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강화 성당'은 독특해서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언덕을 올라 입구인 줄 알고 들어간 곳은 성당의 쪽문이다. 성당 후면과 측면이 보인다. 성당이라기보다는 궁궐이나 사찰에 가깝다. 기와를 얹은 한옥 지붕에 단청을 한 서까래, 몸체는 여느 성당처럼 붉은 벽돌로 쌓은 건물이다. 측면과 후면의 출입문은 아치형 여닫이문이고 1층 창문은 한옥에서 흔히 보는 띠살창, 2층 창문은 서양식 유리창이다. 뒤죽박죽 섞인 듯하나 동서양의 묘한 조화가 어색하지 않다.
들어선 쪽문 왼편의 아담한 한옥은 태극무늬를 연상시키는 적색과 청색 바탕에 십자가를 넣은 대문이 맞다문 입술처럼 굳게 닫혀 범접불가 의사를 전하는 듯하다. 자세히 보아 십자가네, 하기 전에는 언뜻 색채가 디미는 엄숙함이 감돈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제들의 생활관이었다.
순례길 <라브린스>
사제관과 성당 사이 마당엔 돌로 선을 그어 만든 원형의 미로가 있다. 어릴 적 달팽이집 놀이판과 흡사하다. '라브린스'라고 일컫는 영적인 순례길이다. 고대부터 전해오는 것으로 신전이나 오래된 성당에만 남아 있다.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드리며 중앙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는 거란다. 성지 순례를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라브란스를 걸으며 비우고 다스려 새로워지는 시간을 갖는길이다.
성공회 강화 성당 정면
성당 내부가 궁금해 정면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성당의 정면에는 다섯 개의 기둥마다 한옥에서나 볼 수 있는 주련(한옥 기둥에 세로로 써붙이는 문구)이 걸렸다. 주련의 내용은 당연히 성경 구절이다.
마룻바닥이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방식이다. 양식은 동양, 공간은 서양이 혼재된 모습이나 편하면서도 성스러운 기운이 마음을 가다듬게한다.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앞으로 나서지 못하고 뒤편에서 성당 안을 살핀다. 밖에선 2층인 줄 알았던 성당이 위아래가 하나로 트인 통층 구조라 천장이 꽤 높다. 천장은 서까래와 대들보, 도리가 설치된 한옥 양식이지만 조명은 샹들리에다. 단아한 샹들리에가 은은한 주백색을 퍼뜨리며 성당 인테리어의 꽃으로 피어난다.
성공회 강화 성당 내부
2층 창문을 성당의 상징인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했다면 균형이 깨졌을 법한데 유리창으로 마감해 밝은 해가 내부로 스며들면 따뜻하면서도 경건한 예배당을 볼 수 있을 듯하다. 해가 비치면 그것대로 샹들리에가 켜지면 그것대로 성당 안은 거룩한 기도로 가득 찰 것 같다. 2층 창너머로 보이는 고운 단청도 성당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한다.
외부에서 보았던 아치형 여닫이문의 내부 모양은 영국 국기 유니언잭 무늬를 덧대 놓았다. 전통 양식을 추구하면서도 성공회를 나타내는 구조나 문양을 눈치챌 만큼 알맞게 배치한 점도 돋보인다.
좌우측에 회랑을 배치한 바실리카 양식
대한제국시절(1900)에 완공한 것으로 한옥 성당으로는 한국 최초라는데 내부가 멋스럽다. 중앙은 예배드리는 공간이고 좌우측에 기둥을 세워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회랑을 배치한 공간은 '바실리카 양식'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 시대 법정 건물에서 유래한 건축 양식이다.
불교를 상징하는 신성한 나무 보리수와 종탑 대신 정문 입구 종각에 낮게 달린 성당의 종도 동서양을 접목한 '강화 성당'의 특이점으로 꼽을 수 있겠다.
우리가 종교를 갖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해결 불가능한 불안이나 공포로부터 벗어나 내적 평온을 얻고자 하는 마음일 것이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수차례의 전쟁으로 고통받은 강화 백성들도 초자연적 존재에게 전쟁의 불안을 떠넘겨 해결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을지 모른다. 때문에 전통적 민족 신앙과 맺은 밀접한 관계는 치유와 극복의 방편이었을 것이다. 민족 특유의 신앙과 가까이 하는 백성들에게 기존의 분위기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하려던 성공회의 시도는 흔하지 않은 건축물로 먼저 다가왔다. 상대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식을 선택했기 때문에 위화감이 적은 종교로 스며든 것이다. 토착 문화와 조상 숭배 예식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공을 들였기에 성공회가 현지인들과 조화를 이루지 않았을까?
익숙하지만 특별한 건축물을 잉태한 '강화 성당'에서 찾은 성공회의 혜안은 '이해와 존중'이었다.
내부 대문
성당 종각
쪽문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나올 때는 정문으로 나온다.
'어라, 대문이 두 개네.'
내부 대문은 홍살문에서이미지를 빌린 모습으로 종각을 품었고, 외부 대문은 사대부집에서나 볼 수 있는 솟을대문에 십자가와 태극무늬가 선명하다. 보기 드문 성당에 매료되어 한참을 둘러보다 나선 정문 아래 쪽으로 '용흥궁(왕이 되기 전 철종이 유배되어 살던 집)' 입구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