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를 보러 사람들이 올 거야
선생님, 제가 재능이 있을까요?
방송작가교육원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첫날 내 옆자리에는 시인이 앉아있었다. 시인은 동그란 안경을 쓰고 두꺼운 노트를 보고 있었는데, 무언가를 끄적인다던가 하지 않고 노트를 정말 보고만 있었다. 내 앞에는 나이가 지긋한 남자분이 앉아있었는데 그는 교수였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고 있고 부산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매수업 때마다 그는 선생님보다도 많은 질문을 우리에게 했다. 내 뒷자리에 앉은 커트머리 여성분은 음식 프로그램 작가였다. 이제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그녀의 눈에는 항상 열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반에는 나를 포함해 대학생이 두 명이었는데 다른 그 대학생은 법대생이라고 했다. 그는 같은 대학생인 내가 내심 반가웠는지 먼저 밝게 인사를 하곤 했는데, 낯을 가리는 나는 그 인사가 부담스러워서 조금 거리를 두었더니 언젠가부터는 눈이 마주치지 않으면 인사를 안 하게 되었다. 그와는 합평 때를 제외하고는 종강할 때까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다.
나의 첫 합평 대본선생님, 제가 재능이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작품을 합평하는 날이면 선생님께 질문 두 가지씩을 했다. 합평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온 우리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달려간다고 느끼는 시간이었다. 아직 완성된 실력이 아니기에 날밤을 새워가며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 써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각자가 잘 알고 있었지만, 힐난하듯 서로의 의견을 던지는 뾰족한 합평 시간이 끝나면 어색한 침묵이 공기처럼 그 공간을 맴돌았다. 결국 우리는 두 개의 질문 중 하나를 "선생님, 제가 재능이 있을까요?" 따위의 것으로 소비하곤 했다.
그 질문은 채찍을 맞았으니 당근이 필요하다는 식의 단순 위안을 요구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 정도면 괜찮다고 말해주세요'의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을 어찌 아냐 묻는다면, 막상 그 상황에 닥치니 나름 단단히 멘탈을 붙잡고 있다 생각했던 나조차도 이를 앙다물고 그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막아냈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글 쓰는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해주세요'라고 우리는 착하고 공손하게 뱉었다. 거기 앉아있던 우리 중 아무도 그 질문을 한 이를 자신에 대해 확신이 없다고 비웃을 수 없었다. 그 질문이 나오고 말 때면 우리는 선생님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수십 년간 우리와 같은 학생들을 만나왔을 선생님은 차분하게, 아니 어쩌면 냉정하게 첫마디를 내밀었다.
재능이 없다고 하면 안 할 거예요?
다행히도 네, 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자신이 당신들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자신이 어떤 마음 가짐으로 40년간 드라마를 써왔는지, 그리고 당신들이 이 40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인과 교수와 법대생인 우리에게 질문하며 수업을 마쳤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내 친구는 내가 쓴 자그마한 글이라도 다 읽어준다. 엊그제, 친구는 내 글이 넓은 들판에서 잘 자라고 있는 나무 같다고 말했다.
나무가 잘 자라고 있으니 다 자라면 그 나무를 보러 사람들이 올 거야.
나무라니. 아름답긴 한데 한편으론 두렵다. 그 나무의 가지가 산개하듯 자라면 내 인생은 중요해진다. 중요하게 된다는 것, 그것이 두려운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가끔 나무를 키울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의심하는 나는 그럼에도 나무가 곧게 잘 자라 사람들이 보러오길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그때 우리가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