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슬라(고구려 시대 강릉 옛 지명) 아트 월드로 향하는 길엔 햇볕이 4월을 베어낼 기세다. 입구에 세워진 커플 조형물은 '에바 알머슨(스페인 화가)'느낌이었으나 '김원근 조각가'의 작품이었다.조직의 쓴맛 좀 본 듯 꽃무늬 셔츠, 두툼한 금목걸이, 깍두기 머리에 쪽 째진 눈을 가진 남자에게서 '부산행'의 순정마초 마동석이 떠오른다.
아비지 갤러리, 현대 미술관1.2.3관, 피노키오& 마리오네트 박물관, 스카이 워크, 바다 카페와 야외조각공원, 뮤지엄 호텔 등이 하슬라 아트 월드의 다양한 공간이다.
들어서면 보이는 그레이스 박의 볼록 거울 공간은 디자인이 먼저 눈길을 끈다. 천이 가진 다양한 원색이 모빌처럼 매달린 거울에 비치면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작품이 달라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스테이플러 철심으로 제작한 양태근의 하마는 생태계 교란을 주도하는 인간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작품이란다. 자연이 파괴되면서 해를 입는 동물들이 스스로 보호하려면 철갑이라도 둘러야 할 판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하다.
고가의 가죽 소파로 보이는 금속공예작가 김경환의 작품은 대단한 트릭이 숨었다. 푹신한 줄 알고 털석 앉았다간 엉덩이가 고생길로 빠질 수 있다.보기와는 달리 단단한 금속이 주재료이기 때문이다.차디찬 금속으로도 온기를 걸친 보들보들한 감각을 연출할 수 있다는 데서 금속이 가진 고정관념을 훅 치고 들어와 깨부순다.
피카소의 도자기 작품에 그려진 그림에서는 언뜻 이중섭이 보인 건 혼자만의 착각인 건가?
얼기설기 실로 엮은 시간의 끈 터널, 피노키오가 제페토 할아버지를 구하러 들어갔던 고래 뱃속 터널, 사방 거울로 가득한 거울의 방, 선명해서 어지러운 RED 컬러의 노끈이 천장과 바닥을 연결한 이색적인 설치 미술과 프랙탈 아트(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구조/예:프랙탈 패턴 고사리 잎,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가 때론 웅장하게 때론 조촐하게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피노키오&마리오네트 박물관은 키네틱 아트(작품 자체가 움직이거나 부분적으로 움직이는 작품) 공간이다. 동화적 감성이 넘치는 곳으로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도 이 곳에선 피노키오가 되어 나타난다. 관람하다가 문득 내 코를 만져보는 순간이 오면 야외로 통하는 길목에 선다.
돌담 한 가운데 원형으로 뚫린 비상한 포토존. 등명 해변과 하늘을 그대로 담아 사진 찍는 모든 이가 예술이 되는 곳이다.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허투루 찍어도 푸른 바다와 어두운 피사체의 조화가 놀라운 하슬라의 촬영성지다.
가수 에일리의 Make up your mind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파도의 길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쇠파이프를 활용해 바닥과 난간을 현대적 감각으로 꾸몄다. 쇠파이프가 바다와 만나니 강을 거슬러 오르는 은빛 연어 같기도 하다. 흔한 소재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동굴로 들어서는 것 같다가 끝없는 바다로 나가는 구조가 신비롭다.
전망대 끝에 서면 낭떠러지에 선 기분이 들어 움찔, 오싹이 자동 반복된다. 야외로 뻗은 계단을 한없이 올라 내려다본 풍광은 그 누구도 용서할 것 같은, 용서받지 못할 자가 없을 것 같은 너그러움이자 풍요로움이다. 야외조각공원으로 발길을 옮기다 더위에 약한 딸이 거부 의사를 밝혀 출구로 발길을 튼다.
작가가 정성들여 매만진 작품에는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작가가 깔아놓은 의도에 가까이 다가가 공감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각자의 시선과 해석으로 바라보는 것도 나무랄 데 없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미술 작품 앞에서는 해설을 찾느라 분주하다. 처음 보는 작품에 별도의 해설이 없을 때는 갑갑한 나머지 불만이 쏟아질 때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많이 알수록 보이는 것도 많다는 뜻일 테다. 경우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알아차릴 수 있다는 걸 말할 것이다. 때론 기존의 해석이 어려워 또 다른 해석이 필요할지라도 해설에 의지하고 기댈 때가 흔하다. 늘 뭔가 더 알아내려고 애쓴 듯하다.
하슬라 아트 월드에서도 역시나 해설이 부재해 답답했다. 아마 자유한 해석을 노린 계획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흡하더라도 내가 가진 정서에 따라 느끼고 즐기는 미술이진정한 예술이지 않냐며 감히 참견하다가도 결례를 범한 것 같아 이내 고개를 숙이곤 했다.
그동안 하슬라의 작품에도 세대별, 성별 다른 해석이 떠오르고 저물고를 반복했을 것이다. 놀라움일 수도, 독특함일 수도, 난해함일 수도, 섬뜩함일 수도 있는 공간에 더 많은 발길이 더 많은 해석으로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손흔들어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