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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n 28. 2022

소음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단상. 구

소음인은 예민하고 쉽게 우울해지며 섭섭한 말에 곧잘 상처받는다


생각보다 예민하시네요.

이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다. 생각보다라는 말 때문에 더 헷갈린다. 예민한 줄 알았지만 예상보다 더 예민하다는 뜻이니 부정의 의미가 깊은 건지, 그동안은 예민하게 생각했다는  더 큰 의미를 둬 가볍게 넘겨야 하는 건지 혼자 생각에 젖는다.


좀 예민한 부분이 없진 않죠?

웃으며 넘기긴 하지만 곱씹게 된다. 스스로도 청결, 수면, 미각, 청각, 후각에 예민하다는 거 알지만 상대로부터 듣게 될  들키지 말아야 할 비밀을 들킨 것 같은 기분이다.  예민하다는 말맛이 고양이 발톱처럼 날카롭다, 부풀어 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의 방광처럼 감정 팽창이 잦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어린 아이처럼 눈물이 똑 떨어질 것처럼 섬약하다는 다소 염세적인 시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 방학마다 외할머니 댁에 갈 때면 엄마가  단장을 해주셨다. 원피스, 신발, 양말까지 싹 다 장만하여 입혀 보냈다. 이종 사촌들이랑 함께 간 터라 현관이 신발들로 복잡했다. 새 신발이어서 더 그랬는지 모르지만 들고 날 때마다 신발에 흙이 묻을까 봐 신발장에 넣었다 뺏다를 수십 번도 더 했더니 외숙모가 엄마 닮아 여간내기가 아니라한 마디 하셨다. 못들은 척했지만 어린 맘에도 그 말의 뉘앙스가  못마땅함인 줄 알고 상처받았더랬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깔끔도 병인 양하여 가슴 시려 했노라


외숙모 댁은 어린 생각에도 어수선했으나 외할머니 방만은 정리 정돈이 무결해서 지내는 내내 외할머니 방에서만 놀고 자곤 했다. 엄마의 살림도 너저분했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외할머니, 엄마, 나 모두 같은 부류임에 틀림없다. 세대를 거르지 못한 걸 보면 예민한 기질이 유전이라더니 맞는 모양이다.


예민한 만큼 남에게 피해가 되거나 불편을 끼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내가 불편하면 남도 불편할 거란 생각이 기본적이라 내 사정이나 기분보다는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조심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늘 남 먼저 챙기느라 자기 필요를 철회하면 스트레스가 된다. 때와 상황에 따라 포기와 인정, 적정 조율의 분배가 원활해야 혼란과 불편을 덜 겪으므로 가만가만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도 챙기려 한다. 살면서 얻은 나름의 방식이다.


극도의 갈등을 처리하는 방식도 부딪히기보다는 피하는 쪽을 택한다. 갈등 상황이 꼬리를 물면 신경이 얽히고 설켜 그 한 가지에만 몰입도가 높아 다른 일상은 놓치기 때문이다.

천성적으로 싸움을 싫어해 갈등 자체가 일어나는 걸 원치 않는다. 웬만하면 참고 따지지 않편이나  갈등없는 삶이 어디 가당키나 한가?

갈등이 일어 반목하는 과정에 처하면 감정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몸으로반응이 나타난다. 자극에 날카롭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두통과 불면, 소화불량을 부르고 몰라볼 만큼 체중도 빠진다. 

그런 까닭에 손해본 경험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곤두박이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해 회피를 선택한다. 


닥쳐서 처리하는 일은 능률이 낮아 정해진 날보다 미리 해놓아야 맘도 편하고 온전하게 끝낼 수 있다. 임박해서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따르고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 순서를 정하여 처리해 나간다. 부정확한 일처리로 남에게 싫은 소리 듣는 것도 용납할 수 없어 검토하고 점검하기를 반복한. 때문에 계획한 일에 다른 일이 불쑥 끼어들면 혼란이 온다. 끼어든 한 가지가 잔잔한 수면에 물의를 일으킨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눈치는 빨라서 상대의 필요 사항이나 불안, 불만 등의 감정을 자주 감지하는 편이다. 알아차린 만큼 상대의 하소연에 귀기울이며 공감하고 응원하는 데도 성의를 다한다.

우리 뇌의 신경세포 중 거울뉴런이란 게 작동하면 공감 능력이 발동한단다. 예민한 사람은 다른 이보다 거울뉴런 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한다. 결국 예민한 사람은 노력하지 않아도 상대의 감정이 눈에 띈다는 얘다.

하지만 나의 힘듦은 깊을수록 더 내보이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이 된 뒤에야 그런 일도 있었다며 털어 놓는다. 어차피 극복해야 할 사람은 나이기에 혼자 안고 갈 때가 많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스스로가 힘들고 피곤하다. 사소한 자극에도 크게 반응할 때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은 자극이 주어지면 가늘게 쪼갠 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처리할 자극의 양이 늘어날 뿐 아니라 세세한 처리 방식에서 오는 감정의 진폭도 클 수밖에 없단다.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다를 뿐지 잘못은 아데도 '쓸데없이 예민하게 굴기는'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예민한 기질에 아무렇지 않게 편견을 드러내는 일이 흔하다. 예민한 사람 가까운 이에게 불편이나 폐를 끼친다는 으로 들려 거북할 때가 있다.


예민하다는 하나의 성향일 뿐이다. <내성적이다, 외향적이다, 모험적이다, 느긋하다, 성급하다, 다혈질이다, 직관적이다,  사교적이다, 낙천적이다>와 같이 성향의 일부인 것이다. 상대로부터  "예민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고심하지 않아도 되는 예사로운 시선이 예민하다는 성향에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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