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뇌리에 또렷한 날인을 찍는 권고 사항들이 늘어간다. 처음엔 부추기는 정도이나 시간이 갈수록 '반드시'를 요구하는 게 대부분이다. 따지고 보면 중요한 일도 아닌데 수십 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문서화된 날인을 찢어 '해지해야지' 하는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들이 눈에 띄지만 못본 척 고개를 돌리기 일쑤다.
마트 계산대 위 물건 놓는 자리에 세균이 득시글거린다는 뉴스를 본 후로 장 본 물건 정리가 피곤해졌다. 냉장고에 들어갈 물건은 반드시 물로 헹궈야 마음이 놓이기 때문이다. 반찬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밖에서 묻어온 세균에 오염될 것 같아 꺼림칙했다. 음료수 병도 맥주캔도 씻은 다음 물기 뺀 후라야 냉장고에 들여보냈다. 팩우유는 씻은 후 주방 휴지로 물기를 닦아야 했다. 음료수처럼 물기 빠지도록 기다리다간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동 식품은대체로지퍼백에 소분하여 보관하는 편이나 이미지퍼백으로 포장된 만두의 경우엔 비닐 포장째 씻어 냉동실로보낸다. 버섯이나 호박같은 야채류는 일회용비닐에 넣어 묶음을당하거나 플라스틱 통에 넣은 후에야 냉장고 입장이 가능하다.때문에 장보고 정리가 끝나면 진이 빠진다.
애들이 수시로 사나르는 물건들도 냉장고로 직행하면 내 눈꼬리가 사납게 올라간다. 굳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식구들은 내 눈의 경계가 게으른 틈을 타 종종그냥 넣는 일이 발생한다. 다른 물건 뒤에 숨어 있어 미처 발견하지 못하다가 눈에 띈 시점엔 이미이삼일 지난 적도 있다. 그럼 짜증이 훅 올라온다.생각대로라면 이미 세균은 퍼질대로 퍼진 상태일 텐데 그걸 꺼내 씻고 놓였던 자리를 닦아내야 성에 찬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싶은데도 그 버릇을 버리지못한다. 그냥 넣는다한들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 싶다가도 그 굴레에서 헤어나질 못한다.
장을 본 물건이나 그 외 택배 온 것 등을 식탁 위에 올리는 것도못마땅하다. 바닥에도 닿았을 테고 아무렇게나 뒹굴었을 물건이 수저를 놓는 식탁 위에 버젓이 올라가는 것이 영 떨떠름하다. 택배의 경우엔 먼지가 뽀얗게 묻어 도착할 때도 흔한데 아무렇지 않게 식탁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 식구들이 물건을 사들고 와 식탁 위에 올려 놓으려 하면 기겁을 하며 소리친다.
식구들은 어지간히 좀 하라고 맞받아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지 않으면 식탁을 한 번 더 닦아야 하니까 일이 늘기 전에 차단하려는 것이다.
결혼 후, 남편이 이해하지 못하고 묵묵히 따라오는 게 한 가지 있다. 소위 '생활 곤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벽에 못박는 걸 질색한다는 점이다. 못을 박아 시계도 걸고 액자도 걸어야 튼튼하게 걸린다고 한사코 못박기를 주장하지만 난 한결같이 NO를 외친다.
시계 정도는 허용한다. 대신 못을 박기 전에 정확한 위치를 잡고 딱 한 번의 구멍만 뚫어야 한다.못박는 일도 사람의 일이라 자로 재고 위치를 잡아도 박는 이의 힘조절에 따라,못의 각도가 달라진다. 원했던 위치에 걸려던 게 예상 위치를 벗어나거나 삐딱하게 달릴 때가 있다. 그걸 인정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벽에 뭔가를 걸어 너저분해지는것도 싫다.때문에 그림도 액자도 웬만하면 걸지 않는다. 요즘엔 천장이나 벽면에 고정하는 와이어 액자걸이가 나와 있어 흉하게 못질을 하지 않아도 된다.자국도 남지 않아 시계나 액자를 걸기엔 제격이다. 그래도 제 위치는 정확히 표시한 후 박는것을 선호하며 꼭 필요한 것만 걸어야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식구들의 습관도 있다. 식탁 의자나 책상 의자에 옷을 거는 것이다. 의자를 옷걸이 삼는 것이 당최 못마땅하다. 말해도 고쳐지지 않으니 아쉬운 사람이 치울 수밖에 없다. 치우면서 나도 모르게 역정을 낼 때가 있다. 어차피 한 번 더 입을 겉옷이니 편하게 걸어놔도 된다는 식구들의 입장과 이왕이면 옷걸이에 걸었다가 꺼내 입는 게 더 깔끔하지 않냐는 내 생각이 다른 데서 오는불편함이다. 의자 등받이에 걸린 옷 때문에 잘 정리된 집안이 흩뜨러져 보이는 건 내 눈에만 그런가보다.
그렇다고 매사에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겠다고 돋보기를 들이대며 반들반들청소하는 건 아니다. 신경을 더 건드리는 일이 몇 가지 있을 뿐이다.
어차피 내 마음이 정한 기준일 뿐이므로 식구들에겐 전혀 문젯거리가 아닌데도 지칠 줄 모르고 간섭한다. 적당히 좀 하라는 말이 나올 땐 여러 번 참았다는 뜻이다.
'미안한데 어찌하리? 나는 그게 너무 꼴보기싫은 걸.'
'사소한'이 아니라 '대단한'에 꽂혔다면 아마 존경받을 만한 공적이 나왔을지도 모를 끈기로 지키는 알량한 규칙들. 스스로 정한 규칙에,
식구들의 불이행으로 흐트러지는 내일상에, 이젠 무뎌질 만도 한데 도무지 느긋해지지 않는다. 바꾼다 한들세상이 뒤집어질 일도 아닌데대단한 일탈로 느끼는 것은 아닐는지.
쉽지는 않겠으나 변화의 여지를 열어 둔 채 주어진 것들을 새롭게 배치해보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