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중반의 박동훈(이선균)을 만났다.
이십 초반의 이지안(아이유)도 함께.
5년 전 기상 나팔 소리에 이제서야 깨어난 아쉬움이 생선 내장처럼 화악 쏟아졌다.
만나고 보니 기분 좋은 사람들이다. 한동안은 그들이 풍긴 '사람 냄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사람 냄새라고 하니 마냥 정겨울 것 같지만 그들의 시간은 녹록하지 않았다. 불행과 우울감이 마디 마디 배었고 도포된 통증이 수시로 일상을 갉았다. 그런 중에도 사람 냄새에 빠질 수 있었던 건 서로의 고단함을 끊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풍겼기 때문이다.
그들을 만나는 내내 이지안(아이유)의 아저씨 박동훈(이선균)을 '우리의 아저씨'로 곁에 두고 싶었다.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마다 스스럼없이 만나고 싶은 멘토처럼.
뛰어난 능력도, 화려한 이력도, 욕심도, 기백도 없는 내향형 인간이지만 박동훈은 '참된 어른'이다. 바닥 모를 심연처럼 깊은 진심을 쏟아내는 사람. 파쇄당한 타인의 마음을 원형 그대로 회복시킬 줄 아는 복원사 같은 사람이다. 탄핵 당해 마땅한 어른들이 수두룩한 사회에서 사양지심으로 우직하게 버티는 인간적인 어른이 박동훈이다.
나무랄 데 없는 박동훈이지만 자신의 행복보다 가족과 부모, 형제의 삶에 더 큰 무게를 두다보니 무미건조한 삶만 그의 몫으로 남았다. '잃어버린 자신'을 감지하지 못한 채 차츰 허물어져가는 동훈. 그를 지켜보던 지안은 그의 정신을 붙들어주고 싶어 한다.
박동훈을 도청하던 이지안은 처음으로 사람다운 사람을 겪으며 비로소 자신도 그와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부모의 가난도 아내의 외도도 자기 탓으로 돌리며 고뇌하는 동훈에게 지안은 휘두르려던 칼을 접고 진심으로 걱정한다.
아저씨 소리 다 좋았어요
아저씨 말, 생각, 발소리 다
사람이 뭔지 처음 본 것 같았어요
잘라낼 게 많은, 낙관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이지안의 삶은 척박한 땅에 자라는 모질고 억센 잡풀 같다. 어리고 여린 그녀에게 세상에 널브러진 상처란 상처는 모두 들러붙어 피를 내고 고름을 터뜨렸다. 원망과 절망뿐인 삶에 내동댕이쳐진 그녀는 헤어날 수도 수리할 수도 없는 지경이어서 작은 희망조차 가져볼 수 없었다. 여물지도 않은 그녀에게 세상은 한 줄기 빛조차 허락하지 않은 셈이다. 중심에도 언저리에도 그녀의 삶엔 어둠뿐.
협잡과 폭력이 맴도는 사회와 그 안의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 때문에 이지안은 불행한 현재와 불행밖에 없는 미래를 예약한 것처럼 살아내고 있었다. 그런 중에 만난 박동훈은 세상 속으로 뿌리내리도록, 잡초처럼 뽑혀 버려지지 않도록 이지안을 소망으로 환승하게끔 안내한다.
그녀의 중심을 알아버린 박동훈은 법적 보호망을 뚫어서라도 이지안의 과거를 보듬어주고자 애쓴다. 들추어 자신들의 잇속에 이용하려는 자들과 다른 사람. 그녀의 굳은 죄책감에 균열을 일으키고 감춘 눈물까지 닦아주고 싶어 한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물질적 보상을 우선으로 여겼지만 박동훈을 만나면서 제대로 살아내고 싶었던 이지안.
자아를 페르소나에 가두고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에만 부응하며 괴로워했던 박동훈.
두 사람은 책임감에 절어 처절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었던 서로에게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아간다. 아웃되어야 할 사람이 살아남고 살아남아야 할 사람이 아웃되는 세상에서 이지안은 박동훈에게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아웃으로부터 지켜주려는 관심을 기울인다.
독약처럼 굴던 이지안은 박동훈에게 보약이 되어갔고, 행복해져햐 할 이유를 제공했다. 칼 같이 정지선을 그었던 박동훈은 이지안에게 참다운 아저씨가 되어갔고 사회화의 기본을 제공했다. 마침내 이지안은 사회적으로 독립했고, 박동훈은 자신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서로에게 깊은 성장을 안겨준 두 사람은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서러운 것, 구차한 것, 잊히기 원하는 것은 말끔하게 편집되고
새로운 날, 활기찬 날, 기억하기 원하는 날은 알맞게 편성되어
균형 잡힌 삶이 지속되길 기대한다.
두 사람에게...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렀나?"
마지막 이 말이 또렷하게 성대를 감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