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에서 가장 깔끔한 해변을 만날 수 있는 안탈리아를 지나 아주 작은 시골 마을 쉬린제에 도착했다. '튀르키예 속 그리스'라는 '쉬린제 마을'은 15세기 무렵 에페소스에 거주하던 그리스인들이 이주해 살면서 형성된 그리스인 마을이다. 조용하고 아기자기한 시골 마을이라기에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기대가 컸는데 마을 속으로 들어가진 못했다.
튀르키예 안에서 그리스풍 시골을 만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건만 패키지의 제한적 허용 때문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붉은 지붕과 흰 벽의 집들이 산비탈을 따라 차례로 늘어선 모습이 내가 본 쉬린제의 전부였다. 마을 안은 얼마나 그리스다웠을까?
멀리서 바라보며 궁금증과 아쉬움을 키워갈 때 와인 시음장에서 불렀다. 얽힌 마음으로 시음장엘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동굴은 오래된 느낌이었다. 와인은 조금 마실 줄 알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라서 큰 관심은 없었다. 내 취향의 와인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와인들을 맛볼 수 있다는 말에도 시큰둥했다. 나와 찰떡 궁합 와인은 칠레산으로 '아모르 까베르네 소비뇽'이다. 스위트 레드 와인으로 대형마트에서 만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지만지금은 단종되어 맛볼 수 없기에 몹시도 유감스럽다. 술과 인연이 깊지 않은 사람에게 가끔 달달한 위안을 내어주던와인이었는데 아쉽다. 그런 나에게 멜론맛 와인을 맛본 남편이 취향저격이라며 마셔보란다. 받아 들고는 쥐똥만큼 입술을적신 후 혀로 핥아 봤다.
'어쭈! 제법일세. 오호홍!'
멜론맛에 이어 석류맛, 청포도맛, 산딸기맛의 와인을 약뚜껑만 한 컵에 주는 대로 홀짝여봤다. 그중 나를 알현한 건 석류맛 와인. 달달함도 향도 바디감도 '넌 내 거'였다. 데린쿠유(최대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85m 깊이 지하도시)로 들어가기 전 석류즙을 직접짜 팔던 상인의 발음이 떠올라 와인을 맛보는 동안 피실 피실 웃음이 샜다.
"깽녕끼 쩌아여. 썽뉴 쩌아여. 머꺼바라 "
갱년기에 석류가 좋으니 사 먹으라는 말이다. 어눌하지만 곧잘 들리던 튀르키예식 우리말과 호텔 식당에서 식사 내내 연주되던 노사연의 만남 등 튀르키예는 한국을 진실로 형제의 나라라 여기는 것 같아 왠지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와인을 사들고 밖으로 나오니 야외 카페에서 샌드커피를 끓이는 중이었다. 가운데 뜨거운 모래가 담긴 둥그런 화덕이 있고 모래 화덕을 따라 역시 둥그런 모양의 선반 위엔 황동 체즈베(cezve:뚜껑 없는 커피 추출 도구) 여러 개와 뚜껑 달린 핀잔(fincan:커피잔), 은제 이브릭(ibrik:뚜껑 있는 주전자)이 놓여 있다. 선반을 따라 다시 돌선반이 우물처럼 싸고 군데군데 나자르 본주(악마의 눈이라 불리는 부적. 튀르키예인들은 악마의 눈이 재앙을 물리친다고 믿음)가 박혀 있다. 나자르 본주는 대표 기념품이라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고 크기도 다양하다.
샌드커피 모래 화덕
모래 위엔 이미 누군가 주문한 커피가 바글바글 끓고 있었다. 튀르키예식 커피추출법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조법이다. 그 문화와 전통은 16세기 오스만 제국까지 거슬러가야 한다. 튀르키예식 커피의 추출 방식은 머신 커피와는 다르다. 황동 체즈베에 원두 가루(밀가루처럼 곱다)와 물을 넣고 뜨거운 모래나 불 위에서 끓이는 것이다. 간단하게 보이지만 들이는 공은 작품 수준이다. 거품이 올라오면 체즈베를 모래에서 꺼내 거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모래에 넣기를 3~4번 반복한 다. 괜히 유네스코가 인류무형문화재로 지정했겠는가.
원두 가루는 필터를 통과시켜 여과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려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천히 마셔야 한다. 라테 취향이지만 도전을 외치며 한 모금 마셔봤다. 기다렸다 마신 건데도 진한 향 끝에 이물감이 따라왔고 설탕을 넣었음에도 탕약에 가까워 튀르키예식 커피는 '조직의 쓴맛' 같았다. 튀르키예인들이 로쿰(젤리)과 함께 커피를 마시는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남편은 군말 없이 잘 마셨다. 씁쓸함 뒤의 고소함이 오묘한 맛이란다. 뭣이든 까다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저 사나이의 혀가 몹시 부럽다.
튀르키예 커피는 기다림의 연속인 듯하다. 끓일 때도, 마시기 전에도 기다림이 필요하지만 마시고 난 뒤 커피점을 볼 때도 커피잔을 접시에 엎은 후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잔에 남은 형상으로 그 사람의 점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점을 믿지는 마라. 그러나 점도 안 보고 살지는 마라.'
는 튀르키예 속담이 있다. 튀르키예인들은 커피를 마신 후 서로 점을 봐주면서 덕담과 사담을 나누고, 친분을 쌓아가는 과정을 즐겼다고 한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제법 긴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니 튀르키예 문화에서 커피의 사회적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튀르키예식 커피는 비록 미각은 훔치지 못했지만 내 맘에 튀르키예를 새기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이슬람 시인 '잘랄 앗 딘 루미'는 <여행자의 집>이라는 시에서 우울함, 슬픔, 어두운 생각들이 찾아와도 웃으며 환대하랬다. 새로운 기쁨을 주기 위한 미래의 안내자일 수 있다고 반갑게 맞이하랬다. 쉬린제 마을을 돌아보지 못한 마음은 애석하지만 각종 와인과 샌드커피를 경험할 수 있었던 건 또 다른 기쁨이었다. 아쉬움과 불평을 받아 들고 '언젠가는'이라는 약속을 내려놓은 마을이 생겼다는 건 근사한 기쁨이 예비되었다는 뜻이어서 홀가분하게 쉬린제를 떠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