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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Sep 30. 2022

관계가 뭐길래

서로에게 향 싼 종이가 되는 것

필요에 따라 바다는 육지가 되기도 하고 섭리에 따라 땅이었던 곳이 바다가 되기도 한다. 사람의 관계도 시간에 따라 차츰 변하여 간다. 오랜 친분으로 남을 것 같던 사람이 멀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 그 자릴 메우기도 한다. 때에 따라 형이 달라지는 것처럼 관계 역시 굵은 선이었다가 점선이 되기도 하고 아예 흔적조차 사라질 때도 있다.


카카오스토리에 하상욱 님의 짧은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이 눈에 띄자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마모되어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는
친해지고 싶은데 안 돼서
힘들었고
나이가 드니
멀어지고 싶은데 안 돼서
힘이 든다.


어려서는

다양한 무리에 소속되는 것이 사는 비결이라고 단정할 만큼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좀 서운할 때가 있어도, 좀 지칠 때가 있어도 얼마 후면 회복이 되는 것 같았다.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관계 맺기의 미덕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듯하다.


삶이 더해지며 

가식이나 형식에 얽매인 관계가 점차 거북해졌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비아냥대지 않고, 정서가 같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다는 걸 기 시작하면서 만나고 돌아섰을 때 허무한 시간은 거부하고 싶었다. 친분을 세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일상을 흩뜨리는 사람, 오랜만의 쉼이란 걸 알면서도 방해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수시로 쏟아내는 사람, 자신의 방식이 옳다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면 기력이 부쳤다. 매일 그러는 거 아닌데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기적인 거 아닌가? 하다가도 지나치다는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 불편한 게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포용할 만큼 성숙한 나이가 되었으니 더 이해하고 수용해야 하는 게 옳지 않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관계란 쌍방적일 때 가능한 것이지 일방적일 땐 반드시 한쪽이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한쪽만 늘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사이여야 한다면, ''는 없고 ''만 있다면 과연 관계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여전하다면 미안한 마음은 접어도 되지 않을까?


살아보니 편치 않은 관계는 어떤 식으로든 소멸되었다. 한쪽이든 서로든 원하는 모습이 달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후로 멀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던 그간의 자책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누군가 혹은 서로가 잘못이나 허물 투성이 인간이어서 그리 된 게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억을 품고 살 수 없듯이 불편함을 견뎌야 하는 관계까지 이어가야 할지는 차분히 생각해 볼 일이다. 솔직한 대화가 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독이 되는 경우도 보았기에 앞으로는 포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현명하게 구분되기를 바랄 뿐이다.


완벽하지 않은 우리는 아닌 척 뿐이지 실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위로받기를 원하는 맘이 크다. 무수히 넘어지고 깨져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건 같은 상황에 같은 의미로 호응해 줄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존재 아닐까? 지금 곁에 있는 에게 향이 되어 주는 건 어떨는지. 가끔은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 , 때때로 안부가 궁금한 에게 사려 깊은 사람이 되어주는 건 어떨는지.


그동안은 '어쩔 수 없지'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럴 수는 지'도 염두에 두고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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