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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에 좀 더 가까이

패러글라이딩에 반한 보령

by 오순미

무조건

앞만 보고 달려가라는

주술같은 주문.

특급 장교 리정혁(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북한군 중대장)을 만나서는

절대 안 될 것처럼

뒤에서 잡아 채는 것 같아도

멈추지 말아야 탈이 없다고

재차 강조하는 복면사나이.

위험은 없을 거라며

확고한 목소리로

헬멧을 씌워주던,

신발과 복장 매무새까지 챙기며 친절을 베푸는

구릿빛 팔뚝의 믿음직한,

그러나

처음 만난 낯선 파일럿을 따라 옥마산 정상에 섰다.


바람이 얼굴을 때려도

출발이라고 신호를 보내면

작전 개시라는,

불굴의 지시를 떠올리며 달려나가다

거대한 힘이

전진을 방해하여

뒷걸음질하려던 찰나

GO! GO! GO!

외치는 소리에 다시 힘을

세차게 달음박질쳤다.


두 발이 헛걸음치는가 싶더니 어느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허공에서 흔들거리는 다리.

골반이 안장에 안착된

확인하는 것도 잠시

훅 떠올라

수중 세계를 유영하는 고래처럼 안온해졌다.


"꺄오 꺄꺄~꺄오"

용케 날아오른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긴 직사각형의 독수리 날개처럼

푸른 하늘로 높이 떠오른 오렌지빛 캐노피는

느리고 점잖은 활공을 시작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광활한 세상.

도시가 품은 바다와 평원,

산과 창공이

그 모양 그 빛깔 그대로

영사기 필름 넘어가듯

촤르르 흘렀다.

펼쳐지는 낯선 풍광이

흥미롭고 특별하게

뭉클하고 색다르게

두 눈을 채웠다.


반듯할 것만 같던 논과 밭은

곡선과 직선을 아우르며

개성 뚜렷한 윤곽을 뽐냈다.

가을이 엮어 놓을 황금 들녘이 더 멋있다지만 초록으로 단장한 들판도 못지않게 수려하다.

보령종합경기장은

푸른 잔디 무성한데

객석도 경기장도 텅빈 채 아스라이 멀기만 다.

가래떡처럼 길게 뻗은 도로엔 성냥 알만한 자동차가

고물고물 오고 가고

저 멀리 서해는 윤슬인가?

은빛 반짝임이 찬란하다.

산과 하늘이 맞닿은 곳엔

구름이 끼어들어

어디부터 산이고 어디부터 하늘인지 구분없지만 아름답다.

우거진 나무가 숨겨둔 오솔길은

내 눈에 몽땅 들켜 이제 술래할 차례. 황톳빛 드러낸 오솔길이 이 산 저 산 호젓하게 뻗었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미니어처 세상에 흠뻑 빠졌을 즈음 역동적인 속도감을 노리던 파일럿은 두세 번의 바이킹을 감행하더니 나비처럼 사뿐하게 내려놓았다.

보령이라는 도시에서 난생 처음 패러글라이더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봤다. 하늘에 배를 띄우고 바람따라 떠다니는 여행자가 되는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청정한 하늘 공기, 달리 보이는 세상의 크기, 올려다보던 것을 내려다보는 미묘한 감정들이 마음을 빤히 들여다보며

'너 웬일로 낯섦을 다 즐기고 있다니?'

하는 것 같았다.


익숙한 사람이나 상황이 편하지, 낯섦을 일부러 찾아 즐기는 타입은 아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낯섦을 즐길 때 찾아오는 기회가 그래서 내겐 적은 건지도 모르겠다. 혜초가 고대 인도 5천축국을 향해 나서지 않았다면 《왕오천축국전》은 세상에 없었을 테고, 콜럼버스가 항해를 두려워했다면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은 늦어졌을지만 익숙한 것이 마음 편한 건 솔직한 심정이다.


'승객은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왔다가 떠나는 존재일 뿐이다. 《여행의 이유》 김영하'고 한 것처럼 우리는 언젠가 지구 별의 여행을 마치고 낯선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태어나 돌아갈 때까지 여행자로 사는 동안 마주칠 모든 것들은 낯선 것들의 연속이다. 낯섦은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서지만 등지고 살 수 없기에 늘 고민을 더한다.


두렵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에 대들지 못하고 피하기만 하다보니 주위 사람들에게 의지하게 되고 뒤처지는 느낌이다. 변화 속도가 빠르다고 투정부리며 점점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것 같아 호기심 내세워 새로운 도전도 즐겨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한 번이지만 패러글라이딩에 친숙해진 것처럼 낯선 것이 반복되면 언제가는 익숙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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