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부처의 말> 속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하다면..."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것들일 때가 있다. 보이지 않아도 얼마나 강력한지 삶의 속도와 방향을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끌고 갈 때가 있다. 무너지고 흔들릴 때마다 버텨야 한다고 다잡아 보지만 공허한 다짐으로 흩어지게 하여 삶을 좌절시키는 요소로도 작용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엔 마음, 불평, 분노, 불안, 편견, 열등감 등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마음'은 설명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마음은 감정이기도 하고, 정서이기도 하며 의지와 도덕성이 섞인 복잡한 것이어서 간략하게 정의하기가 정말 어렵다.
마음은 시시각각 변하는 성질이 있는 데다 스스로 괴롭히는 특징을 가졌다. 그래서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하는 형태를 띠기도 하지만 깊은 상처를 입히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가장 먼저 다치는 것은 모든 경험이 처음 닿는 곳이기 때문이다. 몸보다 먼저 반응하고 가장 늦게 알아차려지는 것이어서 마음의 상처는 아물기도 쉽지 않다.
똑같은 상황도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 따라 사소한 일이 되기도 하고, 균열을 일으켜 분노나 상처 같은 감정의 응어리를 남기기도 한다. 같은 상황으로부터 다른 감정을 느끼는 데에는 각자의 마음이 다른 시간을 살아온 탓이 클 것이다.
내 마음을 옥죈 낚시, 비린내, 부산물
우리 부부도 다른 시간에서 살다 35년이나 함께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르다. 식성이나 성격, 정리 습관, 청결 기준, 감정 표현, 소비 감각, 수면 패턴, 갈등 해결 방식까지 닮지 않은 구석이 더 많기에 지금도 조율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지난해 말쯤 충돌 지점이 발생해 서로 예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남편은 몇 년 전부터 낚시를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낚시하는 후배들과 봄, 가을에 주꾸미 잡으러 가는 게 전부였다. 그때만 해도 낚시에 빠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알았다 해도 결사적으로 막을 도리는 없었을 것 같다.
문제는 낚시 가는 횟수가 늘면서 내 마음에 불만이 쌓였다는 점이다. 다양한 어종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냄새에 민감한 나에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희귀한 비린내가 집안을 뒤덮을 때마다 후각이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어종 중 비린내가 도를 넘는 가자미는 두통을 일으킬 만큼 고약했다.
낚시 후 직접 손질까지 하는 바람에 다음 날이면 개수대 주변에 말라붙은 비늘이 널브러졌다. 여기저기 튄 부산물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게 성에 차지 않아 차츰 짜증이 차올랐다. 여름엔 내장 쓰레기 처리도 긴급을 요했다. 못마땅한 마음으로 마무리에 관여하며 툴툴대기 시작했다. 낚시터에서 손질해주는 사람에게 다듬어오면 좋겠다고 부탁했지만 들이는 비용 대비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한두 번 하다 직접 손질을 이어갔다.
한 달에 두세 번은 잦은 듯하니 낚시 가는 횟수를 줄이는 게 좋겠다고 요구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낚시에 흠뻑 빠져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던 남편의 반응은 그저 묵묵부답이었다. 하던 대로 하겠다는 의미여서 불만은 점점 쌓였고 내 목소리나 말투는 퉁명스럽게 변해갔다.
밀도가 높아지는 냉동실도 문제였다. 가까이 사는 지인이나 이웃에게 나눠주고, 손질한 것을 진공 포장해 가지고 나가 친구나 후배들과 모임을 도모해도 공급량이 소비량보다 많았다. 나는 날음식이나 해산물을 즐기지도 않는 데다, 매일 생선만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머지는 냉동실 차지가 됐다. 급기야 냉동고를 따로 마련해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그만 쌓였던 분노가 터지고 만 것이다.
마음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그런 중에 <초역 부처의 말 - 코이케 류노스케>에 실린 문장을 만났다. 그 문장에 마음이 멈춰 우리의 입장 차이를 돌아보게 되었다.
"마음이 편안하고 평온하다면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마음이 꺾이는 일도 없고, 주눅 들지도 않고, 좌절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어디에 있든 마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124쪽)"
사람의 마음 자체가 불안, 불편, 불평, 이기심, 걱정, 욕심 따위에 잘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평온하고 편안한 마음 갖기가 어려운 지라 붓다도 이런 말을 남겼을 것이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나 좌절감마저 들었던 당시 내 마음도 불편이 먼저 움직였기 때문이다. 수긍은 가지만 평온한 마음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느지막이 찾은 행복을 삐딱한 시선으로 흔들 때마다 남편은 어떨지 그 마음에 닿게 되었다. 낚시 하나로 편안하고 평온한 마음을 얻어 주눅들 일도 좌절할 일도 사라졌는데 뜬금없는 훼방꾼 때문에 불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내 불편한 마음만 호소하는데 집중했던 건 아닌가. 내 마음을 반영한 요구 사항엔 이기심이 빼곡하지 않았나. 내 기준에 맞게 모든 걸 통제하려던 건 아닌가. 이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는데, 누군가 불평하며 제동을 걸어온다면 과연 난 어떤 마음에 처할까. 여기에 미치자 비로소 남편의 마음이 헤아려지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낚시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너그러움을 보태기로 마음을 바꾸고 말투와 표정에서 점차 힘을 풀었다. 달라진 게 없음에도 내 마음이 조금씩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문제가 생겨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2025년엔 남편의 낚시에 '받아들임'의 범위를 확대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을 바꿨다고 하루아침에 모든 상황이 수용되는 건 아니었다. 마음은 바꿨지만 평온한 마음으로 전이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새 신발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마음도 '받아들임'의 과정이 반복돼야 평온한 상태에 이르는 모양새였다. 다만 여러 상황들이 전보다 덜 불편한 것만은 분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이란 복잡하고도 미묘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탓에 아직도 부르르 끓어오르는 순간이 있지만 전처럼 빈번하지는 않다. 낚시, 비린내, 부산물에 대해 몸에 박힌 해석이 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금은 남편이 주변 정리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별도로 손대지 않아도 되지만 개운치 않은 부분이 없는 건 아니다.
편안한 마음엔 꺾임과 주눅, 좌절이 차지할 틈이 없다는 문장에 의지해 남편을 바라봤던 올해가 서서히 저무는 중이다. 나의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은 자리에서 남편은 좀 평온했으려나. 행복은 '편안한 마음'에 달렸다는 붓다의 문장이 2026년에도 지속돼 명랑한 마음에까지 도달하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