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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Nov 30. 2023

백발을 꿈꾸다.

흰머리 처리, 참 고민입니다.

  

  또 한 가닥이 삐죽 나왔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시작된다. 더 이상 뽑아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고민이 끝나기 전에 이미 손은 서랍을 향해 돌진하고 족집게를 잡은 손은 무서운 속도로 머리로 향한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눈동자는 머리카락을 째려본다. 손은 정교하게 목표물을 향해 돌진. 정확히 목표물을 잡고 순식간에 팍!

휴~~ 이 쾌감, 역시 이 맛이지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찾아오는 후회로 다음에 절대 뽑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2023년, 나의 가장 큰 신체적 변화는 흰머리가 걷잡을 수 없이 늘었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는 나이에 비해 많지 않던 흰머리가 1년 사이에 머리를 점령했다. 정수리 쪽 가려움이 심해지더니 한 가닥 한 가닥 눈에 띄게 늘었다. 드문드문 보이는 흰머리를 뽑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릴 적, 가끔 엄마는 묵은쌀을 주며 쌀벌레나 지저분한 것을 골라내라 했다. 하기 싫기도 했지만, 찾아냈을 때 기분은 중독성이 강했다. 그 중독성에 빠져 형제 중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흰머리를 뽑는 것이 그 순간의 오마주가 된 것처럼 눈에 띄는 순간을 놓치지 않는다. 정수리 쪽에서만 존재감을 드러내던 흰머리가 어느 순간 앞머리와 귀 쪽 머리에까지 출몰했다. 신기하게도 요 녀석들은 그냥 자라지 않는다. 마치 논에 심어 놓은 벼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다. 하얗고 짧아서 언뜻 보면 연약한 듯한 이 녀석은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위용을 뽐낸다.   

  

  정수리 흰머리는 위로 솟아올라 처리가 수월하다. 잔머리가 많은 나의 앞머리와 귀 쪽머리 주변에서 자란 흰머리는 처리에 신중해야 한다. 눈에는 더욱 힘을 줘서 째려봐야 하고 목표물을 잡는 손은 더욱 세심해진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검은 머리카락까지 뽑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로 멀쩡한 검은 머리카락을 잃었다. 이때 느끼는 패배감과 상실감, 짜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흰머리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 과정의 하나다. 나이가 들수록 모낭 속 멜라닌 세포 수는 줄고 기능이 떨어지면서 흰머리가 난다. 요즘은 2~30대 젊은 나이의 사람들도 흰머리로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원인은 다양하다. 첫째, 스트레스다. 사람의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드레날린 분비가 촉진된다. 다량으로 분비된 아드레날린은 두피의 혈관을 수축시켜 영양 공급을 방해한다. 이때 멜라닌 생성이 적어지면서 흰머리가 난다. 둘째는 다이어트다. 과도한 다이어트는 영양 상태 불균형을 가져오고 모낭의 영양 공급을 어렵게 한다. 셋째, 갑상선 질환이다. 갑상선 기능 문제로 호르몬이 과다 분비되거나 부족하게 되면 멜라닌 색소 부족으로 흰머리가 난다. 다행히도 젊은 사람들은 스트레스가 해소되거나 건강을 찾으면 다시 검은 머리가 난다고 한다.

     



  50세가 된 나는 흰머리 뽑기를 멈춰야 하는 이유가 명확해졌다.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아니요, 다이어트를 하지도 않는다. 갑상선 질환도 없으니 노화 때문인 건 확실하지 않은가. 다시 젊어지는 기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염색도 하고 싶지 않다. 염색한 지도 20년이 넘었고, 염색으로 발생하는 번거로움과 경제적 낭비도 감내하고 싶지 않다. 이미 검은 머리카락 속은 흰머리로 가득하다. 흰머리로 가득한, 나이 들어 보이는 내가 싫지도 않다. 다만, 뽑는 행위에서 오는 오묘한 쾌감에 빠지는 나, 그 찰나의 쾌감을 잊지 못하는 내가 싫을 뿐이다. 그러니 빨리 백발이 되길 바란다. 하얗게 반짝반짝 빛나는 머릿결에 젊게 스타일링한 옷을 입은 나를 상상한다. 벼처럼 뾰족하게 솟아오른 흰머리에 좌지우지하지 않는, 백발의 내가 되길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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