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 부스러기로 어질러진 맘을 내비치면 우윳빛 포말로 다가와 말끔하게 정돈해준다. 막막한 시간을 안고 가도 재치있게 가로채 알맞은 위치로 방향키를 틀어준다. 바다에 가면 꽉막힌 마음도 혼탁한 머리도 푸른빛으로 물들어 산뜻하게 바뀐다. 바다는 언제라도 넓고 듬직한 어깨를 빌려주는 미쁜 녀석이다.
4월의 바다는 오밀조밀 예쁘고 잔재미 넘치는 강문 해변으로 정했다고호 전해에라하~
경포 해변과 송정 해변 사이강문 해변으로 나가는 길엔 소나무 숲길이 아늑하다. 생긴 모양대로 드리운 그늘에선 바다 향기가 쭈뼛거린다. 솔숲을 지나는 바람따라 아이유 노래냄새도 살랑거린다.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아이유 노래 '무릎' 중에서>
온화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해송 숲을 나풀거린다. 까무룩잠이 들 것만 같은 간지러운 바람이 숲을 감싸고 우릴 안아준다. 바람 안으로 더디게 걸어가면소나무 사이 사이 솔향을 누리는 작품들이
"니들이 예술을 알어?"라며
뽐내고 섰다.
강문 해변 해송 숲은 야외 미술관답게눈길이 닿는 곳마다 작품 천지다. 천사 날개, 말 조각상, 숲과 해변 경계선의춘향이 그네, 하늘 계단, 다이아몬드 반지 등 수많은 형태의 작품들이 설치돼 만질 수 있고 체험할 수 있어 편하게 다가가는 예술의 숲이다.
선풍기 머리통만한 다이아몬드가 훌라후프만한골드링 위에서 반짝거리는 조형물이 탐났지만 비현실적인 크기에 욕심을 접는 순간
"누군가 저 반지를 기어코 끼워주겠다고 하면 기꺼이 받을 거지 엄마?"라며 기습적으로 묻는다.
"당연하지."라는 대답이 망설임없이 튀어나오자 딸이 그럴 줄 알았다며 웃어 젖힌다. 민낯을 들킨 나도 쿠륵쿠륵 따라 웃는다. 그네를 구르며 춘향이도 되어 보고 말 위에 올라 이랴끼랴 엉덩이도 두들겨 본다. 샛노란 계단 위로 올라가 하늘의 생각을 흡수하듯 두 팔도 한껏 펼쳐본다. 바다로 나가는 걸 잠시 잊은 채 숲길에 빠져 노닥거리다 파도 소리에 홀린 듯 발걸음을 보챈다.
해송 숲을 빠져 나오니 널따란 모래밭이 푸근하다. 아득히 먼 수평선은 '해송 숲에서 니가 떤 허영을 알고 있다'며 피식 웃는 듯하다. 사진 찍기에 열일하라는 주문처럼 포토 스팟도 끝없이 나타난다. 카메라가 본분을 다하는 사이 어둑해진 해변에 크고 작은 달이 뜬다. 해변의 조명과 거리의 가로등이 달빛처럼 은은하다. 딸의 표정이 달빛따라 환하게떠오르니 덩달아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진다.
내딛을 때마다 모래 속으로 포옥폭 빠지는 발걸음이 흔적을 남긴다. 다른 이의 발걸음에 곧 지워질 테지만 마음에 담긴둘만의 시간이 남았으니 아쉽지 않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끼어들고 싶은지 자잘한 파도가 쉼없이 찰랑거린다. 딸이 새로 출근할 직장의 기대를 조근조근 털어놓을 땐 나도 모래알도 바다도 신짝만하게 귀를 열어 들어주고 호응한다.
내로라하는 굴지의 회사는 아니지만 전공 살려 한 걸음씩 나아가는 딸의 모습이 눅눅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딸이 3년 다닌 첫 직장을 퇴사하겠다고 말할 땐 취업이 어려운 시대적 상황이 내게 딴지를 걸었다. 걱정됐지만 딸을 믿었고, 무사히 넘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시 세상에 섞여가려고 한다. 삼포니 오포니 하던 말이전포를 거쳐 N포세대로 굳히기에 들어간 지금도 올곧이 자신을 지키는 딸이, 가족의지지와4월의 바다에 기대 가슴 뛰는 길을 가기 바라며그 길에서 미칠 듯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