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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n 18. 2022

메마른 시간에 다시 부를 노래

백 투 더 차일드 후드. 2

볼을 벼리는 추위가 물러가고 따스한 봄기운이 지천에 널린  우린 모교에서 체육대회로 모였다. 방자하고 거리낌 없이 노는 태도 열세 이었으나 경기하는 몸놀림은 가관이었다. 헛발질은 부지기수앉은 자리에서 일어설 때면 '읏짜' 기합이 정직한 발성으로 튀어나와 운동장을 휘감았다.


체육대회의 절정은 역시 계주. 오랜만에 격하게 사용하는 근육이어서 그런가 마음을 따라오지 못했다. 원래도 운동엔 재주가 없지만 참가에 의의를 두자는 꼬임에 넘어가 계주 선수가 됐다. 학교 다닐 땐 들어보지도 못한 선수라는 말에 의지가 불타올랐다. 왠지 팀에 승리의 소식을 전해야만 할 것 같은 사명감에 사로 잡혀 첫타자로 출발했다.


반쯤 달리니 입도 낮은 사포처럼 거친 숨소리가 허파를 긁었다. 모래주머니가 거머리처럼 다리에  달라붙은 듯했다. 천근만근이었다. 가 맡은 구간을 겨우 완주하고 니 운동장이 너울거렸. 주저앉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수습하며 몰아치는 숨소리에 들썩이는 어깨도 진정시켰다. 운동장엔 각 팀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지만 이기는 팀이 우리 팀인지 상대 팀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작아만 보이던 운동장 1/2구간을 달린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구, 족구, 줄다리기, 계주에 온 몸을 던 다음 날 밴드는 엄살이와 투덜이 댓글만 꼬약꼬약 달렸다. 누덕누덕 기운 바지가 도로 해진 것처럼 다리며 팔이 너덜거린다고 저마다 하소연을 댔다. 을 때 일어설 때 딛을 때마다 통증이 인다고 난리들이었지만 괴로움 따위를 상기시키려는  결코 아니었다. 만국기 휘날리던 그 옛날 체육대회로 돌아간 하루가 눈물나게 행복했다는 사실을 애교섞인 반어로 표현한 것이다. 중년의 마음에도 동심 근육만큼은 아직 탄탄하다는 사실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밴드 개설 50일 만에 동창찾기 백 명 돌파 기념 모임을 열어 이백 명 돌파 자신감을 드러냈고, 댓글 만 개 달기제안했던 날들 안에선   드는 새벽두렵지 않았다. 선물이 예정된 만 번째 주인공이 누가 될지 한껏 설렜다. 댓글 만 개 달기, 동창 이백 명 모으기가 '뭐시 그리 중하다고' 설레기까지 했을까? 열세 살짜리들이할 만한 놀이 같아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터지지만 다음 날이면 궁금한 마음에 서둘러 밴드에 입장했더랬다.


'밴드'에 박힌 눈에 재치있는 댓글이 띄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샜다. 각자의 정서에 따라 방출됐던 줄임말, 늘임말, 혀짧은 소리들은 맞춤법이 무시됐지만 희안하게도 소통이 마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글 파괴가 무질서하게 벌어지는 현장이었지만 오히려 각자의 정서에 의지한 언어가 더 정겹고 따스했다. 소위 개떡같은 댓글에도 찰떡같은 답글이 올라와 '정서적 언어'가 좀더 효율적으로 감정을 전할 때 구나 싶었다.


후텁지근한 더위 좀 이겨보자고 모였던 계곡에선 뜨거운 삼계탕을 먹으며 혹서의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계곡을 타고 불어야 할 바람이 수풀 속으로 숨어들어가 더위에 지친 우릴 실실 놀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 박물관 테마 단골인 열세 살 이야기는 여전히 계곡을 흘렀고 우릴 골탕먹이려던 바람은 제풀에 지쳤는지 오후의 머리칼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혜화동에 거주하는 동창 덕에 즐길 수 있었던 여러 편의 연극 관람은 젊음이 출렁이는 대학로에 중년의 옷자락 한 번 거침없이 휘날리는 기회를 다. 솜으로 꽉 찬 것처럼 답답했던 마음을 치유하는 유쾌한 시간이었다. 만날 때마다 어지러운 중원을 호령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왕성한 기운으로 종로며 대학로를 맘껏 점령했다.



고정된 시간을 견고하게 묶은 사슬이 갑갑해도 푸는 방법을 몰라 내버려 두었다. 어쩌면 모른 척 한 것일 수도 있겠다. 숨통에서 가느다란 숨만 간신히 삐져나오는데도 누구나 다 그렇게 숨쉴 거짐작에 변경을 꿈꾸지 않았다. 작은 아이 대학 갈 때까지 그리 지냈다.

일하고 가정 돌보기에 무한 책임을 쏟은 시간. 친구와 한 약속도 우선 순위에 두지 못하고 가족과 가정사에 양보했던 날들. 나는 묻어두고 엄마와 아내로만 살아온 우직한 날들의 연속. 그 연장선 끄트머리에 난 샛길로 들어서니 만남, 연극, 체육대회, 야유회, 여행이라는 색다른 주제들이 우후죽순 돋아 있었다. 오래도록 방치했던 나를 찾아가는 길잡이로 모자라지 않았다. 사소한 이벤트에 설렐 줄 아는 내가 유치하고 낯설었지만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아챈 그 때가 있어 좁아진 숨통을 틔울 수 있었다. 

다시, 살아내기에 열중할 수 있도록 셰르파가 되어준 그 날들이 있기에 숨을 고르고 걸어가는 중이다.


어린 날의 추억도 다시 만난 기억 먼지 톡톡 털어 마음 내키는 곳 펼치면 접혔던 이야기가 생생한 입체감으로 되살아날 거라고, 


흘러가는 세월 속에 문득 문득 찾아 드는 쓸쓸함과 마주할 때마다 꺼낼 수 있는 이 시간이 조금 더 젊은 날의 각별한 회상으로 떠올라 살아갈 날의 회복제가 될 거라고,


훗날 의식이 실족하여 기억이 가물거리는 시간이 오더라도, 마음에 스캔된 조각 조각을 가로 세로 짜 맞추면 메마른 노년에 소풍같은 노래가 될 거라고,


소년의 열세 살과 중년의 열세 살이 공감과 애정을 드러내며 주억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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