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중순인데 연일 이른 겨울 추위가 극성이다. 12월에나 입는 두꺼운 재킷과 장갑을 꺼냈고 침대 위에 전기장판도 깔았다. 아직 2023년은 한 달도 넘게 남았는데 2024년을 준비하라고 떠밀리는 같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더욱 아쉽다. 이렇게 되니 올해가 가기 전에 과연 나는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변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나이 드는 것이 좋다. 특히 10년 주기의 나이가 되면 무척 기쁘다. 20대 중반부터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고 있어서 나이가 드는 것은 별 탈 없이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50세(국가 정책상 만 나이가 적용되어 만 49세라고 해야 하니 개인적으로 적잖이 섭섭한 마음이다. 그래도 마음껏 기뻐하고 축하했다.)가 된 올해는 새로운 전환기였다.
딸은 올해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고 몇 주에 한 번 집에 온다. 아무래도 딸이 집에 없으니 신경 쓸 일이 줄었고 나의 개인적인 시간은 늘었다. 딸의 교육(대안교육)을 위해 몇 번의 힘든 이사를 했다. 경기 북부에서 경기 남부로 이사를 하면서 경제적, 물리적 어려움을 겪었다. 남편은 왕복 5시간의 출퇴근을 해야 했지만 다행히 힘들다는 내색 없이 잘 견뎌주었다. 부모로서 감당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했다. 정서적 풍요로움을 주고 독립적으로 키우기 위해 딸의 생활과 사고의 경계 구분을 두었다. 딸이 자라면서 독립적이고 실천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 딸은 성인이 되어 독립했고 남편이 주말 살림을 전담하게 되면서 나의 개인적 시간은 더욱 늘어났다.
수시로 좋아하는 미술 전시회를 보고 도서관을 찾았다. 책도 많이 읽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흥미도 생겼다. 그러나 중년이 되니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 것들이 많아졌고, 책을 읽는 것이 활자만 읽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정보나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나와 가족, 친구, 그리고 나의 과거와 현재 등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체화되었던 게으름을 벗어던져야 했다.
기록과 저장이 취약한 내가 하루의 일정을 기록하고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가슴을 떨리게 하는 문장을 기록한다. 그리고 좋은 것은 실천하자고 다짐한다. 에세이와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힘들어하는 것은 무언지, 어려운 관계의 사람이 누구인지 점점 명확해졌다. 상황과 사람에 대한 명확성은 결국 나의 내면을 자세히 보게 했다. 결국 내 자신을 존엄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과거에 나는 질병이 있다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아내라는 이유로 변해가는 나를 놓쳤다. 그저 생활에 순응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올 한 해, 오롯이 나의 시간을 갖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니 나는 변해 있었고 달라지고 싶었다. 쓰는 모든 행위가 진정한 자아 찾기의 과정이 되었다.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건강한 정신을 확립할 수 있게 됐다. 건강한 자아가 확립되니 타인과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결국 내 자신을 존엄하게 되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흘러가는 대로 나를 맡기고 현재의 안위만 유지되길 바랐다. 그저 그런 일상의 유지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변화하는 나를 바란다. 책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글을 쓰며 발전하는 나를 꿈꾼다. 얼마 남지 않은 2023년도, 그 이후도 이 다짐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나의 발견, 그리고 꿈꾸는 나, 이런 내가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