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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Oct 04. 2023

아물었다 덧나기도

게슈탈트 미술치료

'지금-여기'

에서 내담자가 이미 알고 있는 감각(욕구, 감정)을

'알아차림'

으로써 주변 환경과 접촉하여 해소시킨  경으로 물러나도록 는 것이 '게슈탈트 미술치료'의 핵심이다.




게슈탈트 '전체, 형태, 모습' 등의 뜻을 가진 독일어로 '개인이 지각하게 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말한다. 여행 가고 싶은 것, 특정인과 친하고 싶은 것 이 인간의 게슈탈트다. 치료자와 내담자가 대화를 나누며 내담자의 '지금-여기(현재)'에서 일어나고 있는 '감각, 감정, 행동, 인식' 대한 '알아차림'이 게슈탈트 미술치료에선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려야 해소나 해결이 동반돼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상을 지각할 때 관심 부분은 중심에, 관심 밖의 나머지는 배경으로 두려 한다. 단체 사진에서 눈감고 얼굴 찡그린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내가 화사하게 나왔다면 잘 나온 사진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때 관심의 초점을 전경, 관심 밖의 부분은 배경이라 한다.

게슈탈트 치료에서 '게슈탈트를 형성한다'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나 감정을 전경으로 떠올린다는 뜻이다. 건강한 사람은 게슈탈트를 선명하고 강하게 형성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배경 전경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해 행동이 불분명하고 의사결정도 느리거나 잘 못하기도 한다. 게슈탈트 형성과 해소가 자연스럽게 순환되어 '미해결과제'남은 것이 없어야 건강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일 또는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일이 마음에 걸린 채 해소되지 못한 상태로 머물 때가 있다. 이를 '미해결과제'라고 하는데 '원망, 분노, 미움, 고통, 죄의식, 슬픔'과 같은 억압된 감정으로 나타난다. 미해결과제가 완전하게 자각되지 않고 강력해지면 강박행동, 선입관, 자기 패배적 행동으로 나타나 현재 생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알아내기보다는 고통스러운 감정 체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높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을 '지금-여기'의 원칙에 따라 표현하도록 독려하는 치료자를 따라 회피만 하던 '미해결과제'처리해야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미해결과제' '지금-여기'에서 새로 형성된 게슈탈트가 전경으로 떠올라 '알아차림'됐다면 이를 해소하기 위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행위가 접촉이다. 게슈탈트가 형성되어 전경으로 떠올라도 완결 짓지 못하면 형성과 해소의 순환과정이 어긋나 개인의 성장이 일어날 수 없다. 치료자는 내담자가 분명한 게슈탈트를 형성하여 그 감정을 해결할 것인지, 아님 그대로 억압할 것인지 행동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음디톡스 님의 블로그 발췌


우리 마음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과 욕구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건강한 사람은 전경과 배경의 교체가 원활하게 이루어져 해묵은 응어리 없이 감정 해소가 잘 일어난다. 그러나 게슈탈트를 해소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미해결과제로 쌓아두는 사람도 많다. 의도적일 수도 있지만 생각만으로도 힘들어서 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까닭에 게슈탈트 미술치료를 창시한 '프리츠 펄스(Fritz Perls)'는 미해결과제를 알아차리고 해소하는 것이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수업을 듣는 내내 이미 잘라냈다고 생각했던 감정 하나가 슬그머니 형태를 갖추는 게 불편했다. 이론 수업이 끝난 후엔 신문지에 화가 나거나, 못마땅한 감정들을 아무렇게나 휘갈겨 쓰고는 주먹으로 쳐서 구멍을 내기도 하고 고함치며 갈기갈기 찢어 공중으로 날리는 활동을 하는데도 마음이 구겨진 종잇장 같았다. 이제 와서 왜? 다분히 인간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중에 왜?


법적으로도 정당한 내 몫이었고 인간적으로도 불합리한 요구라는 걸 알았지만 옥신각신 갈등하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 양보하기로 결정했던 재산 문제가 다시 노염으로 떠오른 것이다. 오래전 일이고 별 탈 없이 살아오다가 왜 그 문제가 그 시간에 떠올랐을까? 이론적으로라면 게슈탈트로 형성되지 못하고 '미해결과제'로 가라앉아 있었다는 뜻인가?


그동안도 떠올리지 않았고, 무시한 채 잘 살아왔는데 어째서 마음이 흔들리는 걸까 짐작해 보았다. 아마 정당성과 불합리 못지않게 벌어졌던 과정속에서 다치고 닫힌 마음이 아물었다 덧난 게 아닌가 싶었다. 배경으로 물러났던 감정이 수업을 들으며 전경으로 불쑥 타올랐이다. 하루종일 그 감정에 휩싸여 마음이 무거웠지만 종전대로 다시 묻어두기로 마음과 합의했다. 미움이란 게 잊었다가도 떠오르고 다시 잘라내고 하면서 사는 거지 해소되었다고 완전하게 사라지는 건 아니잖은가.


역증의 근원이 묻는다고 묻힌 채로 잠자코 있을 놈은 아니다. 칼같이 정리하고 깔끔하게 해결된 상태로 사는 것이 마땅하지만 맘먹은대로 되지 않을 때가 허다하다. 해소되었구나 하다가도 어느 날 문득 생각나는 날이 오면 마음에서 지우고 마음을 다스리다시 해소할 수 있어야, 그리하여 배경으로 물러나게 해야 건강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이 그렇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이미 결정했던 일이니 해소된 상태로 아가 다시 깔쌈나게 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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