두 배, 세 배, 아니 그 이상으로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걸 안다. 나도 그 마음을 담아 사주고 싶다. 요즘도 옷을 입을 때마다 슬금슬금 마음 한편에 미안한 감정이 물든다. 그러나 이제는 미안한 감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친구들의 의미 담긴 말과 남편의 괜찮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나의 진정한 명품은 바로 남편이다.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명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명품이다.


"당신이 바로 나의 명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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