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가방 하나를 구입했다. 부드러운 소가죽에 모양도 독특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가격도 20만 원 중반으로 적당했고 평소에 잘 쓸 것 같아서 주저 없이 주문했다. 처음에는 자주 들고 다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다른 가방처럼 옷장에 들어가 있는 시간이 늘었고 점점 가방의 존재를 잊었다.
옷장을 정리하던 중 그 가방을 발견했다. 근데 웬걸. 마음에 쏙 들던 가방이 이전과 다르게 무척 커 보이고 촌스러웠다. 가방이 크니 나의 왜소한 몸이 더욱 작아 보였다. 그대로 옷장에 넣기에는 아깝고, 새로운 가방을 사자니 얼마 전에 산 가방이 떡하니 있으니 살 수도 없다. 단지 크기가 문제였다. 리폼도 유행이니 크기를 줄여서 다시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가방 리폼 업체를 찾을 수 없었다.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명동에 “명품리폼달인”이 하는 업체가 있었다. “명품리폼달인”이니 20만 원대의 가방 정도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이른 아침에 배낭에 가방을 넣고 명동으로 향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고 했으니 출발 전에 업체에 전화해서 크기 리폼이 가능한 지 확인도 했다. 업체에서는 직접 봐야 알 수 있으니 오라는 거였다. 오라는 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리폼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대답이 확실했다. 나의 몸에 딱 맞는 크기로 재 탄생할 가방을 생각하니 1시간이 넘는 시간도 짧게 느껴졌다.
남편의 회사가 리폼업체 근방이라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방을 맡기면 되니 더욱 즐거웠다. 어제까지 춥던 날씨도 풀려 날씨까지 도와주는 완벽한 시나리오였다. 남편을 만나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약간의 언쟁이 생겼다. 여느 부부처럼 사소한 말에 감정이 상했다. 집이 아니라 싸움이 계속되진 않았지만 서로 감정을 참느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완벽했던 시나리오에 문제가 발생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수선도 못 하고 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별거 아니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불편한 마음을 털었다.
조금 걷다 보니 수선업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가방 수선은 3층>이라는 문구를 보고 계단을 오르면서 남편이 물었다.
“금액을 얼마까지 예상해?”
“음, 한 15만 원? 명품도 아닌데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겠어.”
20만 원 중반대, 국내 생산 제품이니 가방 금액을 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직원은 친절하게 우리를 맞았다. 사장님이 직접 나와 가방을 보고 내가 원하는 크기를 줄자로 재서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했다.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새 가방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의 친절한 모습에 마음이 한껏 들떴고 남편과의 다툼도 싹 잊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사장님의 말을 받아 적는 게 끝난 것을 보고 가장 중요한 금액을 물었다.
“사장님, 비용은 어떻게 하나요?”
“25만 원이에요!”
“네? 25만 원이요?” 나는 다시 물었다.
옆에 있던 남편은 더 놀랐는지
“이 가방이 20만 원 정도인데, 25만 원이라고요?”
나와 남편은 몇 번을 되물었다. 우리의 모습에 사장님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듯
“명품 가방이든 아니든 가격은 정해져 있어요.”
우리는 바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놀란 마음이 진정되자 허탈했다. 나는 그냥 들고 다녀야겠다고 얘기했고, 남편은 다른 가방을 하나 사는 게 어떠냐며 위로인 듯 아닌 듯한 말을 했다.
리폼은 개혁, 혁신을 뜻하는 영어로 낡거나 유행이 지난 물건 등을 고쳐 새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해석한다. 난 리폼의 의미처럼 특별한 의미를 두고자 한 것은 아니다. 미니멀라이프, 리폼 등 버리고 고쳐 사용하는 현명한 소비가 유행이니 나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고 싶었다. 또 넘쳐나는 물건에 왠지 모를 죄책감 같은 것도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으로 리폼해서 사용하는 맛도 느끼고 싶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사람들은 멋지게 잘도 리폼하던데, 모두 큰 비용을 들였다는 얘기 아닌가. 과연 리폼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현명한 소비 형태는 각자의 몫이니 나의 현명한 소비를 선택해야겠다. 다시 어깨에 걸고 거울을 본다. 여전히 가방의 크기나 나의 왜소한 몸의 크기나 차이가 없다. 리폼은 할 수 없으니 그냥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자. 그래도 아쉬워 마음 속으로 외쳐본다.
“사장님, 가방 리폼, 싸게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