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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May 27. 2022

소음인으로 살아온 시간의 단상. 칠

낚시 덕후 vs 비린내 혐오

소음인은 비린내를 싫어한다.

뭔가에 빠져 산다는 건 행복한 삶을 가다는 증거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며 머리로는 충분히 납득하지만 가슴까지 내려오는 동안 곡해가 되어 안착할 때가 있다. 남편요일이 그렇다. 금요일 밤이면 스마일이 기죽을 만큼 입꼬리 간수를 못한다. 그럴 수 있드잡이를 하는 게 인지상정이나 30년 같이 산 의리 때문에 인고의 세월을 보내는 중이다. 간혹 미간에 힘을 실어 한숨 섞인 불만을 뱉어보지만 연막을 치는 남편을 보면 마음에 결절이 생겨 여간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남편의 행복지수 상승 기류나에게 부러진 손톱, 거스러미 같은 것이다. 비린내가 억수로 싫은 나에게 남편의 맘을 사로잡은 낚시는 반기지 못할 잡기다.


당연히 날음식을 즐기지 않는 나에게,  잡아 친 회나 숙성시킨 회나 거기서 거기 같은 나에게 다른 식감을 나열하차이를 알아주길 바랄 때는 갑갑하다. 몰라서 모른다고 솔직히 답한 내가 들어앉은 남편의 눈빛에선 실망이 뚝뚝 떨어진다. 처음 느끼는 신선한 맛이라 어종마다 연신 감탄을 쏟아내지만 공감할 수가 없어 답답하다.


어획량이 하늘을 찌르는 날엔 흥분해서 카톡을 보내오나 열렬히 반기지 못한다. 펄떡이는 물고기를 집으로 들이는 순간부터 내겐 혼절시간이기 때문이.


 찬 하루 끝, 고요한 기운이 눈꺼풀에 내려 앉을 즈음에 도착한 남편은 낚은 고기 손질로 또 다른 하루를 다. 싱크대를 차지한 후 대가리부터 도려내고 지느러미, 비늘, 내장 순서로 다듬어 나간다. 후각을 어지럽히는 비릿한 냄새가 온 집안을 오염시킨다. 벅벅 긁어댄 비늘은 간혹 주방 벽에 붙어 밉상을 다. 나 몰라라 방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여기저기 비린내를 묻혀 놓을까  도끼눈을 뜨고 감시한다. 저장하기 위한 포장 과정도 의심스러워 손질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지퍼백에 소분하여 냉동실에 넣고 난 후에야 안심이 된다. 주방 바닥에 튄 잔여물들이 눈에 띄고 개수대와 싱크대 상판에 밴 비린내가 콧구멍을 후벼판다.   더 닦고 정리해야 성에 찬 마무리가 된다.


집에는 한두 마리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팔아오라 했더니 낚시한 물고기는 상거래를 하는 게 아니란다. 과연 그럴까? 어를 잡아온 경우는 삶아서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일이 더 다. 그나마  미각이 뵙 편한 어종이라 귀찮아도 참아낸다.

"이왕이면 삶아서 가져오는 건 어떨까?"

했더니 단체 버스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단다. 내 건의 사항은 남편의 '진실 아닌 진실의 말들' 사이에서 무색무취가 되곤 한다.


어느 날엔 가자미 낚시를 간단다. 어릴 적 포항 사는 엄마의 6촌 오빠 집에서 싱싱한 해산물을 종종 보내오곤 했었다. 다른 건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쫀득하니 맛났던 반건조 가자미 조림이 떠올라 무심코 얘기한 게 화근이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예약을 했던 모양이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가자미가 맛있었다고 하니 핑계김에 후다닥 일정을 잡은 것이다.  주둥이가 화근이었다.


카톡이 울린다. 남편이 보낸 사진이다. 제법 큰 아이스박스 가득 시커먼 가자미가 득시글거린다. 만족한 어획량을 한껏 자랑려는 마음이 보인다.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어깨춤을 추는 '오! 나의 여사님' 이모티콘과 함께

"여허! 당신 낚시 타짜네. 최고!~"

 답을 달아주어깨가 귀에 걸리겠지?

다 놔주고 큰 놈  마리만 가져오라는 차가운 반응달아 보낼 수밖에 없는 내 처지에 비린내를 꺼린다는 피치 못할 사정을 얹어 본다.


오면서 근처 사는 후배들에게도 나눠주고 친구들에게도 퍼주었다는데 제법 큰 아이스박스 흰 바닥이 안 보인다. 가자미가 납작 만두처럼 누워 있는 아이스박스가 온통 시커멓다. 손바닥만한 크기들이 주를 이루고 이따금 큰 놈이 실수로 걸려들어 어이없다는 듯 가자미눈을 뜨고 있다.


다른 어종에 비해 비린내가 심한 듯하다.  마리씩 다듬기 시작하는데 와, 분석할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삭힌 홍어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지경이다. 시럽처럼 몸에서 흘러내리는 끈적한 물질은 또 어떻고. 창졸간의 일이라 어찌해야 할지 초난감이었다. 생각 같아선 밖으로 내던지고 싶었다. 집안 공기 비린내가 스며드 걸 속수무책 지켜보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정작 본인은 남다른 냄새가 아니라는 방에서 나온 딸도 코를 싸쥐며 느닷없이 향수를 뿌려댔다. 세상에, 비린내와 향수의 혼합이 내쏘는 예리한 파편들이 콧구멍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후각을 조각다. 독한 술을 마신 양 뇌신경이 비틀거렸다. 이마 왼편으 굵은 핏대가 깃대처럼 발딱 일어섰다. 두통의 조짐이다. 마스크를 착용해도 소용없다. 식구들은 난리 법석인데 남편은 꿋꿋하게 가자미를 다듬는다.


우여곡절 끝에 단장을 마친 가자미들을 부랴부랴 냉동실에 가두고 겨울이 대수랴, 창문을 몽땅 열어 생물학적 희귀 가스를 훠이훠이 내쫓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서풋서풋 다가오는 불면이 신경을 죄었다. 예상치 못한 가자미의 반란은 파격적이라 어류계의 이단으로 단죄되어 마땅했다. 조리 전후가 영 딴판이라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다.

가자미는 비린내의 바이블이었다. 


가자미 나눔을 당한 남편의 후배들과 친구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떠올라 미안한 마음이다. 그 중엔 나보다 해산물을 더 거부하는 부인네도 있는데 송구할 따름이다. 다음엔 손질을 맡겨야겠다고 나중에서야 남편도 가자미의 돌발 상황을 인정했다. , 본인도 비린내에 질렸다는 뜻인데 딸이 합세해서 날을 세우지 않았더라면 아마 다음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지 모를 일이다.  




3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남편의 금요일에 거센 반기를 들 않는다. 초반에는 씨우적씨우적 탐탁지 않은 맘을 늘어놓기도 했지만 안면 근육에 드러난 들뜬 기색 보며 그 맘이 잦아들었다.

"이것도 얼마 못해."

하던 말도 서글프게 들렸다. 기약없이 나이를 묶어 둘 순 없는 노릇이니까. 


내 안에 강력한 저항이 일어도 정갈한 품격을 유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어떤 놀이에 빠지든  일명 '장비빨'을 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취미는 장비빨'이라는 은유가 정설이 된 지 오래지만 '갓성비 혜자템'을 고수하는 그 시점이 치켜뜬 대항 요건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다만, 흑임자 멥쌀 가루가 섞인 것처럼 희끗한 머리가 되어서도 행복의 갈래를 좁히지 못한 채 부부가 들판 양 끝에 서 있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불편한 자세로 밤새 버스를 타고  항구에 도착하면 모두 잠든 새벽녘이다. 어둑새벽에 항구에서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면 너울거리는 배 위에서 살아보겠다고 애쓰는 물고기와 사투를 벌여야 는 시간이 시작된다. 한 마리도 낚지 못하는 날엔 씨근덕거리긴 해도 다음이 기대되는 모양이다. 더 큰 것을 잡거라는 장담을 잊지 않는다. 정말이지 홀리지 않고서 소화할 수 고된 일정이다. 여름  뙤약볕, 겨울 바람, 불편한 버스 , 도착 후 손질, 비린내를 싫어하는 여자의 미지근한 반응 등 뭐 하나 신통한 게 없다. 나라면 절대 즐기지 못할 취미다. 불편을 불편이라 여기지 않고 그 안에서 눈동자가 탱고를 추는 건 행복하다는 신호다. 그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내가 참는다.'


시간흘러'다른 건' 극복할 수 없구나를 연신 알아가는 게 삶이겠지?

금요일, 오늘도 남편뇌하수체에서 엔도르핀이 포실포실 피어오르는 게 훤히 보인. 덩달아 비린내도 억센 짐승의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온다.


화나도 참아야 해

슬퍼도 참아야 해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잖아~

오늘도 내가 참는다~♪ ♫

<주유소 습격 사건 OST-오늘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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