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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l 22. 2022

아미르와 핫산이 도둑 맞은 시간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는 읽는 내내 마음이 결리는 소설이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주인공들의 심리를 가로채느라 술술 읽힌 걸작이기도 하다. 아프가니스탄의 실정이나 국민의 처지를 조금이나마 경험한 책으로도 꼽을 수 있겠다.


친구에게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함께 기뻐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지만 나도 모르게 질투심이 고개를 들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다. 동주라는 영화에서도 사촌이자 친구인 송몽규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는 소식을 접한 후 클로즈업된 윤동주의 표정에서 기쁘긴 하지만 뭔가 씁쓸함이 동반된 미묘한 감정을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아미르의 심리

아미르가 핫산을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다. 상하 관계지만 혈육 못지 않으면서 미묘한 질투심이 엿보인다.


아미르의 열등감은 핫산보다 남자다움이 부족한 자신을 아버지가 탐탁잖아 한 데서 비롯된다. 반면 자기방어 능력이 뛰어난 핫산은 늘 바바의 두터운 신임을 차지한다. 그것이 서운해 아미르는 아버지 앞에서 자주 서성대나 끝내 눈길에 맺히지 못한다. 아미르가 마음에서 일어난 질투와 싸우는 동안 아버지는 시종일관 핫산만 바라본다. 아미르가 당연히 받아야 할 아버지의 신임을 하인인 핫산에게 압류 당한 것이다. 열 살밖엔 안 된 아미르의 심적 갈등이 핫산을 향한 질투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건 아버지 바바의 책임이랄 수 있겠다.


결국 아미르와 핫산이 계급을 초월하여 나눈 우정은 어진 연을 주우러  핫산이 아셰프에게 성폭행 당하던 날 산산이 부서진다. 아미르는 핫산이 성폭행 당하는 자리에서 도와주지 못한 죄책감에다 그간 쌓인 질투심까지 더해지자 음모를 꾸며 핫산 부자를 내쫓는다. 그들이 눈에서 멀어지면 비겁함이나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고 아버지까지 독차지할 줄  모양이다. 그러나 아미르의 불편한 마음은 사라질 줄 모른다. 청년이 되고 소랍을 만나면서 아미르의 자책이 폭발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아미르에게 유년은 아픔이고 결핍이다. 전쟁까지 발발해 유년의 결여를 돌볼 여유조차 없이 청년으로 성장한다. 따듯하게 감싸 달래주고 싶은 아이다.


바바의 심리

아버지 바바의 사랑 방식이 어른스럽지 못해 언짢을 따름이다. 드러낸 자식과 드러내지 못한 자식 사이에서 사랑의 기준을 정하지 못한 것 같아 영 마뜩잖다.


핫산에게 언청이 수술을 지원하고, 마다 생일까지 챙기는  보며 기득권솔선수범인 줄 았으나 드러낼 수 없는 부정(父情)회복하려는 자기 만족이었다는 걸 알고 공정함을 부르짖던 그 사람인가? 의심스러웠다.

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아미르에게는 몹시 냉정했다. 강하게 키우기 위한 바바만의 방식이라 생각했으나 자신과 성향이 다른 데서 오는 못마땅함으로 보여 거북했.


지역 사회에 헌신했던 성공한 사업가에 주목했건만 바바는 도덕적 결함을 가리기 위한 가식에 찬 사람이었다. 핫산이 내쫓기는 지경에두 아들이 친형제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주변인이었을 뿐 위로도 화해도 제시하지 못한 아버지였다.


알리에게도 품행을 상실한 다.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적 관점에선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대상이 아닐지 몰라도 알리와의 관계적 토대 위에서 본다면 바바는 알리의 명예를 훼손한 인물이다. 


그나마 바바에게 라힘 칸이라는 친구가 있어 죽은 후에라도 만회의 기회를 얻은  다행이다. 라힘 칸 때문에 아미르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독할 수 었고, 핫산에게 남긴 과거의 오점도 씻을 수 있었다. 참다운 어른 라힘 칸이 있어 아미르는 바바의 유린을 대속하였고, 올곧게 처신할 수 있었다.


핫산의 심리

핫산은 아미르 도련님을 치켜세우며 충직하게 섬긴 하인이다. 어리지만 생각이 깊고, 지혜로운 친구다.


하찮은 부류(시아파 하자라인)인 자신에게 든든한 조력자로 다가온 집주인 바바와 계급을 무시하고 동일함으로 다가온 도련님(수니파 파쉬툰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넉넉한  됨됨이를 가진 소년이다. 자신에게 닥친 역경과 시련, 괴로움을 남 탓으로 돌리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 어린 성자와도 같다.


아마도 핫산은 아셰프에게 성폭행 당하던 자리에 아미르가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아셰프보다 아미르에게 더 서운했을지 모른다. 때문에 한번쯤 아미르의 부당한 행동을 따져 물을 수도 있었을 텐데 바바와 아미르의 은덕이 먼저인 아이라 모든 것을 묻고 아미르 곁을 떠난다. 제도적으로 미미한 처지였기에 용기를 내지 못한 탓도 클 것이다.


죄책감도 서운함도 종국엔 희석되어 묽어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미르와 핫산은 그렇게 멀어져 갔다. 아미르가 드러낸  핫산에 대한 죄책감, 핫산이 묻고 간 아미르에 대한 서운함이 어느 한 지점에서 소멸될 기회를 갖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무엇보다 바바가 자신의 둥지였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떠난 핫산의 삶이 윤곽을 잃은 것 같아 허무하다.


아미르와 소랍의 운명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어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사이 아미르의 이복 동생 핫산과 그의 아내가 탈레반에게 처형당했다는 소식. 이후 그들의 유일한 혈육 소랍이 고아원에 있다는 소식까지 접한 아미르는 소랍을 구하기 위해 무법천지 카불로 무작정 향한다.


어두운 구석에 처박아둔 채 아미르 본인마저 들추기를 꺼렸던 괴로움 속으로 숙명처럼 들어온 소랍.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인지 소랍은 탈레반이 된 아셰프의 손아귀에 있었다. 아셰프는 아미르에게 끝나지 않은 과거의 싸움을 걸었고, 거기서 이겨야 소랍을 구할 수 있었던 아미르는 만신창이가 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곤경에 처한 아미르를 구한 건 아셰프 눈에 새총을 쏜 소랍이다. 소랍에게서 핫산을 본 순간 새총은 기막힌 역전을 연출다. 아셰프와의 질긴 운명에 소름이 돋는 동시에 핫산과의 끝나지 않은 인연에 졸였던 가슴이 느슨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입양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자 자살 시도에 실어증까지 잇따 소랍을 위해 아미르는 정성을 다. 자식처럼 소랍을 보듬는 아미르의 모습에서 라힘 칸이 어른거린다.


탈레반에게 당한 성적 피해와 입양 불가 판정 앞에서 마음 문을 닫은 소랍이 아미르 덕분에 생기를 찾는 모습을 보며 싱그러운 생명감이 가슴 한복판을 훑고 지나갔다.  

소랍이 떨어뜨린 연을 쫓으며

너를 위해서라면 천 번이라도 그렇게 해주마

라는 아미르의 약속을 읽을 때는 핫산과 아미르 사이에서 웃는 소랍이 선명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곳엔 따뜻한 봄날이 일렁였고 소랍의 웃음 소리도 메아리치는 듯했다. 핫산과 라힘 칸이 있어 아미르가 당당히 설 수 있었던 것처럼 아미르 부부가 있어 소랍은 아름다운 세상을 온전히 차지할 것이다.         

 

요즘 아프가니스탄에 또 다시 피바람이 불고 있다. 2001년 9.11 테러를 감행한 탈레반이 20여 년 만에 정권을 재장악했기 때문이다. 아이, 여성, 소수민족은 핍박의 대상이 되어 떨고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세계 언론을 향해 "아프간 난민을 환영해 달라" 호소하고 있다. 아미르가 중장년이 되어 같은 역사를 반복하게 된 아프가니스탄의 악몽같은 현실에 보탤 것이라곤 마음밖에 없다는 게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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