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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May 24. 2022

세 번째 스무 살을 아시나요?

곧, 이라더니 정말.

10간과 12지가 운명의 작대기차례 차례 결합해서 자신이 태어난 해가 돌아오면 환갑을 맞이한다. 옛적엔 환갑이라 하면 오래 살았다고 동네 잔치를 벌이며 축하했다. 요즘엔 노년은 커녕 장년도 아니고 중년이라 정의할 만큼 100세 삶이 보편화되어 환갑쯤은 그저 섭섭하지 않게 상징적 축하로 대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줄에 가 닿은 남편이 아직 만 나이론 50대라며 수십 번 강조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나이를 이유로 까탈부린 적 없는데 저 감정의 숙주는 과연 뭘까? 더디고 더디게 오다 퇴색되기를 바라는 걸까?


남편이 오십대의 마지막을 천천히 맞이하고 싶었던 것은 환갑이 주는 어감에 시대적 배경이 얹혔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우리가 생각한 환갑은 노인의 기준을 훌쩍 넘긴 나이듦이었으니까. 막상 그 나이가 되어 보니 어라, 아직 마음엔 초록이 무성한데 환갑이라니? 승인과 거절 사이에서 오랜 망설임에 시달렸을 것이다.


남편의 마지막 50대를 영민하게 재배열해주고 싶었으나 내 코도 석자라 가슴 한편 격려를 떼어 나누는 것으로 정리했다.

옜다, 지연(遲延).


호락호락하지 않은 세상 모르고 철없이 날뛰던 시절. 꺾일 줄 몰라 꼿꼿하게 살았어도 생에 가장 푸른 날이라 이해와 격려 한껏 누렸 그때는 정의롭고 잘난 청년인 줄 알았.


마음 먹은대로 술술 풀려 아름다웠던 시절. 어렵게 시작했지만 결혼 후 3년여 만에 집도 장만하10년여 만에 서울로 입성하며 승승장구가 우리 앞에 영원할 줄 자신감에 도취했지.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고단했던 시절. 생업으로 생긴 갈등에 복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고민하며 돌파구를 찾았지만 세상이 남의 편으로 돌아서 오히려 옥죄어 왔지.


순리대로 풀리지 않아 잔인했던 시절. 다시 시작이야, 외치며 힘차게 노를 저었지만 얼마 못가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말았지.

그래도 웅크리지 않았기에 다른 길이 열리고 꽃찾으러 왔다며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지.


여러 형태의 삶들이 곡절이었지만 정작 남편은 '살면서 이런 일쯤이야'로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시간에 맞춰가고 있다.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는 낮달처럼 남편의 60년이 남은 날의 길목을 비추려 한다. 60년이 선물한 맷집이 살아갈 날의 등대가 될 테니 달빛은 선명하지 않아도 괜찮다. 남편의 세 번째 스무살 어귀부터 인도할 안내자로 낮달이면 충분하다. 아직은 살아내기에 몰입해야는지 꾸역꾸역 밀어냈던 환갑이지만 다시 걸어갈 날들의 선두에서 이정표가 되어주길 바라는 맘으로 조촐하게 '60 파티'를 준비하기로 했다.


미니 현수막에 풍선 장식, 꽃바구니, 떡과 과일 정도면 상차림은 풍성하겠지? 두 아이와 상의하며 여기 저기 이것 저것 검색에 들어갔다.


=이건 너무 노티나

-환갑이거든요, 엄마

=환갑이 어때서? 인생은 60부터라잖아

-나이들어 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이건 팔순 느낌이야

-하따, 다시 찾아 볼게요

=분위기 젊은 걸로

-고객님, 너무 까다로우신 거 아시죠?


=용돈은 어떻게 드릴 거야?

-요즘 지폐가 발사되는 총이 핫해요

=그럼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워?

-재밌잖아요, 흩날리는 돈 신나고

=점잖지 못해. 없어 보이구

-젊게 자면서요?

=박스에 가지런히 넣어서 드리는 건?

-오~노잼 노잼, 완전 올드

=흥칫뿡이닷!

-케이크에서 줄줄 뽑는 형식은요?

=오홋, 그게 낫겠어


아빠 몰래 준비해야 한대서 우리끼리 속닥거리거나 톡을 주고 받으 한 달 전부터 머리를 맞댔다. 테이블부터 접시까지 대여 가능한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어틀이나 편틀처럼 다리 있는 접시에 음식을 올려야 사진이 멋지다며 대여하자는 걸 끝내 고사했다. 예쁘지도 다양하지도 않았지만 남이 쓰던 것보다 익숙한 내 것으로 차려주고 싶었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홈파티용 수동 에어펌프로 풍선부터 불었다. 공기를 주입하여 건넨 풍선의 꼭지를 묶는 과정에서 터질까  은근히 겁났다. 결국엔 남편에게 맡기고 아들과 파티용 은박 커텐을 달기로 했다. 얇아도 너무 얇아 애지중지 다뤘지만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찢어졌다. 남편이 나서서 다시 붙여보더니  포기하자고 했다. 흠,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미니 현수막을 커텐 위에 달아야 하는 과정도 거듭된 훈련이었다. 왼쪽을 맞추면 오른쪽이 처지고 오른쪽을 올리면 왼쪽이 삐딱했다. 파티도 하기 전 진땀 투성이다.


창가로 옮긴 식탁 위에 테이블 보를 세팅했다. 떡이랑 과일을 접시에 담아 앞쪽에 놓았다. 사족 못 쓰는 술도 한 병 놔드리고 선물 박스도 곁에 두었다. 이리 저리 위치를 옮기며 가장 이쁜 각도를 찾느라 엄지와 검지로 사각 프레임을 만들어 한쪽 눈을 감아봤다. 케이크와 꽃바구니까지 제자리를 찾으니 제법 근사했다.


삼각대를 펼치고 사진찍기에 몰입한다. 카메라 앞에 앉은 남편이 활짝 웃는다. 안감을 덧댄 듯 가슴이 따스해진다. 부부와 두 자녀의 하, 히, 호, 후 어색한 웃음에 이어 치즈, 김치, 파티 등 겸연쩍은 표정이 카메라를 애먹인다.


한바탕 사진을 찍으며 소란을 떨다가 불현듯 남편의 용돈이 생각나 '용돈 뽑는 거 왜 안 하냐?'고 산통을 깨고 말았다. 순간 애들 눈동자가 내강력한 레이저에 가슴이 찔려 한쪽 어깨가 뒤로 튕겨나가는 듯했다. 황당하다는 표정과 "아, 노잼"을 연발하는 애들 목소리에 머리가 하얘졌다. 지금까지 지켜온 비밀이 무효가 되는 찰나였다. 까맣게 잊고 있던 용돈 뽑기가 화들짝 생각나더니 나도 모르게 불쑥 입술이 열리고 말았다. 파티의 절정이 냉장고 서랍오랜 기간 방치된 사과처럼 쪼그쪼글해졌다. 타이밍 한번 솔찬히 애처로웠다. 망쳤다 싶었는데 "이미 공개는 됐지만 아빠가 아직 방법을 모르니 괜찮다"며 딸이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 체면을 살린 딸이 고마웠다.


케이크 토퍼를 당기라는 설명을 듣고 죽죽 뽑아올리니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지폐가 케이크 속에서 줄줄이 나온다. 환호성이 터진다. 별명이 하마인 남편의 입이 사방으로 벌어진다. '60 파티' 깜짝쇼는 나의 실수로 반감됐지만 남편이 흡족해 하니 성공이나 마찬가지라며 마음을 쓰다듬었다.


나이 따윈 상관없어 

맘은 아직 청춘이야

의기양양 외쳤지만 남편의 환갑을 치르며 의기소침에 빠졌다. 생각도 분위기도 감성도 애들과 달라 삐걱대는 걸 보면서 젊다고 자부해도 부질없구나 싶었다. 살아온 시간의 주제넘은 참견이 나도 모르게 툭툭 간섭하고 나서는 걸 보니 나이 든 게지 싶었다.


세대 차이는 초월할 수 없는 장벽인 건가?


휴,

입술이 방정인 건 어쩌고.



그래도 난 괜찮아

젊다고 나 느끼면

나이는 상 관없어

마음이 더 중요해


예아~




202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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