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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광성보는 신미양요 격전지

산책길 따라 둘러보는 광성보

by 오순미

장갑은 벗었으나 아직은 손이 주머니 찾아 두리번대는 즈음 강화도에 발을 디딘다. '한번쯤 멈출 수밖에'라는 프로그램에서 공중 촬영한 '광성보'가 눈에 들어 저장해둔 곳이다.


'광성보'는 고려가 몽골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천도한 후 축조한 성이다. 강화 해협을 지키는 중요한 요새로 조선시대에 와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다. 병자호란(1636-인조14) 당시 처참하게 함락당한 후 체계적인 방어를 위해 효종 9년(1658)에 재건. 강화 해협 주위에 설치한 12개의 진(5)과 보(7) 중 하나로 신미양요(1871)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긴장감이 살벌했던 광성돈대, 손돌목돈대, 용두돈대를 둘러본다.


광성보 성문 안해루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광성보'의 성문 '안해루(바다를 제압한다는 의미-영조21-1745)'다. 일정한 모양의 돌로 단단하게 쌓아올린 성문에서 외세의 침략 따윈 문제없다는 의지가 보인다. 아치형 성문 천장에는 수호의 의미를 담은 황룡이 날카로운 발톱을 세워 침략자들을 삼킬 듯 위협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뜰을 둘러싸고 해상 전투가 빈번했을 강화 해협의 물결이 와이파이 모양으로 번져간다. 더없이 평화롭다. 누와 넓은 뜰과 바다의 조화가 침략의 슬픈 역사를 흔적도 없이 씻어 놓았다. '안해루'는 바다를 살피는 해안 초소로써 견고하면서도 격에 맞는 멋스러움을 풍긴다.


광성돈대

'안해루'를 나와 바로 옆 '광성돈대(숙종 5년-1679)'로 들어간다. 탄두형으로 성벽을 쌓은 요새다. 중앙에 대포와 그 외 무기들이 전시되고, 관람객 동선은 돌을 깔아 정리했다. 벽을 따라 요새를 돌면서 바라본 대포는 적을 무찌르기엔 왠지 부족해 보인다. 열악한 상황에서도 이 악물고 저항한 흔적을 살피는 것이 후세의 도리가 아닐까? 싶어 샅샅이 훑는다.


쌍충비각
신미순의총

'광성돈대'를 나와 산책로를 비호하듯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천천히 걷는다. 봄 기운이 들썩이기는 하나 바람은 천방지축이다. 몇 분 정도 걸었을까? 왼쪽으로 나란히 '신미양요순국무명용사비'와 '쌍충비각' 나타난다. 신미양요 때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어재연 형제의 쌍충비와 59명의 순절비라는데 어재연 장수의 이름이 낯설다. 조선시대 충청도 병마절도사(각 도의 육군 지휘 사령관)로서 병인양요(1866- 프랑스)와 신미양요(1871-미국) 때 턱없이 모자란 군대와 구식 무기로 서양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분이란다.


역사에 기록된 장수들도 몰라보기가 태반인데 수많은 무명용사들의 송죽같은 충절에 가 닿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광성보에는 '무명용사비'뿐만 아니라 무명용사 무덤도 봉긋봉긋 솟아 있다. '신미순의총'이라는 곳으로 분묘 7기에 합장하여 정중하게 모셔 놓았다. 방치하지 않고 정성스럽게 돌보는 모습에서 강화도의 수준이 읽힌다.


손돌목돈대

산책길을 따라 조금 더 가면 야트막한 구릉 위에 원형으로 쌓은 '손돌목돈대(숙종5년 -1679)'가 나온다. 광성보에서 이곳이 가장 높다. 성벽을 따라 걷다 시야를 밖으로 돌린다. 전투가 벌어졌다고 생각하기 앞서 수려한 경치가 불쑥 차오른다. 해협 건너 김포의 풍경까지 눈에 들일 수 있다.


손돌목은 강화도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물살이 거친 여울목. '손돌'이라는 숙련된 뱃사공이 왕을 태우고 가던 중 위협을 느낀 왕의 오해로 억울하게 죽은 곳이라 그의 이름을 딴 지명이 되었단다. 거치적거리는 거 없이 확 트인 전망을 보며 외세 함대를 한눈에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용두돈대

'손돌목돈대'에서 보이던 '용두돈대(고종 8년-1871)'로 향한다. 낮은 성벽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과 다가오는 풍경에 발걸음이 가뿐하다. 황룡의 몸통 같은 구불구불한 황톳빛 통로를 걷다보면 해협으로 길게 뻗은 타원형의 '용두돈대' 닿는다. 용머리 모양으로 돌출된 자연 암반 위에 축조한 천혜 요새로 사방이 트인 곳. 당시 사용했던 대포와 격전지를 알리는 '강화전적지정화기념비'가 서 있다.


적들이 침입하기 쉬운 요충지에 설치해 재빨리 반격하려는 목적이 돈대라면 '용두돈대'가 가장 적합한 곳이라 추측된다. 동서남북 어디로든 막힌 곳 없이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좁은 해협이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함락될 것도 같다.


지형적으로 갑곶 바다의 센 물살이 외부 침입을 방어하기에 용이하다는 이점이 있어 고려가 천도를 결단한 곳이지만 강화도는 여러 번의 국난을 겪은 역사적 현장이다. 정묘호란 당시 인조가 피신한 곳도 강화도다. 늘 주변국에 시달리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볐던 장수들과 이름 모를 용사들 덕분에 우린 오늘도 피로 물들었던 성벽을 따라 산책하는 호사를 누린다.




연일 보도되는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을 보며 호국을 선택한 청년들의 기백이 호기로우면서도 애처롭다. 한 치 앞도 모르지만 조국을 위해 망설임없이 나서는 용사들을 보며 우크라이나에 번지는 희망을 열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야욕(흑해를 접하고 있어 해양으로 진출하기 수월한 군사적 요충지)이 침공으로 이어진 걸 보며 한 국가의 지정학적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고대부터 절묘한 지형 때문에 수차례 침략 당했지만 아직도 굳건하게 국어를 사용하고 있으니 지리적 한계를 제대로 극복한 국가로 봐도 되지 않을?


강화도를 돌며 민초들의 희생을 딛고 선 풍요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도리가 아닐는지.




202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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