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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l 18. 2022

소음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단상. 십

적당한 의심은 윤활유

소음인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의심이 많으며 신중해서 남의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사람은 눈에 반하거나 눈에 맘에 들어 관계를 지 못하는 편이다. 여러 번 만나고, 겪어보고, 한결같다, 정서가 같다 싶으면 마음 문을 열지만 아니다 싶으면 슬그머니 대열에서 빠지는 행위다. 대신 한 번 맺은 관계는 오래도록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서류상으로 계약할 때도 충분한 설명을 듣고 합당한지 아닌지 여러 번 생각한 후 결정하기 때문에 서둘러 빠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드물다. 일이 좀 늦어지는 경향이 없진 않지만 신중한 선택일수록 실수가 따르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강하다. 

걱정도 많고 사소한 것도 사소한 채로 두지 않는 성향이라 의심을 전제로 한 걱정이 시시때때로 차고 올라 올 때면 자물쇠 채워 좀 더 안전하게 가기 위한 과정이해석한다.




원래 남을 철저히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심이 많은 게 아니라 상처가 많은 경우가 많다. 믿기 싫어서, 의심이 많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을까 두려워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타인과 나 사이에 울타리를 두는 것이다.

색과 체 <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 中



의심은 상대나 상황을 확실히 알지 못할 때, 믿지 못할 때 생기는 마음이다.

알지 못하는 판매자에게 막대한 비용을 먼저 지불한 후 나중에 물건을 받아야 할 때 설마 먹고 튀는 거 아니겠지? 의심이 든다.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다.

지난 번에도 속였는데 이번에도 설마 거짓말은 아니겠지? 한 번 더 믿어보지만 어쩐지 꺼림칙 때가 있다. 특히 사람에게 한 번 속고 나면 별일 아닌 에도 불씨가 지펴지고 복장 속에 숨은 속궁리가 뭔지 캐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일이나 상황, 사람에 따라 종종 의심 먼저 하게 되는 경우는 거짓말이 원인일 때가 흔하다. 한없이 신뢰하다가도 한두 번의 거짓말이 탄로나면 이후 부터는 의심의 눈초리를 가동할 수밖에 없다. 사람 심리가 얄팍해서 그렇다 할 수도 있으나 상대가 먼저 걸어온 시비라고 생각되어 깊은 사과가 동반되어도 느슨해지기가 쉽지 않다. 끊어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고달 관계가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무너졌으니 사소한 일도 혹시  속임수 아닐까? 괜히 헛다리 짚는 건 아니겠지? 복잡한 생각에 정상적인 관계가 작동하기 힘들다. 이미 나에게 상처를 준 꼴이나 마찬가지라 상처 안에 각인된 의심이 이전 상태로 회복하기를 거부한다. 


의심이라는 말에는 부정적 요소를 먼저 떠올린다.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의심부터 하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까지 피곤하만들므로 지속적인 관계가 힘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의심 투성이인 사람은 없다. 신뢰하던 상대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거래하다 발생한 사기로 궁지에 몰리는 특정 경험으로 상처받은 사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믿지 못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들은 상대나 상황을 마음놓고 믿었던 순수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상처를 들여다 볼 줄 알아야지 터무니없이 의심한다고 무조건 비난 먼저 내세우는 건 두 번 상처주는 일이다.


개중에는 상처의 정도가 심해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사회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도 있다. 이들은 또 다시 상처받을까 두려워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숨어 들어간 것이다. 이들이 다시 사회로 나오려면 자신이 쓸데없이 의심 많은 성격이 아니라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이란 걸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심이 무작정 해가 되는 것이 아니란 점도 알아야 한다. 적당한 의심은 일을 그르치지 않게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의심한 사항들을 미리 점검하면 더 큰 손실을 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의심한 내용들을 살피는 중에 문제점이 아니라는 게 확인되면 상대와 무한 신뢰가 형성되기도 한다. 논리도 없이 의심하는 것은 관계 형성에 방해 요소가 되지만 적당한 의심은 윤활유가 될 수 있다. 의심이 유쾌한 건 아니지만 지나친 확신보다 나을 도 있다는 이다.


지나친이란 말이 등장할 때는 의심이든 확신이든 부작용을  갈 수밖에 없다. 의심이 지나친 경우엔 적대심을 낳고 확신이 지나칠 때는 자만심을 부른다. 적대심이나 자만심은 타인의 의견을 수용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성장을 도모하기 어렵 자기 위에 아무도 없다는 독선에 빠질 우려가 높다. 모자라면 채우듯이 지나치면 덜어낼 줄 알아야 인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나올 수 있다. 의심도 확신도 지나치지 않을 때 마찰을 덜고 두터운 신뢰를 쌓을 수 있다. 



확신을 가지고 일을 시작한다면
의심을 하면서 끝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의심을 품고 시작한다면
확신을 갖고 그 일을 끝낼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영국 철학자,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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