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할머니의 인생 수업을 읽고
국민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여덟 살 제 눈에는 엄마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지금의 저보다도 어리실 것 같아요. 선생님은 상냥하고 예쁜 분은 아니셨지만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의 규칙과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규범을 가르쳐주셨어요. 조금 거창한가요? 그리고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주셨는데 오르간 치시며 노래하는 모습이 기억납니다. 선생님이 노래를 못해서 음악시간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엄마한테 말했던 기억이 나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특별히 기억되는 한 일화가 있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1학년 1반 우리 대여섯 명은 방과 후 운동장에서 놀다가 다리 건너 친구집에 모여 숙제를 했어요. 민석(가명)이 집이었죠. 민석이는 그 당시 자기 방이 있고 용돈도 꽤나 두둑이 있어서 그 아이 집에 자주 갔던 거 같아요. 그날 숙제는 교과서의 지문을 공책에 한 장 써오는 거였어요. 동시인지 짧은 동화인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초등학교 1학년 국어책의 글이니 사실 몇 줄 되지 않아서 열 칸짜리 노트를 금세 채울 수 있었을 거예요. 지문을 서너 번 써야 한 장이 채워졌을 거예요. 그런데 민석이, 아주 맹랑한 고 녀석이 “야 이거 다 안 써도 돼”이러는 게 아니겠어요. 그 아이 말에 따르면 한 장이란 건, 한쪽 쓰고 한 줄만 더 써도 한 장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 채우지 않아도 두 번째 쪽에 글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거로 한 장이 된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논리랍니까. 방바닥에 둥글게 모여 머리를 맞대 앉은 우리를 내려다보던, 제법 우쭐대며 어른스럽게 말하던 그 녀석의 모습이, 그날의 충격이 생생하네요.
우리 모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민석이를 바라봤어요. 몇몇은 “아니야 그러면 안돼. 한 장은 두쪽 다 써야 하는 거야”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상하죠. 우린 민석이 말을 믿고 싶었어나 봐요. 뛰어놀 다 와서 마침 팔도 아프고 졸리기도 했을 거예요. 방바닥에 쭈그려 앉아 무릎도 팔꿈치도 배기고, 연필 잡은 손도 괜스레 아팠고요. 저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민석이 주장이 너무나 그럴싸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의 너무나도 확고한 말투, 그리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발상에 우린 그 아이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지만, 금세 그 아이의 말에 동조하게 됐어요. 속으로는 찜찜하고 불안했지만, 그 아이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숙제가 뭔지 정확히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마음속에 이상한 불안감을 안고 한통속이 되어 숙제에 요령을 피웠어요. 정말 모두가 한쪽에다가 한 줄만 더 써서 숙제를 해갔던 거예요. 거기 모인 모두가 똑같이 말이에요. 그날 저녁 누구 하나 집에서 숙제를 다시 한 녀석이 없었나 봐요. 마음은 불안해도 숙제하기 싫은 마음을 이기지 못했나 봐요.
다음날 숙제 검사 때 아니나 다를까 우린 모두 똑같은 분량으로 숙제를 제대로 해가지 않은 게 걸려서 혼이 났지요. 누군가 "민석이가 그렇게 하라고 했어요"라고 말했는데, 그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일어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요. 여덟 살짜리들이 그러고 있었다니 너무 우습네요. 게 중에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어요. 분한 탓도 있었고 그냥 혼나는 상황이 무서운 친구도 있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마음속으로 '아 김민석 니 말을 내가 믿었다니...'그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억울해봤자 아니겠어요. 거기에 동조한 내 탓이지 누굴 탓하겠어요.
그런데 선생님께 걸리고 나니 차라리 금세 속이 시원해졌습니다. 사실 전날 밤에도 신경이 쓰였고, 아침에도 그랬어요. 이걸 들키면 세상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이상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작고 연약한 세상이라도 그게 전부인 시절이니까요. 대학교 때는 리포트 낼 시간을 넘겨서도 교수님께 조르기도 해보고, 직장에서는 상사 눈치 봐가며 농땡이도 치고 보고를 누락하고 이변명 저변명 갖다 대기도 선수가 되었는데. 참 투명하고 귀여운 두려움인 거 같아요.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는데, 선생님께 혼이 나고는 그게 사라지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아무래도 알면서는 못된 짓은 못할 팔자인가 봐요. 아 대부분이 그렇겠지요?
선생님은 숙제가 뭔지 알면서도 요령을 다 같이 피운 것에 대해 혼을 내시고, '한 장' 하는 것의 개념을 명확히 다시 반 전체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셨어요. 그리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셨죠. 자기감정에 빠져 무섭게 소리 지르는 분들이 더러 있는데 그런 분은 아니셨어요. 손바닥을 맞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체벌이 흔한 시대였지만, 우린 여덟 살이었고, 선생님은 그렇게 혼내시는 분은 아니셨으니까요. 아마 손바닥 그거 몇 대 맞았더라도 아프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그 후로 초등학교 내내 숙제는 빠지지 않고 제대로 해갔어요. 적어도 초등학교 내내는 모범생이었답니다. 아직도 그날이 기억나는 걸 보면 어린 마음에 대단한 사건이기도 했나 봐요.
<괴테할머니의 인생 수업>을 보니 그날이 생각났고 담임선생님을 생각하니 괴테할머니 전영애 선생님이 또 생각났어요.
저는 살면서 참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내 안에 빈틈을 매우며 살아가는 것 같아요. 전영애 선생님 같은 분의 좋은 책과 말씀들, 그리고 그런 분들과의 좋은 경험 덕분이에요. 때로 그 경험이 아파도. 때로 그들이 멀리 있어도, 그리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어도. 그분들은 저를 붙잡아주세요. 그날의 기억도 그렇고 기억 속 선생님이 그러하세요. "아이야.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보렴"
길을 잘못 들거나 길을 잃고 헤매고 때론 넘어져도 결국에는 방향을 잃지 않고 제가 나아가는 이유인 거 같아요.
그때 담임선생님이 우리의 작당모의를 그냥 넘어가셨다면 어땠을까요? 우주에 작은 티끌뿐인 일이라 별일이야 있었겠냐만은. 그런데 우리 담임선생님이 있는 한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저도 안 들켰다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응큼한 아이가 되고 싶지는 않네요. 그때 혼이 나서 지금 그걸 기억하고, 추억이라 말할 수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괴테할머니. 저는 선생님의 미소를 닮고 싶어요. 늘 최선을 다해서 지난날을 후회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의 미소 같이 부드럽고 평화로운 미소요. 아마도 여백서원의 많은 풀꽃과 나무, 노란 붓꽃과 책들도 선생님을 닮았을 것 같아요. 그 넓은 집 정원을 부지런히 가꾸시고 연구도 열심히 시니 정말 존경스러워요.
저는 최근에 바질 모종 작은 화분을 하나 들여 창가에 두었어요. 그리고 책상에는 4년 된 스투키가 있답니다. 작은 식물들과 소소하게 살아가는 중이에요. 바질과 스투키는 비록 작은 것이지만, 가꾸고 위안을 얻습니다. 식물들을 보며 선생님의 책을 또 읽었어요. 표지만 봐도 즐겁고 그냥 펼쳐 아무 페이지나 보아도 거기 있는 선생님의 이야기는 저를 붙잡아 주시는 거 같아요.
지난날 같이 혼이 난 내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요. 그리고 담임 선생님. 40여 년 전 기억 속 선생님의 얼굴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학년이 올라가고는 선생님을 뵙지 못했어요.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그래도 여덟 살 그날부터 지금까지 쭈욱 저를 예쁜 기억으로 붙잡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어딘가에서 평화로운 미소로 살고 계시길 바라보아요.
저의 모든 선생님들, 친구들, 선생님 댁의 풀과 꽃나무들 그리고 책들, 모두의 안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