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 심사대까지 걸어가는데 동선이 만만치 않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짜증이 살짝 묻어난다. 공항의 규모가 예상되는 지점이다. 인천공항만 한 데가 또 있을까 싶어 지분은 없지만 한국인으로서자부심을 가졌는데 이스탄불 공항은 왠지 기대된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날 제대로구경키로 하고 바삐 공항을 빠져나간다.
신공항이라 현대적인 감각의 건축물이 단박에 시선을 끈다. 내부로 들어서니 세련된 인테리어에 'istanbul 2020'이라고 쓰인 트레이드마크가 튀르키예 최대 공항다운 위용을 뽐내며 맞이한다. 압도적인 크기에 한 번 놀라는 척한다. 온전히 대접하겠다는 자신감으로 보여 마음이 한껏 부푼다.
'어딜 가나 형제의 나라라고 치켜세우더니 혹시 인천공항 복사한 거 아이라니?'
속으로 짓궂게 빈정거린다.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이스탄불 공항을 검색한다. 설명에 따르면 아타튀르크 국제공항 대신 개항한 신공항으로 이스탄불 공항의 내부 구조와 여러 가지 시스템이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컨설팅하여 탄생한 거란다.
'그럼 그렇지.'
처진 어깨가 자긍심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자마자 삽시간에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꼬리가 보이지 않는 긴 줄에 더해 겹줄이다. 잠깐 휴대폰에 한눈판 사이 저 많은 사람들이 어디 숨었다 나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저 줄에 서야만 집으로 돌아갈 항공권을 받을 수 있건만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남편도 갑작스러운 광경에 어리둥절한 눈치다.
한숨을 내쉬며 겹겹이 늘어선 긴 줄에 가려 하자 무슨 수가 떠오른 듯 남편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올라간다. 대기 줄에 서너 명밖에 없는 모닝캄 카운터로 가잔다. 한창 해외 출장이 잦을 때 만든 모닝캄 카드를 활용하잔다. 그런 게 있었냐는 반가움도 잠시 유효기간이 좀 지난 거란다. 그렇긴 해도 상관없을 거라며 그 곳으로 저벅저벅 걸어간다. 새가슴을 부여잡고 원칙대로 하자고 조른다. 무릎도 허리도 아프다며 저 줄에서 기다릴 수 있겠냐고 묻는다. 끝도 없이 늘어선 줄보다야 모닝캄 줄에 서고 싶은 맘 당연하지만 딱 걸려 창피당하기 싫다니 괜찮을 거란다. 완벽한 딜레마에 빠진 나를 보기는 한 걸까? 남편은괜찮다는 말을 내뱉기 무섭게 모닝캄 카운터로 가 줄을 선다. 저럴 땐 홍길동 뺨치게 빠르다. 긴 줄에 서있던 패키지 팀원들이 수준이 다르다며추어올린다. 속에선'몸 둘 바' 3음절이 좌충우돌 야단법석이다.
'여기서 거절당해 긴 줄 저 끝으로 쫓겨난다면 무슨 개망신?'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릴까 봐 힘을 주고 섰는데 금세 우리 차례다. 직원은 여권이랑 모닝캄 카드를 살핀다.흔들리는 시선을 바닥에 꽂은 채 처분만 바라고 섰다. 동태를 살피느라 살짝 고개를 들었을 때 직원과 똭~마주쳤다.
'흐미, 환장하것소~잉'
직원은 우릴 힐끗 보더니 창가나 복도 자리 중 선택하란다.
'오마야, 나 지금 무사한 거라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좌석을 선택하고 짐을 부친 후 부리나케 그 곳을 빠져 나온다. 몇 걸음 가는 동안에도 파스를 붙인 듯뒤통수가 화끈거린다.
'게섰거라, 코리아 반칙쟁이들~'
공항 직원이 소리지르며 달려와 뒷덜미를 잡을 것 같아 쏜살같이멀어져간다. 카운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서야 피식 웃는다.
"거 봐, 괜찮다고 했잖아."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에도 심리적 위축에서 막 벗어난안도감이 느껴진다. 태연한 척 하더니 남편도 속마음은 불편했던 모양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패키지 일행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으며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이것은 어쩌면 양심에 난 흠집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고해성사 같은 의식일지도 모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지만 고삐 풀린 심장이 어찌나 깝신대는지 십 년은 늙은 느낌이었다. 잠시 양심을 잊은 채 편리를 쫓았던 그날의 기억, 늦었지만 기나긴 줄을 기다려 탑승권을 받은 분들과 대한항공에 머리숙여 미안함을 전한다. 그 후로 염치를 상실한 깜찍한 반칙은 없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