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왔을 때는 어둑하고 비까지 내리는 바람에 대왕암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출렁다리도 새로 개방했다니 두루두루 둘러보자며 오전 출발을 약속했다.
준비하면서 창밖을 보니 주룩주룩 내리던 비가 물러간 자리에 햇발이 제방을 부수고 범람하는 중이었다. 주룩비에 젖는 것보다야 낫지만 찌를 듯한 여름 해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나서기도 전에 갈등이 일었다.
숙소를 나서자 여름 꼬랑이에 붙은 더위가 제법 당찬 기세였다. 너덜해진 기분으로 출렁다리를 향해 가는데 어째 낌새가 수상했다. 개통된 지 얼마 안 된 대왕암 출렁다리는 주말이라는 시간적 요인이 합세해 줄을 서야 입장 가능했다. 뒷덜미가 후텁지근한것을 무시하고 긴 줄에 합류했지만 '대왕암으로 바로 가? 마냥 기다려?' 수십 번도 더 고민했다.
견디고 누르고 버티고 굴복한 우리는 입장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출렁다리를 건넜다. 복더위보다 짜증스러운 늦더위가 등짝이며 다리며 사정없이 후려치는 바람에 풍경은 고스란히 태양 몫이었다. 우린앞사람 등짝과 바닥만 번갈아 쳐다보며 휘청휘청 건너갈 뿐이었다. 길긴 또 왜 그리도 긴지.
출렁다리에서 지친 우린 대왕암도 대충 훑고 하드 하나씩 문 채 그 곳을 빠져 나왔다. 역시 여름 여행은 우리와 상극이었다. 늘어진 엿가락마냥 축축 처지고 불쾌지수만 상승했다.
올 여름도 1994년 못지 않게 더운 여름이었으나 말복도 지나고 더위가 그친다는 처서가코앞이라 맘을 놨더니 한낮의 태양은 곧이곧대로 여름이었다.
대왕암 출렁다리
점심을 먹고 울산에서 유명하다는 베트남식 카페(카페 코지)에 들렀다. 들어서자마자 더위가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그제서야 베트남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각양각색의 베트남풍 전통 등이 모빌처럼 주렁주렁 달렸고 아오자이와 농(non: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모자)이 걸렸다. 젊은이들은 아오자이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CAPHE COGY 분위기
베트남식 카페라서 위즐커피도 있으려나 찾아보니 없다. 위즐커피 역시 루왁(사향고양이)처럼 사향족제비 배설물에서 얻은 커피다. 발효 과학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대단한 건 알지만 커피까지 독특한 맛을 내도록 유도하다니 대체 어디까지 증명할 건지. 동물의 소화기관에서 분비된 효소 때문에 커피 열매가 발효되면 쓴맛과 카페인이 줄어 특유의 풍미를 가지게 된단다.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음미하며 감탄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똥커피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주제다. 더구나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을 때 황실에서 즐겨 마시던 고급 커피라니 맛과 향에 호기심이 일기는 하지만 똥커피라는 이름 앞에선 망설여지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다행히 위즐커피가 메뉴에 보이지 않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이 카페의 장점으로 꼽는 아이러니를 저지르며 가장 베트남다운 느낌의 호치민라테를 주문했다. 하롱베이에서 마셨던 맛이 진하고 향이 깊은 라테를 생각하며 주문한 건데 지극히 평범한 맛이었다. 씁쓸한 맛이 강해 연유와 천생연분이라는 베트남 로부스터 원두를 사용한 걸까? 싶을 정도로 연하디 연한 연유커피였다. G7도 콘삭커피도 향이 먼저 입맛을 다시게 하는 데 반해 호치민라테 향은 미미했다. 대신 베트남풍의 카페 분위기만큼은 나무랄 게 없었다.
전날 밤 숙소에서 빤히 보였던 대관람차를 타러 갔다. 템즈강변의런던 아이처럼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느릿느릿 회전하는 대관람차는1893년 시카고 엑스포를 선두로 세계 유명 도시의 상징적인 놀이기구가 되었다. 지금은 놀이공원이나 유원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울산이라는 도심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우리 나라 대표 공업도시에 설치된 의외의 낭만인데다 탁트인 사방이 궁금해 기대감으로탑승했다. 규모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정점에 도달하니 도시는 미니어처가 되었다. 백화점 건물 7층이탑승장소라 더 높게 체감되었던 것 같다.
울산 도심 대관람차
대관람차에서 우연히 보게 된 울산의 해질녘은 "방망이 깎던 노인(윤오영)"이었다. 하늘가에번진주홍빛이 귤빛으로 변하더니 민들레 노랑빛이 얹히며 복사꽃인 듯 연분홍이 연이어 퍼져만족할 때까지 스스로 물들임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적 배경으로도, 그라데이션 기법으로도 완벽한 노을이었다. 대청색 하늘을 물들인 노을에 기대어 풍요로운 울산이 저물어 갔다.
마지막 날, 구름이 먹을 가는 하늘가 사이사이 푸른 기운이 더 강해 우산을 둔 채 파래소 폭포로 향했다.그 옛날 기우제를 지내면 바라던 대로 비가 내렸다 하여 '바래소'에서 유래된 이름이란다. 올라가는 길은 나무와 구름에 가려 28호 파운데이션을 바른 분위기였다. 인적이 드물다보니숨소리까지 귀에 걸리는 예민한 숲길이었다. 짜그락 짜그락 거친 자갈길이었다 처벅 처벅 흙길이 잠깐 나타났다 텅텅텅 데크가 깔린 길을 지나 계단 수십 개 오르락 내리락 하니 숨은 비경이 나타났다. 1.3km라고 얕잡아 봤다간 코깨질 길이었으나 눈에 담아 갈 만한 가치있는 절경이었다.
파래소 폭포
'파래소'는 아담한 자태였지만 물줄기만큼은 굵직하고 강인했다. 곧게 떨어져 소(沼)에 닿은 흰 물줄기가 옥빛이 되어 객의 눈을 사로잡는 '파래소'는 여름을 품에 안아 다독이고 있었다. 수풀을 흔들고 지나온 바람이 얕게 깔린 목덜미의 땀을 식히고깊이를 알 수 없는 소(沼)의 물을 흔들었다. 옥빛 물결에 '대왕암 출렁다리'에서 호되게당한 더위를 실어 보냈다.
씻겨간 땀방울을 손흔들어 보내고 데크길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내려오는길에 빗방울이투욱툭 팔뚝을 건드렸다. 마침 작은 동굴 안에 벤치가 있어 일단 비를 피했다. 그 곳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니 두꺼운 구름장들이 아우성치며 사선으로 빗발을 내리꽂았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지만 괜한 소망인 듯하여 빗줄기가 가늘어진 틈을 타 내려가기로 합의했다. 굵었다 가늘었다 변덕부리는 그 비를 다 맞으며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길이 얼마나 조급했는지 발가락에서 쥐가 났다.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어 서로를 바라보니 웃음인 듯 웃음 아닌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역시 낯선 도시에 빠지고 싶을 땐 단풍잎이 눈에 띄게 제 빛깔을 드러내며 살랑거릴 때가 적격임을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