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대학에 입학한 후 정해진 귀가 시간을 지키지 않아 게릴라 같은 언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불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언쟁 끝에 껄끄러워진 모녀 관계는 철천지 원수가 될 것만 같았다. 딸은 예외를 인정하라 시위했고 난 이미 정한 약속이 먼저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서로 동의 하에 정한 약속인데 예외를 인정하라며 수시로 어기는 딸의 행동을 참을 수 없었다.
학교가 멀어 정해진 귀가 시간에 도착하려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혹여 어울리더라도 절정에 달했을 때 집에 간다고 일어나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냐며 되레 한숨지었다. 한창 무르익은 분위기를 깨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그 시공을 거절하고 싶지 않단다. 중간에 일어서 집에 오고 나면 다음 날 대화의 맥을 짚을 수도 없단다. 수업, 동아리, 학생회, 친구까지 시간을 쪼개도 모자란데 엄마 말대로 하려면 본인은 딱 수업만 듣고 집으로 출발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했다.
딸이 어떤 입장을 피력해도 나에겐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딸의 사정은 이치나 논리, 기준에 맞는 항변이었지만지키지 않은 그간의 약속 때문에 변명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딸과 나 사이를 수없이 그어댄 굵은 칼금이대화다운 대화를 원천징수해간 터라 남은 건 상한 감정뿐이었다.
-스무 살 호기심 당할 자 없다
-저것도 한 때라 지칠 날 올 거다
-스스로 책임질 나이 됐다
-신경쓴다고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사춘기가 늦게 터진 것 같다
남편은 이런 저런 이유를 늘어 놓으며 좀 더 지켜보라 했지만 성격상 무신경할 수 없었다.무서운 세상, 밤늦은 시간에 밖에 놓인 딸은 내 신경의 마디마다바늘을 꽂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깠나, 참 태평도 하다.'
속으로 야죽거렸다. 남편은 딸의 늦은 귀가에도 관대했다. 이해하는 편이었다. 갓 스무 살 우리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면 딸도 똑같은 마음이지 않겠냐고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의 늦은 귀가 때문에 신경쓰여 잠 못 든다고 푸념이 늘어지면 남편도한 마디 거들긴했으나단호하진 않았다.기분 상하지 않게 조근조근 타이르는 정도에서 그쳤다. 규칙은 셋이 앉아 같이 정해놓고 표독스러운 닦달은 온전히 내몫이었다.
폐가의 벽지처럼 너덜해진 마음을 겨우 붙잡고 있던 그날도늦게 귀가한 딸에게 이유를 따져 물으니 대답 대신귓전을 때리는 문소리만 남겼다. 사자 발에 걷어 차인 것처럼 심장이 턱밑까지 올라와 목구멍을 틀어 막는 것 같았다.
걱정하며 기다린 에미에 대한 배려라곤 깜부기불만큼도 없는 지지배~
생각과 동시에 나의 분노 게이지는 고속으로 치닫고 칼날을 머금은 목구멍에선 날카로운 고성이 터져나왔다. 실랑이가 벌어진 날엔 두통과 불면에 시달리느라 약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다. 진부하고 식상한 갈등이 차곡차곡 마일리지를 쌓는 만큼 서로 굽히지 않는 대결 구도에도위기감이 쌓여 갔다. 딸과 마주하는 것이 불편한 내 속에선 소리도 내지 못하는 통곡이 나를 누추하게 만들었다.
뭐하는 짓이지?
피로감이 밀려왔다. 간섭인 건지 애정인 건지, 반항인 건지 갈등인 건지 점점 모호해졌다. '모녀의 세계가 부부의 세계보다 무섭다'더니 우릴 두고 하는 말 같았다.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모녀 간이거북이등짝처럼 쩍쩍 갈라지지 싶었다.
차츰 둔해지기로, 내장 하드 깊숙한 곳의 불안으로부터 무뎌지기로 마음을 쓰다듬었다. 언제까지라도 보호해야 하는 게 내 의무긴 하지만 스무 살에 걸맞은 보호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좀 늦어도 무사히 귀가할 거라 믿으며 걱정하는 마음을 느슨하게 풀었다. 무언의 뒤통수가 뇌꼴스러워 견딜 수 없었지만 딸과 내 마음이 닫히고 굳기 전에 흘려보내야 할 것은 놔줘야 썩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 속에서 뾰족한 말투를 거둔 딸이 보였고 유난히 웃음이 헤픈 딸도 보였다. 포경선 작살처럼 뭉툭해진 내가 있었고 말랐던 웃음을 되찾은 나도 있었다. 딸에게 허락한 '예외'는 오히려 시간을 엄수하려는 노력이 되어 돌아왔고 덕분에 애면글면, 노심초사로 뒤섞인 내 맘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내가 마음을 바꾸니 딸도 세웠던 각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던것이다.
마음 한 번 바꾸기가 뭐 그리 어려웠던 건지 일그러진지난 시간이 몹시 애달프다. 다정다감으로 채워도 모자랄판에 퉁명과 서운함으로 일관되었던날들이못내안타깝다.
정해진 것, 계획한 것이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도 있음을인정하지 않은 그 때 그 일이 나뿐만 아니라 식구들까지 힘들게 한 씁쓸한 대목이다.
치안 상태가 안전하다 해도 사각지대는 있기마련이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짐작에 조금만 늦어도 닦달을 해댔으니 딸도 반감이 생길 수밖에없었던 것이다.
걱정투성이 엄마 때문에 딸은 20대 초반의 삶을 수학답안지처럼살라고 강요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와 결이 다른 딸에게 내 고집을 씌우려 했던 그때가 미안하고, 곰살맞게 웃어주는 지금은 고마운 맘 뿐이다.
불안과 걱정은 고물같은 감정이라 버리고 나면 기억에서 금세 증발해버린다. 풀어 놓으면 오간데없이 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굳은살처럼 박아놓고흩뜨리기가 쉽지 않다. 마음을 바꾸고 나면 별것도 아닌 걸 붙들고 몸부림쳤던 지난 시간의 입체감은 사라지고 소실점만 남아 헛헛할 때가 있다.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닌데 마음 바꾸기가 왜 그리 힘든 건지, 설렁설렁 살아도 별문제 없는데 왜 그리 짜맞춘 듯살아내려는 건지 스스로도답답할 뿐이다.
돌아보면 조바심으로 전전긍긍했던 일들 중에 큰 일로 이어진 건 거의 없다. 머리 싸맨 채 걱정한다고 걱정한 만큼 그 일이 잘 해결되지도 않았다. 지나고 난 지금이야 왜 그랬을까 싶지만 성에 차지 않는 또 다른 일이 생기면 과연 적당한 간격을 둘 수 있을까? 예민한 촉수를누그러뜨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