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짓는다는 것들

글쓰기를 시작하며

by 이가든

내게 요리는 글을 짓는 것과 같다. 짓는다는 건 재료를 들여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창의적인 노동이다. 똑같은 재료를 써도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짓는 이의 생각과 솜씨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짓는 행위에는 어러움을 느낀다. 글은 소재가 머릿속에 떠다니는데 첫 줄도 쓰지 못하고 그만두는 때가 많다. 음식은 먹을 줄만 알지, 준비하는 과정, 마무리하고, 먹고 난 다음의 과정을 미리 생각했다가 요리를 하기도 전에 지쳐 버리기 일쑤다.


짓는 행위는 결과물에 대한 평가가 늘 따른다. 글에는 빨간 줄이 쳐지는 무시무시한 일도 발생한다. 빨간펜 선생님, 너무 무서운 말이지 않은가. 예전 직장상사는 내 보고서나 글에 가차 없이 첨삭을 했는데, 다행히 검은색 펜으로 하는 속 깊은 배려를 보여주었다. 지적한 곳이 너무 많아 고치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타인과의 계약된 노동에서는 통장을 채우는 등의 보상이 늘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족의 밥을 짓는 행위는 엄마 최고, 아니면 맛있네. 몇 마디에 족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 잘 먹어주면 고맙고, 잘 커주면 다행이다 생각하고 만족한다. 그런데 반찬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맛이 없으면 평가는 냉혹하다. "이게 뭐야?" "아 못 먹겠어." "색깔은 왜 이래" "치킨 시켜줘~ "

먹고 싶은 요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면 뚝딱 해버리고 싶지만 그 이미지를 상상하고 나면 나는 못하겠다 포기하고 만다. 그냥 재료를 다 때려 붓고 요리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밀키트도 잘 쓰지 않는다. 편리함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가는 길을 애써 마다하니 답답한 노릇이다. 때로, 밥에 대한 고민으로 스스로를 괴롭히는데 취미가 있나 싶다.


아빠가 퇴원을 하셨다. 옆에서 홀로 돌본 엄마가 안타까워 고생하셨다 하니, 엄마는 삼시세끼 다 해주는 병원 생활이 꽤 괜찮았다고 한다. 맛없는 밥에 힘든 수발에 행여 엄마마저 아플까 딸들이 서울 맛집에서 포장해 오는 음식도 재미였다 한다.

엄마는 60대가 되면서 아빠의 손과 발이 되었다. 아빠는 뒤늦게 시각 장애를 얻으신 데다가 다리뼈에 염증이 있어 걸음이 많이 불편하시다.


하루는 엄마가 집에 다녀오셔야 해서 내가 대신해 병원에 있던 적이 있다. 5인실, 보호자는 몸만 누이는 작은 간이침대를 쓴다. 동생이 두툼한 요가 매트를 가져와서 다행히 등이 많이 배기지는 않는다. 별로 힘도 들지 않고 챙길 것도 없다는데, 채 여덟 시간밖에 하지 않았는데 집에 가는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오늘 저녁은 밥과 김치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엄마는 아빠가 화장실에 가는 기본적인 생리현상부터 바로 옆에 있는 물건을 찾는 일까지 모두 도와주신다. 아빠 수발을 들면서 엄마는 개인적인 일은 거의 못하고 있다. 아빠가 시력을 잃으시고 만 십 년이 지나고 난 최근, 엄마는 71세가 되어서야 처음 피부관리실을 가셨다. 10회에 4-50만 원, 지방이라 가격도 괜찮다고 좋아하셨다. 몇 번 받고서는 눈에 띄게 달라 보여서 10회, 20회 계속해서 받으시라 했다. 그런데 그 마저도 아빠가 입원하시고서는 10회도 채우지 못하고 멈춰있다.


아빠가 퇴원하시는 날 집에 가는 차 안에서 아빠는 돼지고기 짜글이가 드시고 싶다고 했다. '아 아빠...'. 나는 앞자리 앉은 아빠의 뒷모습에 살짝 눈을 흘겼다. 엄마는 손도 빠르고 음식도 잘하니까 뚝딱 하겠지만. 집으로 길, 엄마는 텅 빈 냉장고를 채울 생각, 무슨 음식을 하고 반찬을 하고, 재료를 사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병원을 벗어나자마자 엄마의 밥 짓는 노동은 다시 시작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아빠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부모님은 같이 장사를 하시면서도 엄마는 늘 아빠의 세끼 밥을 차리고, 제철 식재료를 상위에 올렸다. 젊어서는 세 딸까지 먹이며, 때로 맡겨지는 친척들, 치매 걸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거두고 먹인 분이다. 식구가 많으니 반찬도 다양하게 찌고 굽고 고리고, 매 끼니 참 정성스레 밥을 짓으셨다. 마무리로 숭늉과 과일까지. 하나라도 빼먹거나 재료를 허투루 다루시거나 하는 것 없이 정성을 다하셨다. 누군가 할 수 있냐 물으면 나는 ‘절대’ 못하고 또 누가 해도 말릴 일이다. 물질적 보상이 따르는 업이라도 ‘나’는 못할 일이다.


가끔 보는 요리경연 방송이 있다. 15분 만에 의뢰인의 요리를 완성해야 하는 경쟁에서 한 양식 요리사는 마지막 몇 초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기가 구현하고자 하는 바를 고집스레 표현하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붓고, 일단 넣고, 일단 내놓으라는 주변의 난리법석에도 허브 이파리 하나도 소중하게 다루어 올리고, 소스의 떨어진 모양새도 가다듬는다. 그렇게 한 요리사는 경연에서 지더라도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다. 그 요리는 하나의 예술작품 같다.


엄마가 웃으며 병원 밥 맛없어도 때 되면 밥주니 좋다고 하신 게 참 재밌면서도 착잡했다. 엄마에게 나는 요리라는 것의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면을 한 껏 떠들어댔다. 옆에 있는 아빠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엄마의 밥 짓는 예술에 대한 찬사와 경의를 아낌없이 보냈다. 그랬더니 엄마는 아빠에게 아이 그 삼식이라고 말하며 소소한 복수를 행하셨다. 엄마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트에 들러 장을 보셨다. 나는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사려는데 엄마 머릿속에 얼마간의 계획표가 이미 짜여있다, 동선도 최소화해서 척척 움직이신다. 엄마는 순간 마트를 점령했다.


지금 나는 식구들 아침도 안 차려 줬는데 저녁 걱정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구난방 글을 쏟아내고 있다. 15분 요리경연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시간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재료 붓고 섞고 옮기고 담으라고 외칠 때 플레이팅이나 작은 이파리를 얹는 일 따위는 내게 사치다. 결국 그릇에 다 되지 않은 음식을 붓고 있다. 제대로 한 그릇의 요리도 글도. 참 쉽지 않다. 생각해 보니 엄마는 글도 참 잘 쓰신 것 같다. 짓는다는 것. 이거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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