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지고 벚꽃이 폈는데, 나를 비롯한 세계는 잠시 멈췄다. 너무도 익숙했던 너와 나의 만남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사그라들었고 숨 가쁘게 달려가던 일상 속 많은 관계들은 그 거리가 벌어진 지 더 오래다.
국가는 심리적 방역을 권장했다. 바이러스뿐 아니라 바이러스로 인한 우울과 무기력, 공포에서도 벗어나라 권한다. 무수히 생산되고 유포되는 정보에 대해 우리는 각자의 심리적 면역력을 발휘한다.
나도 사람들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특히 가까이했던 사람들에게서 한걸음 물러났다. 그들도 한걸음 물러났으니 우리는 두걸음 멀어진 셈이다. 물리적인 거리는 두 발짝 멀어졌는데 마음은 세네 발짝은 멀어진 듯하다. 아마도, 그들과 나의 관계의 거리가 멀어진 까닭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내가 방역해야 할 범주 안에 그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심리적 면역력이 약하다.
크로키로나마 다정하게 웃는 사람들을 그려본다 개강한 지 2주. 철학과 교수님은 공지사항에 이런 말을 적어 놓으셨다.
화사한 계절의 빛이 여러분의 감각과 사유를 활성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수님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계절이 나의 감각과 사유에 여태껏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돌아보게 된다.
내 주변에는 계절을 타는 사람이 많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높낮이를 꾸준히 유지하는 사람. 계절보다도 나 자신에게 예민한 사람.
그럼에도 내가 계절에 반응하는 것은 주변의 계절을 타는 이들이 주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계절 아래 녹아내려 묻어 나오는 그들의 감정은 한없이 밝기도 티 없이 슬프기도 하다. 벚꽃을 보러 그들과 손잡고 거리를 나설 때면 혹은 높아진 하늘의 어느 부분을 함께 하염없이 바라볼 때면 그 마음이 더 선명하다. 그런 그들에게 나는 말할 수 있다. 내가 계절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그런 너는 이해한다고.
그러니 함께 지내보자고.
그런데 이 계절의 당신은 나의 방역을 넘어서질 못한다. 나는 공포를 방역하고 공포 속에는 당신이 있다.
벌써 잎도 핀 집 앞 벚꽃나무사실 한편으로는 편하기도 하다. 집에서 혼자 봄을 맞이하는 것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봄이 정말 왔는지 헷갈릴 땐 베란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가벼운 바람을 느끼면 된다. 특히나 멀리 나가는 것을 피곤해하는 나는 날씨가 좋으니 멀리 나가자고 말하는 당신들에게 미안한 거절의 의사를 전하지 않아도 되니 좋다. 멀리 나가는 것보다 계절을 함께 누리자는 당신들을 거절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어렵다.
오늘은 집 앞에 핀 몇 그루의 벚꽃나무와 동백나무로 당신들을 대신했다. 화사한 계절의 빛은 너그럽지 못해서 계절을 타는 당신들의 감각을 깨웠을 것이다. 나는 그런 당신들을 이해한다고, 그러니 함께 지내보자고 오늘은 말할 수가 없다. 관계의 거리는 내 방역 때문에 멀어졌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방역해야 할 범주 안에는 슬프게도 당신들이 들어있다.
교수님의 말처럼,
어서 화사한 계절의 빛이 당신으로 하여금 나의 감각과 사유를 활성화할 수 있게 하기를 바란다.
다음 계절마저 사라지기 전에 날씨가 좋으니 나가자고 당신이 말해줬으면 좋겠다.