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춘천역에서 만난 여자 넷은 부실한 아침을 보상하듯 닭갈비로 유명한 '통나무집'에서 전투적으로 점심을 먹고 검색해 찾은 '그린보드 베이커리 카페'로 갔다. 언젠부턴가 카페가 베이커리와 결합하여 대형화되었다. 거기에 정원·숲·책 등을 테마로 실내 및 실외를 장식하여 수다·여유·여행과 접속하도록 판을 벌여 놓았다. '그린보드' 테마는 식물원 카페. 2층까지 음영이 풍부한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채비없이 봄을 맞은 것처럼 턱밑까지 차오른 두툼한 폴라티가 거추장스러울 만큼 따뜻한 공간이었다.
시그니처 메뉴가 더덕주스라는데 주문을 고민하다 그만뒀다. 쓰디쓴 한약재와 오버랩되면서 지나치게 건강한 맛일 것 같아 따뜻한 자몽차를 선택했다. 혹여나 잠 못 들어 뒤치락거리면 여인들에게 방해될까 염려되어 커피는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다른 여인네가 주문한 라테 한 모금 얻어 혀를 달랬다. 농도가 연했다. 진한 라테 맛이 새겨진 혀가 샷추가를 외쳤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여인네가 내 취향일 것 같다며 맛보기를 권했다. 컵에 따라 슬쩍 입을 대봤다. 음, 산미가 적고 쓴맛이 적절하여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살아있는 향이 점잖았다. 어디서 느껴본 듯한 미감이 맛봉오리에 부드럽게 닿았다. 이런 바디감이라면 라테파인 나도 지식인인 양 우아하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나라 커피 열매로 추출한 걸까? 블랜딩인가? 궁금했지만 치즈가 듬뿍 들어간 베이커리와 차를 마시며 본격적인 수다에 몰입하느라 커피는 잠시 잊혀졌다.
내 커피 취향을 알아챈 여인의 각별한 마음씀에 뭉클해 수다 내내 가슴 사이로 온기가 돌았다.
언제부터였을까? 수다의 주제는 '기·승·전·나이 듦'이 기본 코스가 되었다. 나이 듦은 '늘어가는 주름, 하기 싫은 밥과 청소, 불면증, 까만 기억력, 챙겨먹는 영양제, 아픈 곳, 시린 곳, 갱년기 증상, 일이 거부하는 나이' 등으로 퍼져나간다. 중구난방같아 보여도 쏟아낸 수다는 엑셀로 꾸민 차트처럼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헝클어진 마음을 가지런히 배열한다. 이야깃거리는 달라도 묘하게 같은 생각을 떠오르게 하는 수다의 힘. 사소한 소재지만 수다는 공감, 정보, 이해, 힐링들이 상호작용하며 천의무봉다운 해소를 베푼다.
보통 '수다란 쓸데없이 말수가 많음'이라는 사전적 의미 때문에 불필요한 요소 같지만 '나를 지탱하는 특별한 행위이며 저력'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수다가 있어 관계가 형성되고 무거운 마음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서적 교감, 상대방 배려, 들어 줄 자세'가 배제되어서는 수다가 될 수 없다. 대화를 독점하거나 관심없는 주제를 꺼내는 것도 민폐로 전락할 수 있다.
열네 살을 함께 한 여자 넷은 네 번째 열 네 살의 공통분모를 찾아 수다로 술술 풀어냈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연못가 물고기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고품격 수다를 한마디씩 거들었다. 늘어진 수다에도 저물어가는 오후가 아깝지 않은 건 하루 더 함께 할 수 있다는 시간적 여유 때문이었다. 여자 넷은 카메라 어플로 귀요미(넷상에서 발생한 신조어:예쁘거나 애교가 있어 사랑스러운 사람) 사진을 찍으며 사춘기적 장난기와 웃음기를 복사하느라 한동안 시간을 잊었다가 텅빈 찻잔과 사라진 베이커리가 눈에 들어오자 '레드썬'올 외치며 최면에서 깨어났다. 주섬주섬 테이블을 정리하고 벽난로가 기다리는 홍천 숙소로 발길을 옮겼다.
홍천으로 떠나오기 전부터 숙소에 노래방, 탁구장, 스파, 벽난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여인네 하나가 오매불망 '불멍(장작불을 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캠핑족이 쓰던 신조어가 자주 언급되면서 2016년 처음 등장)'을 손꼽아 기다렸다. 불이나 제대로 피울 수 있을까? 걱정하며, 연기만 풀풀 날리다 실패할 거라고 내심 장담했더랬다.
저녁에 구워 먹을 고기며 야채 등 장을 보는 중에 '불멍' 여인네가 고구마를 구워야 한다며 장바구니에 덥석 담았다. 과연 저 고구마를 구울 수 있을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계산을 마치고 박스에 포장하는 사이 어디서 나뒹굴던 손바닥만한 박스 쪼가리 두어 장 주워와서는 불쏘시개로 사용할 거라며 챙기는 여인네 얼굴에 함박 미소가 범람했다. 이쯤되니 '기대해도 되는 건가?' 의문을 던지면서도 절실히 기대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숙소를 제공한 여인네가 먼저 내려 육중한 대문을 열었고 우리가 타고 간 승용차는 넓은 마당으로 미끄러지 듯 들어섰다. 삽시간이었지만 '성골(신라 골품제도)'이 된 것처럼 턱끝에 힘이 들어가 거만해졌다. 사각 지붕 원두막과 황토방, 놀이 시설방, 쥔장 전용 가옥이 늘어선 규모 큰 숙소는 쥔장의 선행을 직감케 했다. 숙소를 제공한 여인네 지인의 세컨드 하우스였는데 그 분이 베푼 선행으로 받은 복을 나까지 누릴 수 있도록 허락된 것에 감사하며 현관으로 들어갔다.
황토로 지은 집은 아늑하고 널찍했다. 서까래가 걸린 종도리 위엔 <여기에 오신 모든 분들에게 건강을!>이라는 덕담이 궁서체로 쓰여 있었다. 숙소도 무료로 제공하고 건강까지 빌어주는 쥔장에게 깜빡 누락된 복이 있다면 마저 받으시는데 동의하는 마음을 보탰다.
편한 복장으로 환복한 후 여전히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떠들다 깔깔대다 불멍을 고대하던 여인네가 드디어 벽난로를 살폈다. 옆건물에 가 장작을 가져오는 여인네를 위해 은박지에 곱게 싼 고구마를 준비했다. 장갑을 끼고 장작을 나르는 여인네 표정에 결기가 묻어났다. 장작 몇 개 공간을 띄워 쌓더니 장볼 때 주운 불쏘시개도 잊지 않고 올렸다. 토치로 천천히 불을 붙이자 맵싸한 연기만 피어올랐다.
'음, 역시 불멍은 무리였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창문을 열었다.
겨울 저녁 강원도 찬바람이 얇게 입은 실내복을 뚫고 살갗을 공략했다.
"으, 추워."
몸을 웅크리자 조금만 참으라며 여인네는 불이 붙은 건지 만건지 모를 장작을 요리조리 매만졌다.
매캐한 연기가 좀 빠진 것 같아 벽난로 문도 닫고 열어 놓은 창문도 닫아 걸었다.
그 사이 고기를 굽고 야채를 씻는 등 저녁 준비를 했다. 여인네는 왔다갔다 벽난로를 살피며 고구마도 이리저리 옮기는 것 같았다. 점심을 푸짐하게 먹은 덕에 저녁 생각이 그닥 없었으나 오랜만에 마주하는 기름진 삼겹살을 소 닭보 듯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상이 차려진 테이블에 바짝 앉아 상추쌈 돌돌 말아 한 입에 넣었다. 녹아 내렸다. 강원도의 캄캄한 밤도 삼겹살처럼 녹아 내렸다.
두세 쌈쯤 먹었을까? 체감 온도가 다른 걸 느낄 수 있었다. 맨살이 드러나도 될 만큼 훈훈한 기운이 몸을 감았다. 돌아보니 난롯불이 탐스럽게 타오르고 있었다. 뻗고 싶은대로 불길이 가는 줄 알았으나 가까이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장작의 의도 안에서 더는 벗어나지 않는 걸 볼 수 있었다. 자유하지만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결이 있었다. 성을 내거나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성미도 아닌 듯했다. 온기는 기본이고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게 파이어테라피(fire therapy)를 전하는 전도사 같았다.
'불멍' 여인네가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그녀의 '불멍' 신화는 홍천 어유포리 일대에 획기적인 시도로 남을 거라며 '엄지척'을 날렸다. 벽난로 앞으로 바짝 다가간 여인네들은 노을빛으로 타오르는 불길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잠시 쉬어가는 여인네들 수다 사이로 타닥타닥 장작의 수다가 황토집을 달궜다.
"아참! 고구마"
느닷없이 튕겨나온 호들갑은 청중의 잠을 깨웠다던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오스트리아)'의 [놀람 교향곡] 2악장, 그 소리와 똑 닮았다. 놀라 꺼낸 군고구마는 맛도 놀라웠다. 노란 속살에 밴 단맛과 쫀득함이 벽난로의 뜨거운 불향을 품은 채 입속으로 달려들었다.
"우앙! 기가 맥히다(막히다)"
한 입 물고 후후 내뱉는 열기 따라 그 날의 행복이 너울춤을 추었다. 연이어 '탁' 맥주 한 캔을 땄다. 컵에 반잔씩 채웠다. '여행'이란 두 글자를 헹가래 치기에 적당한 알콜량이었다. 홀짝거리며 군고구마의 열기에 청량감을 더했다. 짜릿했다.
그리고 질책했다.
해본 적 없다는 핑계를 내세워 의심, 부정, 체념으로 일관했던 비뚤어진 내 소신을.
'불멍?'
말로는 들었지만 지레짐작으로 추측하고 판단한 후 비생산적 행위로 이미 결정내렸기 때문에 기대가 크지 않았다. 여인네 덕에 '불멍'이란 걸 하고 나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니 '불멍'은 신조어로 치부해서 그렇지 오랜 시간 우리 곁에 이미 존재했던 의식이었다.
학교 다닐 때 캠프 파이어도 그렇고 극기 훈련이나 동아리 활동 후 마지막 날 가진 촛불 의식도 그렇다.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작은 촛불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부모님 생각에 눈물 쏟고 친구 생각에 콧물 쏟았던 그 날의 기억들 모두 '불멍'과 한통속 아니던가.
바람의 형상을 따라 잠잠하게도 사납게도 타오르는 작은 촛불을 응시하다가 나도 모르게 설움이 복받치는 절정에 다다르면 정화된 마음 안으로 새로운 다짐이 들어섰던 순간들. 작은 촛불 하나가 나를 변화시켜 출발의 문을 열 수 있게 도왔던 옛 기억들이 '불멍'의 효시이지 않을까?
불꽃을 바라보지 않았더라면 의식 저편의 생각이 그대로 저물었을 테고 그 생각에 닿을 수 없었던 나는 이미 경험했던 진지한 불멍을 놓친 셈이 되었을 것이다.
"불멍, 안 될 거라고 의심 먼저 깔아서 미안하다 친구야~"
그 마음 고스란히 담아 군소리없이 설거지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