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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그리고 설렘

홍천 가는 길 1

by 오순미

코로나 시국이 꼬박 2년이나 흘렀다. 모임은 정해준 인원을 넘어선 안 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끝내야 한다. 마스크는 필수 조건이며 어디서든 거리 두기를 지켜야 한다. 여행도 삼가거나 사부작사부작 다녀야 한다. 부자유한 시국이 지속되다보니 여기저기서 코로나블루(코로나 우울증)를 호소한다. 제 종식될 지 알 수 없는 바이러스와 투쟁하느라 누적된 피로감은 늘 탈옥을 꿈꾼다.


찌든 공간에서 잠시 벗어나 지쳐가는 세포 사이 사이 비타민을 끼워넣기로 합의한 여자 넷은 홍천 여행 길을 결심한다. 여자 둘은 승용차로, 다른 여자 둘은 ITX 청춘열차로 출발해 남춘천역에서 합류하기로 한다. 그 사이 숙박을 제공하는 여인네가 이틀 먼저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해 나는 혼자 기차에 오르기로 한다.


승용차로만 다니던 여행 길을 기차로 떠난다니 조각조각 흩어졌던 먼 옛날 MT의 기억이 철새처럼 몰려왔다. 제일 저렴한 비둘기호(1967년~2000년까지 우리 나라에서 운행된 완행열차로 역마다 모두 정차했던 보통 열차) 입석표를 끊어도 헤픈 웃음이 마냥 흘렀던 20대의 생기가 홀연히 마중나왔다.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산들바람 따라 흩날리던 단발머리 귓등 뒤로 넘기며 바스러지게 불러댔던 그 날의 떼창이 목구멍을 간질였다. 노랫 소리, 기타 소리, 라디오 소리가 흥청거려도 청춘의 특권이려니 인정하며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던 열차 안 분위기는 낭만 가득한 너그러움이었다. 바닥에 쭈그려 앉아도 배낭 위에 걸터 앉아도 훌훌 떠난다는 사실만으로 벅찬 시간이었다. 주머니 사정이야 비둘기호처럼 꾀죄죄했지만 톡톡 튀는 생동감 하나로 패기만큼은 두둑했던 그 시절 그 춘천행을 다시 한 번 호기롭게 불러낼 줄이야. 오래도록 방치해 두었던 젊은 날의 자유분방이 설렘으로 부풀었다.


눈내리는 겨울을 온전히 누리라고 어린 두 아이 데리고 성북역에서 출발했던 춘천행 통일호(1955년~2004년까지 운행된 우리 나라 여객 열차. 개통 당시엔 초특급 열차) 희끄무레 떠올랐다. 눈도 오고 추운데 애들 데리고 왜 나왔냐며 핏줄 불거진 손등에 핀잔까지 얹었지만 부시럭 부시럭 박하사탕 한 봉지 쥐어주던 정감 어린 할머니의 무심한 호의도 아스라이 어른거렸다. 마주보고 앉아갔던 좌석 배치는 낯선 이와 말을 섞고 간식을 나누며 우연처럼 보이는 소중한 인연을 수없이 잉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번의 만남이었고 두 번 부딪힐 리 만무했던 그 날의 할머니가 기억의 한켠에 선물처럼 남 것도 통일호가 맺어준 따뜻한 인연임에 틀림없다.


오래 전 춘천행을 추억하며 전철을 타고 용산역에 도착했다. 년 전 서울역에서 여수행 KTX(우리 나라 고속 철도. 2004년 개통)에 오른 이후 두 번째 기차 여행이나 용산역은 처음이어서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살폈다. 내가 탑승해야 할 ITX 2067호 개찰구가 1번이라는데 시야로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몰라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를 잘했다 주억거리며 안내원에게 위치를 확인했다. 전철 입구와 동일한 구석 자리를 안내했다. '오호! 별거 아니군' 긴장감없이 쉽게 찾은 개찰구 앞에서 어깨 한 번 으쓱여 봤다.


개찰구에서 예매권의 QR 코드를 찍고 들어가 ITX 안내 노선을 따라갔다.

'어라, 이거 뭐지?늘 보던 전철역이네.' 조종실이 있는 유선형의 날렵한 전면을 기념으로 찍으려 1호차를 선택했는데 먼지에 찌든 스크린 도어가 철로를 막고 있어 불가능해 보였다. 역내 매점으로 가 기차를 타는 곳이 맞는지 다시 확인한 후 여수행 탈 때와 다른 플랫폼에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전광판은 덕소행, 용문행, 팔당행(수도권 전철 경의 중앙선)의 도착 시간을 알리느라 분주했지만 ITX 청춘열차 알림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 맞나?' 의심덩이 인네 의구심 낯모르는 청년에게로 다가가 재확인한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


드디어 ITX 청춘열차 춘천행이 철크덕 철크덕 규칙적인 소리를 내지르며 용산역으로 들어왔다. 8호차부터 달고 들어오는 춘천행 열차는 희뿌연 먼지로 덮인 스크린 도어에 가려 그 위세를 제대로 과시하지 못했다. 내가 선택한 1호차는 마지막 칸이었다. 1호차가 맨 앞일 거라는 고정관념이 산산이 부서지는 찰나 마지막칸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가느라 부실한 무릎이 시큰거렸다. 1호차 3D 내 자리는 12좌석만 배치된 곳으로 출입문 바로 앞이었다.


문이 닫히고 서서히 출바알~

기차 안 승객은 12좌석 중 나까지 3명. 고요했다. 눈치가 보였지만 설레는 내 기분도 마냥 눌러 앉힐 수 없어 조심스럽게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기차 소리에 묻힐 줄 알았던 '찰칵'소리가 찰지게 들렸다. 객실 다른 이들이 불편할까 봐 설정으로 들어가 무음모드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왁자해도 부담없던 통일호와 비둘기호 시절을 그리며 몇 컷을 더 찍고 흘러가는 풍경은 동영상까지 남겼다. '촌스럽게 왜 저래?'

하는 시선이 꽂힐 것 같아 그 즈음에서 멈추고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수분기 거둔 겨울 창밖은 삭막했지만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여 지겹지 않았다. 강물엔 살얼음이 뜨고 들판은 차갑게 식었지만 창문을 넘실대는 햇살은 좋아요와 구독을 누를 만큼 따듯했다. 낀 장갑이 무안할 정도로 시렸던 손끝에 햇살이 닿으니 기세등등했던 추위도 벗어놓은 패딩 위에 얌전히 내려 앉았다. 오른쪽 아래 2구짜리 콘센트가 위용을 뽐내기에 배터리양은 충분했지만 플러그를 꽂아 문명의 이기를 누렸다. 문명의 진보를 온전히 누리며 자세를 고쳐 앉으니 춘천행 깔끔한 좌석이 몸을 감쌌다.


(*몰카 성범죄 방지 차원에서 스마트폰 무음모드가 설정에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앎)


202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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